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_기획 방향(3단 구성) 설정하기
기획 방향은 무엇이며,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요? 기획 방향은 기획 의도대로 내용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돛과 같습니다. 기획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다면 앞은 잘 나가다가 뒤에서 산으로 갈 수도 있고, 알맹이 대신 허황된 말만 가득할 수도 있는 것이죠. 잘 된 기획 방향은 전반적인 내용의 흐름과 주제 의식이 같고, 기획서를 읽고 난 후 메시지가 한 단어 혹은 하나의 이미지로 뚜렷하게 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기획 방향을 잘 설정한 예가 있는데요, 바로 <유퀴즈 온 더 블록>입니다. 매 회마다 감동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로 큰 울림을 줘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이 프로그램의 시작은 길 위에서였습니다. 길을 돌아다니며 유재석과 조세호 두 MC가 시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퀴즈를 푸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더 이상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위기라고 했을 때 유퀴즈 제작진은 다른 포맷을 도입합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매 회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인물을 섭외하기 시작한 것이죠. 처음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흥미로운 내용을 강조했다면, 이후에는 '주제'를 강조하면서 감동과 웃음을 주던 예전 포맷의 이야기와 결이 비슷해졌습니다.
포맷이 바뀐 이후 유퀴즈가 더욱 흥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매력적인 인물들, 엠씨들의 티키타카, 감동적인 이야기 등 등...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우연한 만남으로 진행되는 기존의 정돈되지 않은 방식에서 섭외를 통해 '서론-본론-결론'으로 이야기를 정리해서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기획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퀴즈의 바뀐 기획 방향에 대해 말하기 앞서 조금 기초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던 글쓰기의 기초인데요, '글쓰기의 3단 구성' 기억하시나요? 글쓰기의 3단 구성은 '서론-본론-결론'으로, 각 부분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역할이 분명합니다.
서론 : 기획의 도입부로, 기획 의도를 전달하고 문제의 원인 및 흥미를 유발한다.
본론 : 기획의 중간부로, 문제의 해결책 및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결론 : 기획의 결말부로, 서론과 본론을 정리한 짧고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피력한다.
기획 방향은 글쓰기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이 '3단 구성'을 잘 설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유퀴즈는 기존의 어수선한 스토리텔링에서 이 '3단 구성'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각 회차의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유퀴즈가 더욱더 사랑받을 수 있었던 충분한 요소였습니다.
유퀴즈는 여러 작가들이 인터뷰이의 강연과 책, 영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10여 명의 피디들이 각자 잘하는 파트를 나눠서 편집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눠서 편집을 하는데도 전체 이야기에서 흐름을 벗어난 에피소드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기승전결과 서론-본론-결론의 구조적 짜임에 맞춰 전반적으로 이야기의 결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유퀴즈는 매 회 다른 공통주제에 맞는 인물 3~4명 정도를 인터뷰합니다. 그리고 초반 5분 30초 내외로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미리 보여주고, 중간은 인터뷰 내용으로 꽉 채운 뒤 마지막 5분 30초 정도는 그날의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아웃트로를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사실 3단 구성 그대로 정직하게 글을 쓰면 어쩐지 밋밋하고 뻔한 글이 됩니다. 기존의 3단 구성이 '서론-본론-결론'을 '1:1:1'의 비율로 구성한다면, 유퀴즈는 초반과 후반의 비중을 5분 30초로 짧게 줄여 인터뷰에 집중시키면서도 처음과 마지막에 임팩트를 강하게 줍니다. 이처럼 기획의도에 맞게 제안 내용의 비율을 조절하는 것 또한 기획 방향을 잘 설정하는 한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유퀴즈의 구성을 잘 보여주는 회차는 '국가대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 올림픽 2020'을 맞아 국가대표 선수들을 인터뷰한 회차인데요, 3회에 걸쳐 방송될 정도로 유퀴즈에서도 많이 신경을 쓴 특집이었습니다. 그중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국가대표 1편의 후반 5분 30초'입니다.
당시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 선수와 여자 국가대표 양궁팀 강채영 X장민희 X안산 선수 및 럭비 국가대표 안드레 진 X정연식 선수의 이야기가 방송되었습니다. 유퀴즈는 마지막 5분 30초에서 국가대표를 독립투사로 비유하며 애국심을 강조했는데요, 누군가는 '국가대표를 무슨 독립운동가와 비교해' 라며 비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 인터뷰에서 재일교포였던 안창림 선수의 귀화 스토리와 홍콩과 일본의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한국 럭비 국가대표를 향해 달려온 안드레 진, 정연식 선수의 이야기가 있었기에 마지막 5분 30초는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유퀴즈는 우리가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론, 본론, 결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사실 인터뷰 내용이 유퀴즈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만, 티비를 틀자마자 인터뷰가 진행된다면 어떨까요? 어쩐지 몸을 풀기도 전에 운동을 시작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렇다면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프로그램이 바로 끝나면 어떨까요? 아마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지 않은 채 욕실을 나서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준비가 안돼서 난감하고 어리둥절하겠죠.
따라서 유퀴즈의 초반과 후반 5분 30초, 즉 서론과 결론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문이기에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모든 이야기는 기획 방향, 즉 '3단 구성'을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기획서는 3단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획서 또한 유퀴즈의 비율처럼 도입부와 결말부는 짧고 굵게, 중간부의 본 내용은 길고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게 좋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기획의 첫 단추, 도입부를 쓰는 방법을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