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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오 Mar 10. 2021

[초록 호흡_4]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들을 한 번 더 모아봤어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모험을 감행한 20대 후반 이후부터예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 그중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을 돕는 일입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일구며 용기 내 시작한 일입니다.

기적처럼, 운명처럼 다가온 일이지요.


아직도 저는 이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에 설레어 가슴이 뜨겁습니다.

물론 힘이 듭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내해야 할 것이 많기도 합니다.

하지만 힘든 것과는 별개로 말이에요.

저는 몰입해서 일을 하는 매 순간마다 제게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그저 즐겁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8년 차로 접어듭니다.

우연과 필연이, 기적과 노력이 조화를 이룬 지난 시간을 요약하면 '감사'입니다.


저는 아주 멀리, 제 인생의 끝자락을 바라보고 오늘 주어진 일 또는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그저 성실히 해나가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짧은 소회들 중 몇 개를 간추려봤습니다.




#1.

자신을 스스로 드높여 드러내려 하는 작은 사람이 아닌,

일상 속 고요하게 흘러넘치는 빛을 통해 주변을 밝히는 큰 사람이...

대단한 일을 이뤄 주목받길 바라는 유혹에 강하며

일상의 위대함을 알고 균형 있는 관계를 지향해 삶을 단정하고 심플하게 가꾸는 그런 사람.


또한

홑겹의 앎을 찰랑대며 뽐내는 얕은 사람이 아닌,

층층이 쌓인 무게감 있는 앎을 묵묵히 삶을 통해 활용해내는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의 작음과 얕음을 발견한 순간,

인정과 겸손 속 한 번 더 성장하기로 결심한다면.

그런 순간들이 천 겹 만 겹 켜켜이 쌓일 때 즈음이라면. 그러한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가정과 일을 일구어나가는 과정이 계단 오르기와 같다면 층과 층 사이에 서서,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요즘 같다.






#2.

하노이에서의 4박 5일 북트립, 너무 많은 것들을 정리할 공간을 찾지 못해 정신없이 허덕이다, 그간 읽고 싶었던 책들 리스트를 완성하고 멍하니 텅 빈 공항을 바라보니, 어느새, 내가 꼭 담고 간직해야 할 알맹이만 마음에 덩그러니 남았다. 10년 전 하노이를 마음에 담고 나누는 삶을 꿈꿨을 때와는 또 다른 이 감정을 잘 정리해보고 싶다.




#3.

올해는 더 재미있는 일들을 해보고자

구청 세무서 왔다 갔다 하며 출판업 등록 추가로 하고

태블릿으로 그림 한 장 그려서 홈페이지 수정 중이에요.

낮은 곳에 햇살의 밝음을 실어 나르는,

크고 작은 선한 영향력을 지니고,

곳곳에 따뜻한 기운을 전하는 북스인터내셔널과 오톨루가 되겠습니다.





#4.

“선생님 제가 일주일 동안 제일 기다리는 수업이 뭔지 아세요?” “이 수업만 기다려요” “아 벌써 끝나가 가기 싫어요”.. 언제 끝나냐고 얘기하던 친구들이 이젠 가기 싫다고 얘기한다, 오늘은 특히나 여운이 많이 남는다. 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어 참 감사한 겨울이다. 몹시 춥지만 또 몹시 따끈하다.






#5.

벌써부터 아련하다, 베트남 관련된 걸 집안 곳곳 두고 싶어 흥분해서 담아온 여러 물건들에 다행히 베트남 향기가 남아 있다. 데려온 아이들 만지작거리며 아이들 사진 속에 푹 빠져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지금 이곳에서의 나를 점검하려 내게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꼭 다시 만나면 좋겠다 꼭. 꼭.




#6.

저 먼 땅, 요르단에서, 그림책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우리 기관 그림책들이 전해지고 있다. 깜깜한 밤바다에서도 속도와 욕심이 나는 순간을 경계해가며, 자리를 지켜, 등대의 불빛을 기다리다 보면, 순조로이 항해할 수 있다.





#7.

느리지만 방향성을 가지고, 찬찬히 포기하지 않고.

1) 북인 운영하며 오톨루를 만들고 이런 활동들을 조금 더 홍보하고 싶었는데 오랜 시간 우리 기관의 디자인을 도운 디자이너가 몸소 제작한 우리 책갈피가 한 책방에 비치되러 간다.

2) 우리의 책들이 베트남 한 출판사와 수출 계약을 맺게 되어 하노이 현지 출판된다.

그림책을 통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 어쩌면 소망을 가지고 숱한 ‘견딤’의 시간을 보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늘 도우시는 그분의 은혜 속에서...

감사하고 또 감사, 오래전부터 기대하고 그려오고 좋은 이들과 함께 마음 맞춰가며 준비해왔기에.

오늘은 그냥 몹시 기쁘다.






#8.

멀리서 건너온 이 책을 붙들고 한참을 꼬-옥 안고 있다가 결국 눈물 흘리는 아내를 보고 그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의 삼십 대, 결국에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만났고 그게 나의 일이라 참 감사하다.






#9.

그림책 작가 할머니가 되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살고 싶은 이들의 꿈과 함께 했다, 매시간 책꾸러미 챙겨 정말 열심히 준비했던 수업, 오늘 마지막 수업 책 받아 든 분들 표정을 보니 어찌나 뿌듯하던지.

늘 그래 왔지만 이번에도 내가 함께 성장했고, 더 배우고 익혀야지 하는 마음도 먹게 됐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10.

하반기에 우리 그림책을 우간다와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자,

지난겨울부터 만나고 전화하고 메일을 주고받았다.

드디어 우간다 아이들에게 우리 그림책들이 전해졌다!

가장 보람찬, 또 가장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는 순간이다.

몇 번이고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확대해서 보고 또 보고, 쓰다듬는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11.

오톨루 어린이 작가반의 은송이가 용돈으로 샀다며 포스터 한 장을 건넸다.

평소에 다정하게 마음을 나눠주던 은송이, 수업이 끝나도 기억나고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포스터를 소중히 다루며 액자에 고이 넣었다.


유튜브 애티비 채널에 노라노할머니 이야기가 나왔다.


“90세까지 하루하루 몇 시간씩이라도 조금씩 꾸준히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을 만드는 것”


길게 보고 생각할 ‘일’, 기-일게 보고 힘을 모으는 시기와 그 응축된 힘을 발산하는 모든 시기에 여유를 쟁취하며 조급함을 이겨내고 우아할 수 있을 내공, 그리고 모든 것을 그분께 ‘의탁’해 매일이 평안하고 기쁜 그러한 삶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는 아침이다.







#12.

모지스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사람들은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하세요

때론 삶이 재촉하더라도 서두르지 마세요"


(이번에 제작한 우리 오톨루 에코백, 참 단정하고 어여쁘다.)





#13.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가식/거짓 없는 희열, 접할 때마다 느껴지는 가벼운 조증, 그림책의 세계에서 훨훨 향유하고 작더라도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마아아아니이이이 감사했던.






#14.

<한 번쯤은 삶이 힘들어져 울어도 보고, 좌절감에 몸을 떨어 본 사람만이 생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갖게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 앞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공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픔을 힘껏 보듬어 낸 사람에게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 사려 깊은 수다> 한 땀 한 땀 정말 정성 들여 제작해드린 이번 수강생분들의 책,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드디어 다 보내 드렸다 후아! 다들 만족하셨으면 좋겠다. 눈물이 있던 수업이었다. 그림책 속 문장에 혹은 서로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며 눈물 흘리고 휴지를 건네던 기억. 그리고 또 유난히 많이 웃었던 수업. 어쩌면 아픔을 힘껏 보듬어 본 우리였기에 같이 편하게 웃고 울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인연에도 감사합니다.




#15.

조은숙 교수님과의 오랜 시간 통화, 여러 좋은 말씀과 격려들.. 그리고 남편과의 대화. 교수님께서 아이를 키우며 느끼셨던 감정들, 지나고 보면 어떤지에 대한 생각들을 나눠주시며 그림책 수업에 대한 요즘 교수님의 생각, 다문화 가정 자녀나 국내 이주여성들을 위한 아이디어 등 여러 가지 얘기들을 해주시는데 마음이 단단해지면서 괜스레 눈물이 핑.. The more you get, the less you are. 그래, 과거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예측하느라 소모되는 에너지를 다 현재로 몰자. 미루다 미루다 잊힌 꿈도 아이 키우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크시니 그저 믿고 맡기고 주어진 일만 차분 차분 해나 가보자. 아이들에게 힘껏 사랑 쏟아주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 지켜가며. 감사한 아침이다.






#16.

작게 존재하는 타라북스, 그들이 일하는 방식, 규모. 무엇보다 같은 여성으로 또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닮고픈 타라북스의 기타 울프 대표. 엉덩이를 붙일 틈도 없이 바쁜 집콕 라이프 속 책만이 주는 위안, 그 속에서 찾아내는 보물 같은 문장들. 그리고 더 멀리 보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핸드폰 사진 용량을 정리했는데 우리에게 이런 순간들도 있었구나 싶다. 우리 부부는 10년 차. 아이들도 많이 자랐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보내야지.






#17.

상념 없이 고요한 시간. 잠시 고개를 들어 집을 훑어본다. 멍- 모빌의 미동이 보배롭게 느껴진다. 지금 나는 정말 사랑하는 작가와 함께 있다. 내일 그림책 연구회 모임을 준비하며 읽고 또 읽는 주디스커의 생애. 그녀의 일러스트가 담긴 페이지들을 괜스레 다정한 손길로 여러 번 쓸어내려본다. 이번 주간 내내 실핏줄이 터진 눈 흰자위는 선홍빛을 띠었고, 이런 바닥난 체력과는 상관없이 이런저런 일들이 밀려들었다. 분명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정확함을 넘어 딱딱하고 까칠한 상대의 말과 날 선 태도는 나를 더 피곤하게 했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피로한 관계에서 비롯된 힘든 시간은 손전등이 되어 속마음을 나누고픈 사람이 누구인지를 비추어주었고. 그들의 위로와 기도로 하여금 지금 내가 다시 씩씩하게 책상 앞에서 사랑하는 그림책을 마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연구회 멤버들에게 그저 음미하는 시간도 힘을 가지고 있어서 비로소 모호함을 깎아내고 성장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었는데. 그 말에 책임을 져야지 싶다. 다시 소신껏 사랑하는 일을 음미하며 해나갈, 마음을 쏟아 이어나가고 싶은 일을 지켜내기 위해, ‘소생’의 용기를 내고자 한다. 통화로 카톡으로 힘을 실어준, 나를 위해 기도해 준 각별한 그녀들과. 또 지금 내 방을 채운 그림책들만으로도 풍미로운 밤이다. (무엇보다 나 빼고 세 남자들이 다 잠들어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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