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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준생 김머글 Dec 11. 2024

엄마 생일에 하는 제철 꽃놀이

AI 침범 불가, 자연의 순간들

꽃 좋아하는 엄마생일이 봄이라 너무 좋다.

음력 3월 21일. 4월 중순, 늦으면 5월 초쯤 돌아오는 엄마의 생일. 덕분에 엄마와 나, 여동생 이렇게 세 모녀는 매년 제철 봄꽃을 찾으러 나선다. 꽃 사진 찍는 걸 좋아하게 되면 나이를 먹은 거라더니. 부정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인가보다. 휴대폰 사진첩에 엄마 생일에 보러 다닌 꽃들이 가득하다. 아니 이 예쁜 걸 어떻게 안 찍어?


<벚꽃과 겹벚꽃>


주입식 문학 교육 때문일까, 화려하지만 금세 져버리는 벚꽃보다는 한결같이 푸르른 소나무처럼 살아야 된다는 식의 은근한 정서적 압박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만발한 벚꽃만큼 사람들에게 단번에 황홀함을 안겨주는 존재가 있을까?


엄마 생일을 맞아 본가에 내려가면 우리 세 모녀만 알고 싶은 벚꽃 명소가 있다. 바로 읍내 초등학교 뒤편에 위치한 뒷산인 망일산 벚꽃길이다. 도로 양 옆으로 가득 메운 벚나무들이 꽃송이로 촘촘하게 터널을 만든다. 밤에 가면 벚꽃들이 조명 빛을 받아 하얗게 보이면서 마치 별이 쏟아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음력인 엄마 생일이 벚꽃철보다 늦게 돌아올 때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개심사가 있으니까!


충남 서산에 위치한 사찰인 개심사에는 봄이면 흐드러지는 왕벚꽃, 겹벚꽃, 청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겹벚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벚꽃보다 꽃송이가 훨씬 풍성하고 개화 시기가 늦다. 그중에서도 개심사가 국내에서 겹벚꽃이 가장 늦게 피는 곳으로 알려져 있단다. 서울에서의 벚꽃놀이가 끝나고 엄마 생일에 맞춰 서산으로 가 겹벚꽃을 보러 가면 좀 더 길게 벚꽃을 즐길 수 있어 좋다.


<수선화>


찌뿌둥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시작할 때면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에는 나들이 ‘핫플레이스’를 소개하는 릴스들이 우후죽순 쏟아진다. 특히 인생사진을 건질 수 있는 꽃놀이 명소를 소개하는 콘텐츠의 댓글에는 저마다 같이 가고 싶은 연인과 친구들을 태그해 소환하기 바쁘다. 

그러던 어느 봄, 내 눈을 사로잡은 한 릴스. 샛노란 수선화로 뒤덮인 동산이 담겼다. 무릇 꽃놀이 명소의 조건이라 함은 얼마나 빽빽하게 꽃들이 들어차 있는지에 달려 있으리라. 그 릴스 속 언덕은 그 조건을 가뿐히 충족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꽃동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곳인지 살펴보니 웬걸, 마침 본가가 있는 서산의 유기방가옥이라는 곳이었다. 고택 주변으로 수선화가 심어진 정원과 야산 일대가 약 2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고택 이름 속 ‘유기방’은 실제 집주인 ‘유기방’씨의 이름을 딴 것이며, 이 수선화들은 지난 20년간 유기방씨가 직접 심고 가꿔온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명소가 하필이면 우리 집이 있는 서산에 있다니, 안 갈 이유가 없다. ‘핫플’이라면 전국 어디든 마다않는 웨이팅의 민족답게 역시나 주차장까지 진입하는 데 진땀을 빼긴 했으나 그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소나무 언덕에 맞닿아 있는 새파란 하늘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노란 수선화 꽃밭은 세 모녀를 들뜨게 만들었다.  ‘엄마 여기 서 봐’, ‘엄마 여기 봐 봐’ 딸들의 성화가 이제는 익숙한 지 엄마는 제법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다.


내년 엄마 생일엔 무슨 꽃을 보러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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