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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A May 14. 2020

아티스트는 그래도 돼 4

Jekyll&Hyde 내한 뮤지컬 콘서트 이야기 마지막

6. 이렇게 스윗한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라니!!

알렉스 스콜닉(Alex Skolnick)

그러니까 첫 공연 때 부터 우리는 그의 열정적인 플레이가 재밌었다.

록 밴드 공연장이 아닌 뮤지컬 갈라 콘서트의 백밴드 기타리스트가  닥터 제클이 "The world has gone insane"를 부를 때면 벌떡 일어나 화려한 연주와 함께 헤드뱅잉까지 선보이는 거다.

그런데 공연만 끝나면 또 그렇게 스윗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알렉스가 있다며 자신을 스콜이라고 불러달라 한 그는 (그러고 보니 드러머 크리스 쟤고도 자신을 쟤고라고 불러달라 했다.) 밴드 드레스룸에 "BAND"라고 써서 붙여주었더니 아니라며 펜을 들고 나와 & Hera and Girlz라고 추가해서 써 주며 딱히 대기하기 어려운 나와 내 스태프들을 자신들의 대기실로 받아주었다.

분명 불편할텐데 말이다.


매일 저녁 강남역으로 걸어가 와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왔다며 한국은 에브리데이 파티 나잇이라 좋다고 하던

뭔가 놀기 좋아하고 성격 좋은 아저씨같았다.


그러던 그를 다시 본 사건이 있었다.

공연한 지 삼일쯤 되었을 때인가, 이 전에 음향을 봐주시던 감독님이 원래 본인 현장으로 가시고 우리 현장을 담당하실 감독님이 오셨을 때이다.


사운드체크를 위해 스콜이 기타를 잡고 나는 음향감독님과 소통을 위해 감독님 옆에 인이어를 차고 서 있는데 감독님이 갑자기 "아니 전설님이시다!!"라고 하시는거다.

감독님 말인 즉슨 성격좋은 아저씨 스콜이 스레시메탈 밴드 테스타먼트(TESTAMENT)의 기타리스트이자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라는거다.

음향 감독님이 엄청 좋아하는 연주자라며 흥분해서 말씀하셨다.


....어쩐지.. 백밴드 연주자라고 하기엔 퍼포먼스가 너무 화려했다.

아니 연주가 너무 좋았다.

아니 뭐 잘 모르겠다 좌우간 그랬다.


사운드체크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스콜에게

"저 사운드가이가 너의 팬이래 네가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라고 나한테 설명해줬어. 몰라봐서 미안해."

라고 말하자 그는 나에게

"그래? 그럼 나 퍼딤(일비/PER-DIEM) 만원만 더 올려줄 수 있어?"

라고 말했다.


7. 그리운 내 동생 보남이 쉐머스 R.I.P (Seamus O'Bryan)


그는 2006년 내한 당시 라인 프로듀서였다.

구레나룻을 기른 남자로 나는 당연히 그가 빈스 마리니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공연 셋째날이던가 무대 하수에서 얘기를 하다 알게 된 사실은 그가 겨우 81년생(!)이며 한국나이로 당시 26세밖에 안됐다는 거다.

그래서 그에게 나는 보기보다 어린 남자라 '보남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그는 그 별명을 꽤 마음에 들어했으며 티셔츠를 만들어 써서 입고싶다고 했다.


워낙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가 좋았다.

밥 때도 놓치고 열심히 일하는 그가 안쓰러워

"배고파." 와 "배불러" 라는 한국 말을 가르쳐주며

배고플땐 한국스태프 아무나 붙잡고 꼭 "배고파" 라고 말하라고 했다.

그럼 뭐든 가져다 주겠다고..


마지막 공연 날 무대 하수에 서 있던 나에게 루시의 "Someone like you"가 공연되는 도중 'Shall we dance?'라고 하여 그의 손을 잡고 춤을 췄는데 당최 그런 춤을 춰 본적 없는 나는 그의 발을 무진장 밟았고 그는 헤라는 춤을 겁네 못춘다며 놀려대었다.


내동생 보남이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던 그에게 나는

영어로 쓴 편지 옆에 한국말로 " 내 동생 하자." 라고 써 두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답 메일로 "Yes!" 라고 보내왔었다.


2007년 공연을 다시 하며 나는 당연히 내 동생 보남이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워낙 모험심이 강한 사람이라 마도로스가 되어 배를 타고 먼 곳으로 갔다는거다.

아쉽지만 보남이 답다 싶어 그의 앞길을 축하해주었다.


그런데 이듬해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배를 타고 나간 보남이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거다.

그의 나이 겨우 28세

내 동생 하자고 해 놓고 그 이후로 보지도 못했는데 좋아하던 배를 타고 나가서 그 길로 돌아오지 못한다는거다.


지금도 가끔 그의 페이스북을 들어가본다.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그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 그에게 인사말을 남기기도 하고 예전 그의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보남이와의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올해 보남이 생일날 거기 올려볼까 한다.


아마 보남이는 지금도 잭 스페로우처럼 자유롭게 행복하게 지내고있을거라 믿는다.



8. 프로듀서 빈스 마리니(Vince Marini) 혹은 콩사장

빈스는 실질적인 이 공연의 프로듀서이자 투어 매니저이자 프랭크 와일드혼의 중요한 사업 파트너였다.

뭔가 오밀조밀 모인 눈코입 때문에 처음엔 미국 신동엽이라고 부르다 빈스라는 이름때문에 스태프 친구들이 콩사장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실제로 뉴저지에 1000석 규모의 극장의 소유주이며 좋은 뮤지컬 공연은 많이 기획한 능력있는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굉장히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기도 했다.


2006년 한번 한국 방문을 해 봤다고 2007년 공연 때는 각자 낮에는 혼자서 외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 날 빈스도 혼자 다른 곳을 다녀보겠다며 외출을 했다.

공연장으로 출발하기 전 돌아올테니 꼭 같이 극장으로 가자는거다.

그래놓고 출발 임박시간이 다 되어도 돌아오질 않는것이다.

길을 잃어버렸나 혼자 극장으로 갔나 별별 걱정을 다 하고 있는데 빈스의 전화가 왔다.

택시를 타고 아무리 호텔을 얘기해도 택시기사가 모른다는거다.

그러니 택시기사에게 대신 말을 해 달라는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빈스에서 "너 우리 호텔 이름 몰라?" 라고 물어보니 아는데 자기 말을 못알아듣는단다.

대체 뭐라했길래? 호텔 이름 뭐라했는데? 라고 하니 "라러월"에 가자고 했단다.


...... 그래 아무도 못알아들었겠구나.

2007년 공연 당시 우리 숙소는 잠실 롯데월드호텔이었다.

Lotte World가 뉴저지 사람의 발음으로는 라러월 이었던거다.

택시를 타고 돌아온 빈스와 공연단 전체를 붙잡고

라러월이라고 하면 아무도 못 알아들으니 나를 따라해라

우리는 "롯데월드"호텔에 있다 라고 연습을 시켰다.

라러월...그래 그건 진짜 아무도 못 알아들었을거다.



9. 유성온천 때밀이에 반한 브로드웨이 스타들


서울 공연 후 대전 공연까지 무사히 마친 공연단원들과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기 전 마침 우리가 묵은 호텔이 유성온천 호텔이어서 모두에게 사우나를 다녀오라고 했다.

몇몇은 싫다고 했지만 우리의 주연배우 삼인방은 눈을 빛내며 다녀오겠다고 했다.

그들이 사우나로 입장할 때 우리는 세신사 예약을 미리 해 주었다.

모르겠다 그냥 해주고 싶었다. 언제 다시 경험하겠어 싶어서 말이다.


한시간 반쯤 흘렀을까

거짓말 안 하고 멀리서 번쩍번쩍한 광채를 내며 우리의 주연배우 삼인방이 걸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사우나&세신 체험 간증이 쏟아졌다.

처음엔 완전 네이키드가 되어야만 들어가는줄 몰라서 좀 놀랐는데 막상 들어가니 물이 너무너무 좋더란다.

갑자기 어떤 사람이 자신을 데리고 가더니 침대에 눕혀놓고 막 "마사지"를 하더란다.

그런데 그게 부끄러운데 이상하게 좋았다는거다.


그들이 국수가락같은 떼를 경험했는지는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얼굴에서 번쩍번쩍 하는 광을 내고 걸어올때 그 대단한 만족감은 진심이었던거 같다.


혹시 지금도 한국식 사우나가 있다면 경험하러 다니고 있으려나..

그 때 이태리타올 몇 개 사서 들려보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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