1.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 하나만 하지 않는다. 블로그를 하고, 트위터를 하고, 브런치를 쓴다. 그것도 꽤 오랫동안. 다들 본인들만의 역사를 기록해 온 흔적이 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때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소설을 썼다. 한창 유행하던 인터넷 로맨스 소설을 보고는 나도 재미있는 소설을 써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에 휩싸여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인생 처음으로 인터넷에 연재했던 소설이 ‘타락천사, 사랑에 빠지다.’ 뭐 이런 내용의 소설이었던것 같다. 작은 손으로 써 낸 소설들이 인터넷에 올라가 사람들의 반응을 얻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무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습관 탓에 끝을 보지 못한 글들이 수두룩 빽빽이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글을 썼다. 열정적으로 많은 글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흡수했다.
일기는 그보다 더 늦게 썼다. 중학교 1학년 무렵이 되어서야 내 이야기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몰아치는 호르몬 폭풍을 얻어 맞은 나는 터질것 같은 가슴을 끌어안고 한 자 한 자 노트에 이야기를 썼다. 그때는 한국어가 주는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반짝이는 단어들을 모아다가 줄을 잘 세워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냈다. 물론 이후 호르몬 폭풍이 잠잠해지고 난 뒤에는 노트들을 몽땅 다 버릴 궁리를 했지만.
글을 써 온 시간은 길었지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를 어떻게 마무리지으면 좋을지, 꽤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던것 같다.
2.
오랫동안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 사주에 결혼이 없었다. 이런 저런 사람들과 연애는 오래 했지만 결혼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글이 나에게 첫번째였고, 글이란 외로움의 파도에 올라타 오르내리는 심장 소리를 기록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괜찮아,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 태생적으로 현실에 발 붙이고 살기 어려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모험과 도전이 있는 판타지 세계로 떠날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A는 나와는 끝과 끝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에 비현실이란 1g도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때 왜 열심히 공부를 했냐 물어보면, 학생이니까 공부를 했지 하고 대답했고, 회사원이 되기 위해 대학도 경영학과로 진학 했다. 토익을 따고, 자격증을 따더니 정말 회사에 취직을 했다. 인간이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그는 그렇게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나는 A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계획적이고 단단한 삶이 낯설고, 심지어 조금은 삐딱하게까지 보였다.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뭔데? 그렇게까지 애써야 하는 삶이라면, 그건 누구를 위한건데? 온 몸으로 질문하는 나에게 A도 온 몸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불안해 할 필요 없어.”
3.
“운전자 세 명 중 한 명은 자동차에 이름을 붙여준대.”
“그것밖에 안 된대?”
“그러니까, 어떻게 차에 이름을 붙여주지 않을 수가 있지.”
“…….”
“왜?”
“생각해보니까 나도 이름 안 붙였을것 같은데.”
A의 가정이 생소해서 놀라웠다. 그래 사실은 이렇게까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날 내가 친구따라 대외활동에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해외로 연수를 떠나지 않고, 그날 밤 우리가 전화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시간 위에 서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은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10년 넘는 시간을 함께 해오면서, 내 삶의 외곽을 타인의 시선에 비춰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혼자서 외로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함께하는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기록하고자 하는 감정이 공유하고자 하는 감정으로 변화했다.
나는 여전히 감정이 출렁이는 사람이고, A는 여전히 차분하게 물 위에 떠 있는 사람이지만, 이 세계의 물살이 때로는 나를 안고 때로는 그를 밀어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끝과 끝에서 조심스럽게 가운데를 만들어 가는 중이었다. 그런 관계가 처음이었다. 사랑은 종종 나를 파괴했는데 A는 나를 파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는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좋아했고, 나 역시 그가 평범한 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제대로 써내고 싶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