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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란 Nov 17. 2022

서날쇠를 아십니까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학고재, 2008)을 읽고

청의 병사들이 한양으로 쳐들어오자 인조는 송파강을 건너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하지만 날은 저물고 눈까지 내려 산길을 오르는 피난길은 쉽지 않았다. 남한산성에 오르는 중턱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을 때 서흔남을 만났다. “제가 임금님을 업고 남한산성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서흔남에게 업혀 남한산성에 도착한 인조는 그에게 소원을 물었다. “임금의 곤룡포를 갖고 싶습니다.” 이에 인조는 곤룡포를 벗어주었다. 서흔남의 후손들은 사후에 곤룡포를 함께 묻어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곤룡포를 함께 묻어주었다.      


이 서흔남이 바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학고재, 2008) 속 서날쇠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남한산성>은 <<칼의 노래>>, <<현의 노래>>에 이어 나온 김훈의 역사소설로,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포위 기간 동안 성 내에서 벌어진 모습을 그려냈다. 남한 산성 내에서 왕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끝없는 말의 잔치를 벌인다. 왕의 끝없는 질문과 주화파 최명길, 척화파 김상헌의 뜻과 말은 섞이지 못한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를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 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p.280)      


작가는 서날쇠를 통해 백성들의 생의 의지 앞에 왕과 관료들의 대의명분, 시시비비는 허무한 담론임을 보여준다. 서날쇠는 남한산성 안 마을 대장장이로 삶을 위해 실제 필요한 일을 한다. 새벽에 임금이 마을로 들어온 것을 보고 아이들과 아내를 처가로 대피시킨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자신이 고쳐 내보내는 병장기의 수를 착실하게 장부에 기록한다. 성첩의 눈비를 가릴 다섯 치짜리 굵은 쇠바늘이 필요하다는 예조판서(김상헌)의 말에 옷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만들기 쉬운 대나무 바늘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또한 잊지 않는다. “하온데 대감, 실은 있사옵니까?” (p.128)      


실천력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서날쇠는 문제를 직면했고 해결에 충실했다. “서날쇠도 총을 다루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서날쇠는 총을 뜯어서 한나절을 들여다보고 나니 물리를 깨쳤다.” (p.123) 이러한 삶의 태도가 전국에 있는 근왕병을 불러 모으기 위한 왕의 격서를 전달하기 위해 그로 하여금 미치광이 흉내를 내게 만들었으리라. 실존 인물인 서흔남 역시 병자호란이 끝난 후 전쟁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벼슬을 제수받았다. 무엇이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일 수 없다면 차선이라도, 혹은 차악이라도 선택하며 나아가는 것이 어떨까. “그리 되었으니 그리 알라. 그리 알면 스스로 몸 둘 곳 또한 알 것이다. 다만 당면한 일을 당면할 뿐이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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