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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세상은 내편 Dec 20. 2021

엄마, 지금은 돈 하나도 안 벌어?

퇴사 후 5개월을 돌아보며


어느 밤 아이를 재우려고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 반대쪽 손으로 아이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고 있었다.

내 얼굴을 빤히 보던 딸은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엄마, 지금은 돈 하나도 안 벌어?"

"응?.... 음 지금은 돈 안 벌지."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럴싸한 대답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좀 쉬면서 벌려고 준비하는... 아니 나 주식 투자로 찔끔 배당금도 들어오는데... 뭔가 궁색하다.

"엄마, 나중에 내가 커서 돈 많이 벌면 빌려줄게."

라고 말하며 눈을 감는 아이를 보는 동안 내 귓가엔 '돈 하나도 안 벌어?'라는 말이 반복 재생됐다.




아이가 15개월이 됐을 때 복직한 이후 중간에 쉰 몇 개월을 제외하면 나는 늘 회사 다니는 엄마였다.

아이는 18개월부터 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5년 동안 남편 직장 어린이집에 다녔다.

5년 중 4년은 남편과 내 직장이 도보로 5분 거리라 우리 가족은 같이 출근 등원하고 함께 퇴근 하원해서 회사 구내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침저녁으로 회사라는 장소에서 아이 친구네 가족들과 마주치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맞벌이 직장인 세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아이의 세상도 아침에 회사라고 부르는 건물에 들어가서 어두워져 나오면 월급이 나오는 직장을 다니는 엄마 아빠가 익숙했을 것이다.


코로나 2년 차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는 남편이 거의 재택을 하며 아이를 돌봤고 나는 잦은 야근으로 지쳐서 돌아와 책 읽어 줄 시간도 없이 아이를 재우는 날이 많았다.

아이를 재우며 넋두리하듯 말한 적이 있다.

엄마가 이제 회사를 그만 다니려고 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지금 회사일이 힘들기도 하고 해아랑 방학 때 함께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엄마는 다른 일로 돈을 벌어보고 싶고 사장도 해보고 싶어.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는 엄마는 사장님 잘할 거야 하며 엄마를 믿는다는 진심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여름 방학에 맞춰 퇴사를 했고 처음으로 아이와 매일 함께 했다.

학원에 데려다주는 것도 집에 오면 먼저 맞아 주는 사람이 아빠 대신 엄마가 되었다.

오늘 학원에서 재미난 일 있었냐고 물으면 아이도 엄마는 오늘 뭐했어?라고 서로의 일과를 주고받았다.

이런 하루가 이제 우리에게도 일상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의 질문이 여전히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지금 정말로 소득이 하나도 없나?

자잘하지만 회사 다닐 때 하던 월급 외의 소득 행위는 잠시 내려놓고 있다.

주식 투자는 손절하고 금방 2배 이상 오른 종목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잠시 관망하고 있고, 작업실 사용이 많아져 공간 대여도 잠시 멈추고 있다.

정말 아이 말대로 돈은 하나도 안 벌고 있다.


<자기만의 방 마련하는 법> 에서 저자(볼리)는 아이를 돌보는 시간의 가치도 돈으로 환산해서 측정했는데, 아이를 등하원 시키고 학습지도까지 하면 연 2400만원 가량 된다고 한다.

석탄 인부가 되는 것과 아이 보는 여자가 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을까요? 여덟 명의 아이를 길러낸 유모는 10만 파운드를 버는 변호사가보다 세상에 더 가치 없는 인물일까요?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무익할 겁니다.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테니까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인용하며 돌봄 가사 노동의 가치를 낮게 보지 말라고 한다.

내가 퇴사한 이유 중에는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시기에 좀 더 많이 함께 하며 웃는 얼굴로 지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퇴사 후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 달 동안 물질적 이익은 없었을지 몰라도 정신적 이익은 상당했다.

역시 쉼이 필요했구나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점점 차올랐고 번아웃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너 목소리에 에너지가 넘쳐. 좋아 보인다는 말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동안 나는 꽤 적극적으로 나를 돌보고 있다.

회사 다니며 달콤한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달래다 늘어난 체중을 건강한 식단으로 3kg 이상 감량하고 스피닝을 시작해 땀나도록 운동도 하고 있다.

퇴사를 곱씹고 쉬는 시간을 기록하는 글쓰기도 틈틈이 하고 있다.

작업실에서 해보고 싶었던 오프라인 살롱을 열었고, 상담 도구로 쓸 타로도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코로나와 회사 생활로 만남을 미뤄뒀던 인연들을 만나며 새로운 연결과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 이란 주제가 나의 상황에 맞아서 창고 살롱 커뮤니티 시즌3에 참여했다.

 창고 살롱에서 레퍼런서들을 통한 배움과 영감을 얻는 시간을 가졌고, 모닝 페이지 소모임을 하게 되면서 작지만 의미 있는 재능 수입을 얻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쉬면서 각종 아이디어와 꿈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작은 계획부터 조금씩 실행해 나가면 될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엄마, 지금 돈 하나도 안 벌어?'는 쉬어가는 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게 해 준 질문이다.


어제 아이에게 왜 엄마한테 그런 질문을 했었는지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이유를 말해 줬다.


그게 말이야. 엄마도 앞으로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엄마가 요즘 계속 공부하고 줌모임하고 작업실 가고 바빠 보였어. 일 할 시간이 없어지니까 돈을 못 벌 거잖아. 조금 걱정이 돼서 내가 크면 돈 벌어서 엄마를 좀 도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나는 그만 빵 터져버렸다. 8살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가?

내 딸에겐 돈을 버는 일이란 회사를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회사를 가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으며 엄마는 지금 준비 기간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엄마 생각해 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었더니 배시시 웃었다.




퇴사 5개월 차인 지금, 이 시기를 버티기 위해 모아놓은 자금을 야금야금 쓰고 있다. 내 결정에 후회는 없지만 꼬박꼬박 들어오던 적잖은 돈이 끊기자 불어나지 않고 줄어드는 잔고 때문에 소비 심리가 위축됐다.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과 필요 여부로 선택하는 것의 비율이 바뀌었다. 합리적인 소비로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또 자기만의 방이 없어 거실과 응접실 등 공동 공간에서 사유와 창작 활동을 하다 보면 집중력을 저해하는 수많은 요소와 맞닥뜨리게 되지요.

- 자기만의 방 마련하는 법(볼리 지음) -


퇴사는 했지만 아침에 아이 등교시키고 나는 매일 회사처럼 갈 곳이 있다.

작년에 꿈에 그리던 작업실(아티스트웨이라고 간판도 달았다)을 지인과 함께 동네에 마련했다.

그림도 그리고 모임도 하고 글도 쓰는 그야말로 나만의 방이다.

그때는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평일에 잘 쓸 수 없었지만 임대료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새벽이나 퇴근하면서 들려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힐링 그 자체였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가 제일 잘한 퇴사준비가 작업실이 되었다.

내 자리가 있는 물리적 공간이며 함께 소유하는 동지가 있어 외롭지 않고 사람이 모이면 연결이 일어나는 살아있는 정적 공간이다.


쉬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사무실도 스튜디오도 될 수 있는 나만의 방에서 하나씩 현실화하며 나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 다시 돈 버는 엄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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