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침범 불가, 자연의 순간들
2015년 가을과 겨울,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살았던 그 시간은 나에게 처음인 것들로 가득했다. 인생 최초의 국제선 비행기 탑승이었고, 미국은 나의 ‘첫 외국’이 되었다. 숨 쉬듯 익숙한 한글 간판과 편리한 대중교통에서 벗어나니 매 순간 모든 것이 생소했다. 이런 게 이방인의 기분인가. 생전 처음 접한 대마초 냄새는 길거리에서 맡자마자 직감적으로 알았고, 처음으로 코스튬을 차려 입고 할로윈 축제도 가봤다.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매일이 생생하게 낯설고 설렜던 그 때의 기억들이 이제는 점점 어렴풋한 형체로의 추억으로 남고 있다. 흐르는 시간 속에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처음의 순간이 하나 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떠난 여행에서 본 은하수가 바로 그렇다. 아무것도 모르고 떠난 여행. 친구를 통해 급하게 합류하게 된 여행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로 운 좋게 다녀왔던 여행. 프랑스, 독일, 아제르바이잔 등 다양한 나라에서 16명 정도가 모였고, 4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요세미티로 향했다. 가는 길이 멀어 깜빡 잠이 들었는데 친구가 날 흔들어 깨웠다. ‘언니 빨리 나와봐.’
창밖을 보니 벌써 깜깜한 밤이 와 있었다. 아직 숙소에 도착한 것 같지는 않고…. 왜 갑자기 길에 차를 세운 거지? 비몽사몽 몸을 일으켜 차에서 내렸다. 다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있었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는 선명한 은하수와 쏟아질 듯한 별들로 수 놓아져 있었다. 난생 처음이었다. 숨이 멎을 듯한 황홀경이란 이런 거구나. 그러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는 은하수를 찍어 보겠다고 발버둥쳤다. 사진의 시옷 자도 모르는 나. 기본 렌즈가 장착된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로 셔터스피드, 조리개 값 등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에 의존해 이리 저리 만지면서 씨름을 했다. 그리고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으로 은하수가 담긴 사진 4장을 찍었다. 인터넷에서 보던 은하수 사진과는 영 딴판이다. 초점은 빗나가고 해상도는 갖다 버린 형편없는 결과물이다. 그렇지만 이 사진조차 없었다면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는 내 기억력으로만 그 장면을 붙잡아야 했을 것이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원래도 별 보는 것을 좋아했지만 이 때 이후로 늘 입버릇처럼 은하수 보러 가고 싶다를 외치는 사람이 되었다. 국내 은하수 명소 중 하나인 강릉 안반데기로 은하수 사냥을 떠났지만 비가 내려 실패. 사막에서 은하수를 재회하리라 잔뜩 부푼 마음으로 준비했던 몽골 여행도 직전에 코로나 19 사태가 발발해 무산. 그래서인지 요세미티에서 봤던 그 은하수 장면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때의 그 황홀했던 감정이 갈수록 소중하다.
글로 되짚어보니 더 뚜렷하게 그 때의 기억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안되겠다, 여행 계획을 세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