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빨리-잘 했어야 했는데..
호기롭게 시작한 나의 첫 책짓기가 끝났다. 처음에 목표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상당히 소박하다. ‘좋아하는 것 모아 보기.’ 거의 늘 용두사미식으로 일을 끝마치는 나에게 이보다 안성맞춤인 주제가 있을까. 쉽게 소재를 떠올릴 수 있고 순서에 구애받지 않는 옴니버스식 구성. ‘아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냈지’ 스스로를 섣불리 대견해 했다.
‘대충-빨리-잘’
2018년에 한 트위터리안이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스텝이라고 올린 트윗의 내용이다. 완벽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다보니 ‘빨리’ 할 수가 없고 결국 결과물은 ‘대충’ 만들게 되는데 이걸 거꾸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1만 9천 회 이상 리트윗 된 그 트윗의 캡처 화면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공감을 얻고 있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 생각하지는 않지만(진정한 완벽주의자라면 완벽하게 일을 끝내는 사람일 테니까) 이 글을 처음 보고 정곡을 찔렸다. 이번 책짓기도 최대한 위 스텝을 밟으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하루 아침에 바뀌긴 어려웠다.
완성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의 간편한 주제와 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버킷터스(bucketus)라는 모임의 힘을 빌려 원고 마감까지는 할 수 있었지만 데뷔하지 못한 소재들이 많아 아쉽다. 윤슬, 노을, 햇살, 뭉게구름, 고양이 뒤통수, 키보드 타건 소리, 모나미 FX 153 1.0mm 볼펜, 좋아하는 책과 노래,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내 노션 페이지 한 구석에서 대기 중이다.
‘시작이 반이다.’ 용두사미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해 정신 승리가 필요할 때 스스로에게 자주 건네는 말이다. 이쯤에서 또 정신 승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렇게 첫 책을 지어봤으니 다음 책짓기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더 떳떳하게 내 책을 소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