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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실 Sep 07. 2022

당신의 머릿속에 한 마디만 남긴다면

구단의 시즌 방향성, 목표, 다짐을 축약한 캐치프레이즈



시즌 컨셉 기획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해의 캐치프레이즈를 작성하는 것이다. 캐치프레이즈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광고, 선전 따위에서 남의 주의를 끌기 위한 문구나 표어'라고 나온다. 'catch(잡다)+phraze(구, 구절)'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한 구절, 한 문장을 뜻한다. 스포츠에서는 이번 시즌 목표와 다짐, 방향성을 담은 한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제안한 캐치프레이즈 중 채택 된 KCC 이지스의 캐치프레이즈. 올해는 어떤 캐치프레이즈 일까요?



캐치프레이즈는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경기장 내외부 장치장식물과 여러 인쇄, 마케팅 제작물에 쓰일 뿐만 아니라 경기장 직관과 방송 중계를 통해 관람객들이 직간접적으로 캐치프레이즈를 보고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는 간단하고 짧아야 한다. 너무 어렵고 길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지 않는다.







흔히들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첫인상이 3 안에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호감형인지 비호감형인지, 소개팅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인지 아닌지  짧은 시간 안에 우리의 뇌는 판별을 끝낸다. 구단의 방향성을 담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캐치프레이즈를 뽑기란 쉽지가 않다. 캐치프레이즈를 비슷한 시리즈로 반복하는 구단의 경우에는 더더욱 지난 시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단어를 찾아야 해서 어렵다.



한 문장 안에서도 여러 단어를 파생해서 이리저리 조합하며 머리를 싸매다가 문득 기발한 구절을 발굴하면 온 몸의 피가 새로 도는 기분이 든다. 학창 시절 시를 쓰고 여러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카피라이터를 꿈꿨던 이유도 이 '짜릿함'에 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다가 어느 순간 답이 나올 때의 그 기분! 눈이 갑자기 맑아지고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는 그 기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올해는 유독 모든 구단의 캐치프레이즈가 어렵게 느껴졌다. 구단별 새로 바뀐 선수단도 많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곳도 더러 있었다. 매해, 매 순간 참신하면서도 개성 있는 캐치프레이즈를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문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은 커진다.  



이번 2022-2023 시즌 여자프로농구단 중 한 곳의 캐치프레이즈를 고안할 때였다. 올해는 조금 더 새롭고 신선한 캐치프레이즈를 제안하고 싶어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모든 뉴스와 인터뷰를 샅샅이 조사했다. 여러 인터뷰를 보던 중 감독님께서 지금 선수단으로는 속공 플레이를 전술로 많이 쓰시는 걸 알게 되었다. '빠른 속공'을 키워드로 잡으니 시즌마다 동일한 틀에서 핵심 글자만 바뀌던 기존 캐치프레이즈에서 전혀 다른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거다!'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발굴하는 순간머릿속에 느낌표가 세워졌다좋은 아이디어는 구상을 하자마자  거라는 확신이 든다그리고  확신은 대체로  들어맞는다. 캐치프레이즈를 발표했을 때 구단 프런트분들 뿐만 아니라 함께 발표를 보던 운영대행사 팀장님까지 이 캐치프레이즈를 마음에 들어 하셨다. 구단주님께 보고 후 최종적으로 이 캐치프레이즈가 확정되면서 최근 들어 가장 달콤한 희열을 맛보았다.



예시에 설명한 신한은행 에스버드 2020-2021 시즌과 2021-2022 시즌 캐치프레이즈. 'I'm ~~' 캐치프레이즈가 고정적이었다.


이번 2022-2023 시즌 확 바뀐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캐치프레이즈





기획자이자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내가 제안한 기획과 캐치프레이즈가 선정될 때다. 그러나 더 보람차고 원시적인 기쁨은 내가 작성한 한 마디로 '누군가의 마음을 끌어당겼을 때'이다. 짧고 간단한 몇 단어, 한 구절로 사람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키는 것, 얼마나 멋지고 낭만적인 일인가.



앞으로도 나는 '이거다!' 하는 순간을 위해 몇 날 며칠, 몇 달을 고생할 테다. 그럼에도 그 순간의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사람들의 탄식에 가까운 감탄과 연신 끄덕이는 고개를 보며 언제 힘들었냐는 듯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이디어를 구상할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듯,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한 마디를 많이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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