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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 Oct 23. 2021

나이 서른에 대하여

 스무 살 때 대학 새내기 모임에서 한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고스란히 무리를 짓게 되면서 10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매번 다른 시기에 휴학을 하고 얼굴을 못 보는 때가 많아지자, 아쉬운 마음에 서른이 되면 다 함께 꼭 크루즈 여행을 같이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는 어디를 얼마나 갈지, 그래서 총예산은 얼마인지 등의 계획적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면서도 종종 "우리 크루즈 여행 갈 때까지 몇 년 안 남았네?" 혹은 “나중에 돈 없어서 못 간다 하지 말고 지금부터 모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작 서른이 되어 깨달은 건 가지 못할 가장 큰 이유가 돈이 아니라는 거다. 돈이야 신용카드를 쓰는 월급쟁이들에게 목표만 있다면 어떻게든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시간이 없네? 우리에겐 부족한 건 연차였다. 계모임을 시작한 지 5년이 넘었지만 다 함께 얼굴 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인데, 최소 2주의 시간을 내야 하는 크루즈 여행을 함께한다는 건 충분히 현실적이지 못한 약속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지", "무슨 생각으로 크루즈 여행을 하자 한 거지? 우리 참 철없다."라며 쉽게 그 약속을 잊었다.


 삼십 대는 스무 살 무렵의 내가 현실에 순응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 같다. 어찌 보면 고작 30년 살았고, 한 세대의 첫걸음을 떼는 거니까 새 출발을 하는 기분도 들지만, 발걸음은 스무 살 마냥 가볍지가 않다. 내 경험, 내 감정, 내 성장을 우선순위로 두고서 30년 동안 열심히 내 자아를 발견하고 다듬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니 나이를 먹어가는 내 가족, 얼굴 볼 때마다 즐거운 내 친구들, 내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과의 인연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은 현실의 나를 안주하게 한다. 당장에 일 년만 버티고 안 맞으면 그만둘 거야, 라던 직장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닌다. 그런 내가 한편으론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그러면 새로운 고민이 머릿속에 내려앉는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 뿌리를 내려야 할지, 새 땅을 찾아 출발해야 할지를 늦지 않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 선택의 바탕에는 나의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은퇴, 자매의 결혼, 사촌 언니의 임신이 우선순위로 오른다. 좋은 딸이, 동생이, 이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곤 한다.

 이런 생각은 서른이 되면 생기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누구는 스물다섯이 될 수도, 서른다섯이 될 수도 혹은 평생을 ‘흐린 눈’을 한 채 모른 척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29년을 알고 지냈던 철없는 나를 떠나보내야만 하는 시기가 왔고, 앞으로 조금씩 많은 것에 무뎌질 거라는 사실이 조금은 슬프다. 누구나 그런 순간이 오듯, 꽃이 싱그럽지 않고, 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을 때. 한편으로는 또 스스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 자신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예쁜 딸, 언니의 듬직한 여동생, 조카의 멋진 이모인 나를. 이 또한 누구나 그런 순간이 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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