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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A Jun 04. 2020

아티스트는 그래도 돼 5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폴 모리아(Paul Mauriat)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2005년 공연 당시 포스터

2005년 첫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겨우 25인조 팝스 오케스트라에 그랜드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랜드를 붙여달라 했으니 그런 걸로) 내한공연을 할 때만 해도 내가 2009년 그리고 2013년까지 총 세 번의 내한 공연을 다 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폴 모리. 대부분 어른들은 그렇게 불렀다. 

이십 년 넘게 '싱글벙글 쇼'의 인트로 음악으로 사용된 '돌아와요 부산행에'와 예전 '두 시의 데이트' 인트로 "엘빔보' 등으로 유명한 폴 모리아 오케스트라는 그 세련된 편곡으로 70년대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음악이었다고 한다. 


연주자 중 브라스 파트에 아주 재밌는 분이 계셨다. 공연 중 솔로 파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실력파인 그분은 첫 한국 방문으로 한국 음식에 아주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첫 공연 리허설을 마치고 나에게 아주 살짝 '그것'을 먹어보고 싶은데 어딜 가야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그가 말한 그것은 바로 보신탕! 그분은 세상의 모든 전통 음식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분으로 한국에 오면 꼭 보신탕을 먹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의 숙소는 강남역 인근 노보텔로 급히 내 주변에 '그것'을 즐기는 몇 사람에게 전화를 해 강남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것을 잘하는 식당을 수소문하여 알려주었다.


다음날 공연을 위해 공연장에 가기 전 호텔 로비에서 만난 그분 (그분은 본인의 별명이 Mr. 부다라고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셨다. 아마도 빛나는 스킨헤드 때문인 듯 한 별명이다.)에게 그것을 경험했느냐고 조심스레 물어보았고 대답은 "That's great!"이었다.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몹시 좋은 것 같아 대 만족이라고 하시는 거다. Mr. 부다는 세 번의 공연에 전부 한국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그것을 찾아서 먹고 가셨다. 


2009년 포스터

스물다섯 명의 어르신(! 몇몇 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60대 이상의 어르신이었음)을 모시고 공연을 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 분들의 건강도 신경 써야 했고 특히 드레스룸의 케이터링은 진짜 예민한 문제였다. 

공연을 위해 필요한 장비와 무대 세팅 숙소 기준 식음료 등에 대해 세세하게 기입한 자료를 라이더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이 분들의 라이더는 정말로 세밀하게 왔다. (심지어 장비 라이더보다 먹는 음식 부분이 더 세밀할 정도였다고 나 할까)

라이더 상에 인스턴트커피라는 항목이 있었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나는 그냥 믹스커피 봉투를 예쁘게 컵에 꽂아 준비해드렸다. 그랬더니 난리가 난 거다. (그때는 아직 카누나 루카 같은 커피가 나오기 전이었다.) 

이거 말고 노 슈가 노 밀크 커피를 말하는 거라고 하시는데 그때 아차 싶었다. 아 맞다 이 분들 프랑스 사람이지..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두 번째 세 번째 공연 때는 커피부터 신경을 썼다. 

그런데 웃긴 건 두 번째 세 번째 공연 때 그분들이 원래 드시던 커피 말고 예전에 왔을 때 먹었던 그 밀크 슈가 다 들어간 커피를 달라는 거다! 아마도 한 번 먹어보고 생각보다 괜찮았던가보다. 그래서 다시 주최자 사무실에 있던 커피를 가져다 드렸더니 엄청 기뻐들 하셨다. 아 물론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시기 전 마트에서 믹스커피 300개 들이를 사 가신 분들이 꽤 많았다.


2013년 포스터

진짜로 세 번째 공연은 내가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런데 결국 했다. 

세 번째 공연은 진짜 우여곡절이 많았다.

당시 이 공연은 일본 전국 투어를 먼저 돌고 한국으로 넘어오는 스케줄이었는데 일본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오는 공항에서 일본 프로모터로부터 날벼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일본 마지막 공연에 첼로 솔로 연주자의 악기가 파손되어 악기를 가져가지 못하니 한국에서 준비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니 첼로면 개인 악기인데 비행기 표도 끊고 가져왔을 악기일 텐데 아니 무엇보다 엄청 비싼 악기였을텐데 그게 파손됐다고?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그 날은 금요일 밤이었고 나는 악기를 토요일에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주변에 관련자 모두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런데 토요일에 문을 여는 악기상이 거의 없는 것이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억지로 부랴부랴 (그때 도와주신 쭌 언니 정말 감사해요. 언니 아니었으면 그 좋은 연주를 못 들을 뻔했어요.) 아주 싼 연습용 악기 하나를 빌렸다. 

연주자는 굉장히 실망해하며 악기가 너무 별로라 솔로 연주가 하기 싫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대안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데...

그 당시 나는 서울에서 1일 2회 공연을 진행했는데 낮 공연에 그분은 솔로 연주를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낮 공연 객석 반응이 너무 좋아서일까(정말 우리나라 관객 반응은 세계 최고다. 내가 한 내한 공연의 아티스트 중 공연 끝나고 흥분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저녁 공연에는 그 악기로 솔로 연주를 하겠다고 하시는 거다. 그렇게 별로라고 하신 악기로 세상 말도 안 되는 너무나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시기에 갑자기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 나머지 지방 공연엔 꼭 악기를 더 좋은 것으로 대여해드려야겠다.


서울 공연 이후 우리는 대전 대구 부산 공연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라 월요일 낮에 바로 더 좋은 악기를 대여하기 위해 악기 대여점을 수소문하였고 우리 스탭 중 한 명이 첼리스트와 함께 가서 그분이 원하는 악기를 대여해드리기로 했다. 


다녀온 스탭 친구가 전달해준 이야기는 진짜로 의미심장했다. 그 대여점에서 이런저런 악기를 연주해본 첼리스트는 그중 아주 비싼(!) 악기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해 주셨는데 "보통 좋은 악기는 영혼이 있는데 어제 연주에 쓴 악기는 영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악기에서는 영혼이 느껴진다."라고 하셨단다.

그런데요 선생님, 어제저녁 연주를 들은 우리 관람객분들은 어제 그 첼로에서도 영혼을 느끼셨대요.라고 말해드리고 싶었지만... 영혼이 있는 악기로 그분은 마지막 부산 공연까지 소울 넘치는 연주를 보여주고 떠나셨다.

바로 이 분이 그 영혼의 첼리스트 장 필립 오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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