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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 Aug 27. 2021

소중한 나의 사원증

회사를 너무 좋아합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공순이인 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취업이 어려웠다.

면접에서의 맨 마지막 단골 질문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뛰어 다닐 법한 시대의 질문들이었다.


“주말에 데이트를 잡아 놨는데 긴급 업무가 생긴다면 출근이 가능한가요?”

“결혼 후에도 일은 할 생각이 있나요?”

“남자 친구는 있나요? 결혼 계획이 있나 해서요.”


뽑지도 않을 거면서...

어차피 여자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키울테니

금방 일을 둘 것이라는 가정의 연장선에서 생긴 질문이었다.

스물일곱......

1년 6개월의 취업 준비생 생활 중 120개의 이력서의 광속 탈락, 전국 방방 곳곳 열다섯 번 정도의 면접을 볼 수 있었지만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기엔 부족했던 것 같았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었다.

해외에서 만들어진 밀링 설비를 납품, 영업, AS 하는 회사였다.

분명히 회사 이름이 외국 이름이었고 본사도 유럽에 있었다. 면접 때도 영어 면접을 보았다.

하지만 조직이 자유롭고 개인적이며 복지가 좋을 것 같았던 외국계 기업의 이미지는 사장님을 통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사장님의 매너는 외국계도, 한국계도 아니었다.

새로 들어온 기술 영업이 너구나? 

  신나는 노래로 분위기 한번 띄어 봐봐.

노래를 못하는 덕분에 부르는 것 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다. 사장님은 입사 후 첫 회식 자리에서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어디서도 노래를 불러 본 적 없던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망칠 곳은 노래방 바깥 어두컴컴한 화장실 뿐 이었다.

화장실 안에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하고 다짐했다.  

“퇴근 하면서 눈물이 나는 곳에서는 일하지 말자......”

화장실에서 나와 노래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선배들처럼 좋은 기업 다니기엔 나랑은 먼 것 같아”라며 취업의 어려움에 마음을 다독였다.

 취업 시장을 몇 바퀴 돌고 돌아, 2차 하청을 받아 기계 설계 도면의 안전성을 검사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6명으로 구성된 작은 사무실이었다.

업무 자체와 사람들은 너무 좋았지만 월급이 너무 작았기 때문일까? 학교 친구들과 선배들은 다 소위 좋은 기업,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직장에 취업했는데 나는 이런 작은 곳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퇴근하는 내 그림자도 작아졌고, 내 마음도 작아졌다.

평소처럼 모니터 앞에 앉아 설계 도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도면 작업을 잠시 멈추고 화장실로 나와 앉았다. 조그만 핸드폰 화면을 보며 비명이 나올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축하합니다.

윤이님은 인적성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실무 및 최종 면접은 아래와 같습니다.

                                                                     OO전자.     


 내 인생의 마지막 면접이다.마음속으로 외쳤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 미안했지만 아프다는 핑계로 연차를 내고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장의 문을 열자 면접관 네 명 중 한 명이 첫 마디를 열었다.

“떨리시죠?”

 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설렙니다.”

“허허, 설렌다고요?”

“제가 꿈꿨던 기업에 면접을 보러 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무척 설렙니다.”

내가 이 회사에 면접을 보려고 그동안 120개의 자기소개서를 쓰고 광속 탈락하며 글쓰기 스킬을 올렸고, 이 회사의 면접을 보려고 그동안 모의 면접을 전국으로 다녔구나, 떨어지더라도 원하던 기업의 문턱에 와봤다고 생각하니 속이 너무 시원했다.

“엄마 면접 보고 나왔어~ 속이 후련해.

 그리고 내일 돌아갈 회사가 있어서 너무 좋아.”


이렇게 긴 취업의 방황과 설렘 끝에 얻은

[OO 전자 사원증]은 너무나도 소중 했다.

내가 일을 하게 된 부서는 반도체 제품이 적기에 출고 될 수 있도록 공장의 설비들을 잘 관리하는 생산 설비 현장이었다. 남자들이 바글바글 거렸던 대학 전공에, 남초 회사에 들어가 보니 여자 선배는 한 명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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