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파의 고향 노르망디 회화전
애니 레보비츠전과 와일드라이프 사진전을 연속으로 진행한 2013~2014년에는 와일드라이프가 그 해의 나의 마지막 기획전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1년에 1개의 전시를 준비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 데다 와일드라이프 전시회는 지방 투어도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른 전시회를 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 사람 일이 늘 계획대로만 진행되던가
7월 말쯤 당시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부 부장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제안을 받았다.
예술의전당에서 연말에 인상주의 회화전을 할 예정인데 함께하지 않겠냐는 조금은 신기한 제안을 말이다.
보통 예술의전당이 모든 기획을 하는 전시에 외부 기획사에게 함께 하자는 제안을 하는 경우가 흔한 사례는 아니기 때문이다.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전시회는 무려 예술의전당을 포함하여 다섯 개의 회사가 함께하게 되었다.
이전에 했던 애니 레보비츠 전시회 때와 비슷한 구조였다.
다만 그때는 메인 총대를 나와 내 회사에서 맡았다면 이 전시회는 예술의전당이 전체 진두지휘를 하는 구조였다.
사실 사진전 회화전 구분해서 말하긴 하지만 전시라는 큰 틀 안에서 업무는 거의 비슷하다.
다만 내가 했던 대부분의 사진전은 전시를 위한 주제 선정 및 사진 선택도 내가 해야 하는 형태였다면 이 회화전은 이미 다 정해진 작품을 정해진 제목으로 한다는 부분이 좀 달랐다.
무엇보다 마스터피스 회화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작품의 운송과 전시 기간 중 보존 및 관리였다. 작품이 안전하게 잘 전시되다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도록 정해진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실제로 이러한 항온 항습 시스템이 다 갖추어져 마스터피스 전시를 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인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 작품은 실제로 보면 화면이나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이 전시를 준비하며 이 전에 하던 전시들과는 또 다른 감흥을 가지고 진행했던 것 같다.
모네와 부댕이 그려낸 노르망디의 풍경은 더 없는 큰 감동을 주었으며 실제로 노르망디 해변을 가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해 주었다. 결국 기획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또는 하면서 좋아하게 되는 그런 컨텐츠를 할 때 가장 신나게 잘 해내는 것 같다.
이 전시를 준비하며 작은 소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전시 오프닝 하루 전날 귀신소동이 있었다.
공연과 전시를 근 20여 년 하면서 절대 바뀌지 않는(!) 사실 하나는 오프닝 하루 전날은 어쩔 수 없이 밤늦게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밤샘까지는 아니더라도 보통 새벽 한 두시나 되어야 그날의 업무를 끝낼 수가 있었다.
그날도 열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술의전당의 큐레이터님이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로 들어오셨다.
전시장 안에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전시회 도슨트를 맡은 친구가 먼저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연습을 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그 큐레이터님이 30여분 후 전시장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그 큐레이터님이 전시장 초입에 들어갔을 때 저 안쪽에서 도슨트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아 연습 중이구나 라고 생각하시고 별생각 없이 작품 점검을 하던 중 큐레이터님에게 도슨트 친구의 전화가 왔다고 한다. 연습을 하겠다고 말하고 전시장으로 들어가던 중 갑자기 집에서 급한 연락이 와 연습하지 못하고 바로 퇴근을 했다고 말이다. 분명 연습하는 소리를 들었던 큐레이터님이 싸한 느낌이 들어 그 친구 이름을 부르며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전시장 후문은 잠겨있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솔직히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실제 귀신이었대도 그리 놀랍지 않다.
내가 공연을 처음 시작했던 그때부터 나의 선배들은 공연장이나 전시장 주변엔 귀신이 많다고 했다.
게다가 예술의전당은 1년 내내 공연과 전시가 있는 곳 아니던가..
인상주의 그림을 몹시 사랑하는 어떤 여자 귀신이 그림을 직접 보고 싶어서 전시장을 찾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 얘기를 들은 우리는 전시회가 대 성공할 조짐이라며 덜덜 떠는 큐레이터님을 보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내년 6월 나는 새로운 인상주의 회화전을 준비하고 있다.
장소는 비록 예술의전당이 아니지만 혹시 그 귀신이 또 나타나는 거 아닐까? 잠깐 희한한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