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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수 Sep 28. 2018

학습된 실패가 만드는
조직 냉소주의

진짜 무서운 건 그 다음번이다 

  최근 내놓으라 하는 기업의 인사 임원 및 부서장과 함께 미래 인사의 패러다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제는 슬로건을 듣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가 돼버린 '급격한 경영환경, 경쟁환경 변화에 따라 조직도, 구성원도 바뀌어야 한다'라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변함이 없었다. 민첩한 조직(Agile Organization), 주 52시간, 더 나은 조직 문화 구축 등의 문제는 오늘날 인사 리더들이 가지고 있는 큰 고민거리일 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고민하는 공통 주제임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는 하나같이 일하는 방식과 관련된 사항들이다. 그 어느 한 조직도 예외 없이 더 자유롭게 일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며, 실패가 용인되고, 다양한 시도가 넘쳐나는 조직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조직을 변화시키는 일은 쉬울까? 2009년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 변화에 성공하는 기업은 전체의 1/3에 불과하다고 했고, 조직 변화관리의 구루인 하버드 대학의 존 코터(Kotter. J. P.) 교수 역시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의 70%는 실패한다고 했다. 변화가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중간에 그만둘 변화, 흐지부지될 변화는 아예 시작 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CEO가 바뀌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미션, 비전, 핵심가치를 선포한다. 사장 입장에서 당연히 새로운 기조와 방향성을 가지고 직원들이 기꺼이 목표 방향으로 정렬(Alignment)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수립된 내용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면 일단 슬로건이나 핵심가치는 안 좋은 것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이야기가 나열되어 있다. 특히, 실제로 지켜질 얘기보다는 이상향에 가까운 내용도 많다.


  도출 과정이 어찌 됐건 선포된 핵심가치나 행동규범들은 리더 그룹이 이를 목숨처럼 지켜주어야 생명력을 유지한다. 하지만 실행은 쉽지 않다. 새로운 미션, 비전, 핵심가치가 무력화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직원들은 변화가 그저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빨리 알아차린다. 이렇게 한번, 두 번 변화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면 직원들에게는 냉소주의(Organizational Cynicism)가 남는다. '어차피 또 안 지켜질 텐데 뭐', '이번에도 말로만 하는 얘기일 거야', '외부 홍보용일걸' 등 뼈아픈 말들이 폐부를 찌른다. 특히 국내 대기업은 전문 경영인 CEO의 교체가 다른 기업보다 빈번히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몇몇은 사장이 바뀌면 또 중단될 노력이라는 얘기를 거리낌 없이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렇게 생긴 조직 냉소주의는 다음번 조직 변화의 동력을 드라마틱하게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변화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인간에게 '학습된 실패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변화 단계별로 조직 냉소주의가 나타나는 형태 역시 상이한데 아래 그림은 이런 부분을 잘 묘사해 놓았다. 

조직 변화의 적, 냉소주의 극복 비결 (삼성경제연구소, 2012)


  말 뿐인 변화는 구성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생각보다 훨씬 심한 후유증을 앓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에 변화관리를 생각하기 전 꼭 점검하고 절차적으로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 필수 항목이 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그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고, 제대로 하는 회사도 많이 보지 못했다.


  첫째는 리더들의 인풋과 합의다. 조직은 위계가 전제이며, 리더가 안 변하면 조직은 원천적으로 바뀌기 어렵다. 꼭 중요 리더 그룹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 방향을 수립한 뒤, 이에 합의하도록 하는 절차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본인은 전혀 안 지키며 구성원에게 새로운 행동을 강요하는 리더가 어떤 평을 듣는지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둘째로는 전체 구성원에게 배경과 취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간과해선 안된다. 너무나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도 항상 부족하다. 그저 새로운 행동규범만 나열식으로 전달한다면 구성원들은 이 항목이 어떤 문제점에서 시작되었고, 어떤 배경에서 선정되었으며, 어떻게 우리 조직에 자리매김하게 될지 알 수 없다. 특히 이 메시지를 그 어느 때 보다 진정성 있게 전달해야 한다.


  마지막은 구성원이 손을 들 수 있도록 해야만 진짜 조직이 바뀐다. 새로운 가치와 행동규범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 구성원들이 언제든 손을 들고 이를 고쳐나가자고 독려해야 한다. 누구든 자기가 편하자고 새로운 가치를 안 지키기 시작하면 그대로 끝이다. 변화는 다 같이 지키자고 달려들어도 어렵게 어렵게 한걸음 내딛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짧은 글로 조직 변화라는 어마어마한 타픽을 커버할 수야 없겠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변화의 시작은 정말이지 벼랑 끝이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 학습된 실패감 대신 작지만 값진 성공을 자주, 많이 경험하고 이를 격하게 축하하는 조직이 변화에 가까워질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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