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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실 Oct 03. 2021

로빈후드 화살을 쏘기 위하여

05_최대한 많은 정보 수집하기




 3개월 간의 인턴 기간 후 정규직 전환의 수순이었지만, 당시 가장 바쁜 시즌에 입사하면서 출근 3일 만에 과업이 떨어졌습니다. 과업은 회사에서 맡고 있는 한 프로농구단의 시즌 캐치프레이즈를 작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캐치프레이즈란 프로스포츠에서 구단의 시즌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슬로건을 말합니다.


농구단 캐치프레이즈라니! 취업 전에는 상상도 못 한 분야의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막막함이 앞섰습니다. 몸 쓰는 일은 젬병인 데다, 잘하지도 못한 스포츠라니. 하지만 시작하게 된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대학교 광고 수업에서 카피를 작성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아이데이션을 위해 구단에 대한 정보를 모조리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구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난 캐치프레이즈부터 찾아보았습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여러 번 문구가 바뀌면서 일정한 형태의 틀을 갖춘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구단을 검색해 지난 시즌까지의 뉴스를 모두 읽어보았습니다. 지난 시즌 성적은 어땠으며, 감독과 선수단의 구성은 어떤 식으로 변화했는지, 새로 트레이드된 신인 선수와 외국인 용병 선수들의 실력은 어떤지, 감독과 주장 및 선수들은 이번 시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구단의 프런트가 되거나 선수들을 인터뷰한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찾아보았습니다.


그러자 대략적으로 구단의 팀 컬러와 감독님의 성향을 파악하게 되었고, 감독님이 이번 시즌은 어떻게 선수단을 구성하고 싶은지, 선수들 중 에이스와 부상 선수는 누구인지 속속들이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커뮤니티와 구단 홈페이지 등을 통해 팬들의 반응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구단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자 캐치프레이즈를 뽑아내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감독과 선수단의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단어와 팀 컬러를 반영하기도 하고, 지난 시즌 성적을 잘 내지 못했다면 더욱 잘하겠다는 방향으로 캐치프레이즈를 쓰기도 했습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알게 된 팬들의 바람을 반영하기도 하고, 팬들과 함께 경기를 뛰겠다는 방향으로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쓴 캐치프레이즈가 30개가 넘었습니다. 처음이라 의욕이 앞선 것도 있었지만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하면서 캐치프레이즈의 방향성도 여러 가지가 되었습니다. 팀장님께서 왜 이렇게 많이 했냐고, 놀라시며 검수를 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부터 저는 기획을 위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양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회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획의 경우 지난 4~5년 간의 이슈를 파악해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크리에이티브가 필요한 기획의 경우에도 사실을 기반으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설득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프로스포츠 기획에서는 특히나 시즌 성적과 경기 흐름, 부상 및 트레이드 선수 등 수시로 확인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입사 후 며칠 뒤부터 회사에서 계약을 맺은 구단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구단의 SNS를 팔로우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계약을 맺고 있는 구단의 라이벌이 누구인지, 요새 잘하는 구단은 어디인지, 그리고 혹시나 다른 구단에 제안서를 넣게 되었을 때 조금 더 깊이 있는 기획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이슈는 라이브로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바로 알고 있냐'며 회사 내에서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기획의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정말 중요한 단계입니다.






올해 여름은 참 뜨거웠습니다. 바로 '도쿄올림픽 2020' 때문인데요, 그중에서도 개인, 혼성, 단체 모두 금메달을 거머쥐면서 양궁 사상 첫 3관왕을 기록한 안산 선수는 3초 만에 화살을 쏘기로 유명합니다.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화살을 쏴서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죠. 그럼에도 10점 적중률은 무서울 만큼 높습니다.


정확도와 신속도를 겸비한 안산 선수는 얼마나 화살을 쐈을까요? 올해 올림픽에 출전한 양궁 국가대표는 국내 상위 130명 중 1차로 64명, 2차로 20명, 3차로 8명, 마지막 평가전 2회를 거쳐 최종 3명이 선발되었습니다. 이때 쏜 화살의 개수만 총 4,055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보 수집은 기획이라는 과녁에 수차례 화살을 쏘는 것과 같습니다.

화살을 얼마나 쏘아야 국가대표가 될지, 얼마나 정보를 수집해야 기획에 필요할지 알 수 없습니다. 10점에 맞을 때까지 쏘고, 기획에 필요할 때까지 찾는 것이죠. 일단 화살을 많이 쏘고, 정보를 많이 찾아놔야 실력이 상승하고 기획의 흐름이 잡힙니다. 수차례 화살을 쏴서 10점을 한 번도 못 맞힐 수 있고, 정보를 많이 찾아도 다 쓸모없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때는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10점에 근접하고 기획 의도에 맞을 때까지 다시 쏘고, 찾는 거죠. 


'도쿄올림픽 2020' 때 국민들이 처음으로 흥분했던 종목은 양궁, 그것도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 도입한 '혼성 양궁' 경기였습니다. 안산 선수의 차분함과 김제덕 선수의 열정은 물과 불처럼 다르면서도, 한 팀으로써는 매우 이상적인 조합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서로가 상호 보완되어 티비 너머로도 그들의 에너지가 전달되는 기분이었죠. 개인적으로 혼성 경기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장면 중 하나는 8강전 때 김제덕 선수가 쏜 화살을 안산 선수의 화살이 꿰뚫던 순간이었습니다.


안산, 김제덕 선수의 로빈후드 애로우 (출처 : 유퀴즈 온 더 블록)


김제덕 선수가 먼저 10점 화살을 쐈고, 뒤이어 안산 선수가 쏜 화살이 김제덕 선수의 화살을 뚫고 9점 과녁에 꽂혔습니다. 이를 두고 '로빈후드 화살(애로우)'라고 부르는데, 통상적으로는 화살을 꿰뚫기 때문에 앞 화살과 동일 점수가 된다고 합니다. 훗날 한 프로그램 인터뷰에 따르면 안산 선수의 목표 중 하나가 중계 화면에 이 로빈후드 화살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선수의 모습이 정말 멋지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획에서도 '로빈후드 화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기획이라는 과녁에 수차례 화살을 쏘며 정보를 수집해도, 결국에는 기획 의도에 맞는 화살이 필요합니다. 


기획에서의 로빈후드 화살은 나와 타인의 생각이 교집합을 이루는 지점, 누가 봐도 이 방향이 맞다고 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설정한 기획의도에 맞으면서도 타인이 볼 때도 수긍이 가는 지점. 이 부분이 기획의 흐름을 결정짓는 <기획 방향>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획 방향은 어떻게 세우면 될까요? 이 부분은 다음 파트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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