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_청자의 니즈 파악하기
인턴 생활은 정말 힘들었지만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무엇이든 부딪히고 보는 맨땅에 헤딩력, 힘들어도 이겨내고자 버티는 힘, 그리고 또 하나는 많은 사람들과 대면 후 생긴 외향성입니다. 어릴 때는 친구들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언제 끼어들어서 말을 해야 하지?' 하는 걱정에 대부분 웃거나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었습니다. 소심한 성격 때문에 발표를 하거나 대회를 나가보는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내향적인 성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스무 살이 된 이후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과 낯선 환경은 기존의 안전한 관계를 지향하는 성향을 더욱 고착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고부터는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맨땅에 부딪히면서 많은 업체에 문의를 하고, 일면식 없는 지원 스텝들과 축제 일을 하는 등 낯선 환경과 사람을 수시로 접하게 되면서 '새로움'에 대한 불안함이 조금씩 사라졌습니다. 일을 하기 전 제게 '새로움'이란 변화와 불안이 공존하는 '불편한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움도 '자주 많이' 접하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새로움에 적응하면서 점점 '제 목소리'를 내는 경험이 많아졌습니다.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만히 있던 제가 처음 보는 상대에게 먼저 말을 건네게 되었고, 어떻게 말을 끼어들어야 할지 고민하던 제가 남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제 새로움이 마냥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움이 적당한 긴장과 설렘을 동시에 유발했습니다.
그렇게 인턴을 마친 지 정확히 6개월 뒤, 저는 또 한 번의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을 보기로 한 회사는 지금 다니고 있는 그래픽 디자인 회사였습니다. 디자인은 생소하지만 저를 뽑던 직군은 '기획과 카피라이팅'이었기 때문에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모두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로 서류를 넣었습니다. 회사의 규모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교집합을 발견해 직무 중심으로 서류를 내자는 선택이었습니다.
마감 직전에 우연히 이곳의 공고를 발견하고 후다닥 써내느라 연락이 왔을 때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마감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너무 빠른 연락에 '원래 채용은 이렇게 급하게 되는 건가?' '이상한 곳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혼란스러웠습니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면서 회사가 괜찮은지 무한 추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면접 당일이 되었습니다.
대표님과 1:1 면접을 보면서 회사가 조금 특별한 디자인 회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프로스포츠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죠. 남녀 프로농구단의 구장 내외부 및 인쇄/제작물 디자인을 주로 했고, 야구와 축구도 가끔씩 일을 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회사 포트폴리오를 보았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스포츠를 전문으로 디자인하는지 몰랐습니다. 글만 쓰던 저는 생각도 하지 못한 분야여서 질문 거리가 많았습니다.
내 직군의 사람은 몇 명인지, 어떤 일을 하는지, 입사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등 묻고 싶은 걸 다 물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편이어서 추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거의 뽑기 직전의 최종 후보자가 두 명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심사숙고 끝에 최종적으로 저를 뽑은 이유는 '회사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많이 보여서였습니다. 신입은 사실 실력은 거기서 거기고, 결국에는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많이 물어보는 적극적인 태도가 일을 해도 열의 있게 할 친구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기획에서도 이 호기심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태도'는 정말 중요합니다.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이 기획을 왜 하는가'입니다. 청자의 니즈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제일 우선인 거죠. 제안을 의뢰한 사람의 입장에서 이 기획이 왜 필요한지, 어떤 부분을 보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기획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표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본 것은 아니지만, 저의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가 대표님의 니즈에 맞았던 것입니다.
기획에서 청자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물음표 던지기'입니다.
'이 제안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걸까', '회사는 어떤 사람을 뽑으려 할까', '저 사람의 기분은 왜 안 좋을까' 등등... 일과 사람 모두 잘 풀리고 싶다면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모든 일 마다 사사건건 '왜????'를 무한 반복하며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각자의 사생활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면 상대방이 난처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일에서도 너무 '왜'를 파고들면 기획 의도를 파악하다 맹점을 놓칠 수도 있고, 시간을 너무 많이 써버려 본론에서 힘이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과 인간관계 모두 적당한 관심과 질문이 필요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면접을 보기 전에 했던 걱정은 회사를 다닌 지 1년이 지난 지금 괜한 기우였습니다. 회사 규모가 작긴 하지만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꾸준히 여러 고객사와 협업을 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으며, 각자 맡은 바를 잘 해내면 자율과 편의가 보장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를 통해 입사 전의 추측은 정말 추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돈을 많이 주더라도 내게 맞지 않다면 좋은 회사가 아니며, 이 모든 건 까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입니다.
따라서 회사를 비롯한 그 어떤 선택이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의 니즈'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해야 합니다. '일을 많이 하더라도 돈을 많이 주는 곳이 좋다!'라는 생각이 들면 연봉이 높은 곳으로 가야 하며, '연봉은 조금 적더라도 야근 안 하고 일 하고 싶다!'라고 한다면 업무 강도가 낮은 곳을 가야 합니다. 회사뿐만이 아닙니다. 문제집을 풀다가 복습이 잘 안 되면 오답노트를 쓸 수도 있고, 헬스가 안 맞으면 필라테스를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은 나에게 'Fit'한 방법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 여정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게 알맞고 편안한 방식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여정의 전제는 내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스스로 여유가 없다면 타인은 물론이고 나 자신도 살펴볼 여력이 생기지 않죠. 모두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먼저 관심을 줘 보십시오. 오늘 하루 무엇을 하며 보내고 싶은지, 점심은 무엇을 먹어야 행복할지, 내가 건강하기 위해서 어떤 운동을 할지, 모든 것은 '내'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나'의 니즈는 무엇인지 작은 것부터 질문을 던져 보세요. 조금씩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기며 일과 사람 모두에게서 여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