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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리고 살리고 Jan 24. 2019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창비, 2018)

                                                                                                                                                 

장편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황정은, 창비, 2018)는 계간 《창작과 비평》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원제는 ‘소라나나나기’다. 소라, 나나, 나기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미나리란 뜻의 소라(小蘿), 아름답다는 뜻의 나나(娜娜), 가마솥이란 뜻의 나기(鏍基). 나나를 제외하곤 각자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실수로 그러한 뜻이 되었다. 이 책은 실수로 붙여진 이름만큼 하찮은 존재로 태어나 고달픈 현실을 살아내는 세 젊은이의 이야기다.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먼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소라와 나기는 아무래도 이상한 자신들의 이름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특별하다며 포장하지도 않는다. 삶을 있는 그대로 보듯 이름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열매고 뭐고, 나는 본래 미나리 인지도 모른다.”(p.14, 소라)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 정도 의미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p.169, 나기)


아름다울 ‘나’가 중복되어 앞뒤로 아름답다는 나나는 아름다운 삶을 살까. 그 이름을 지은 애자는 불행한 현실을 감당해내기 어려워 엄마 역할은 잊은 채 시든 꽃처럼 자신을 방치한 지 오래다. 자연히 두 딸인 소라와 나나의 삶도 방치됐다. ‘나나’는 그런 자신의 이름을 “애자의 함량이 지나치게 높은 이름”(p.86)이라 느낀다. 삶은 이름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수사법이다. 


소라 자매가 나기와 처음 만난 곳은 지하 셋방이다. 열심히 일하던 아버지가 공장의 기계 톱니바퀴에 말려들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보상금을 친척들이 가져갔다. 엄마, 애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임신한 나나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이렇다 저렇다’할 감정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내면의 상황과 선택의 이유만을 독자에게 무심히 던질 뿐이다.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편모 가정에서 가난과 함께 자라고, 미혼모의 길을 걷겠다는데 이들을 지지하게 되는 건 어째서일까. 무심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는 소설을 이끄는 힘이 있다. 한 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나나가 어릴 적 어항 속 금붕어를 가지고 놀던 중 물속에서 달아나는 금붕어의 꼬리지느러미를 막대 끝으로 잡아 찢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기는 나나의 뺨을 몇 번이나 힘껏 때리며 말한다.


“금붕어를 건드릴 때, 너는 아팠어? 고개를 저었습니다. 같은 거야,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너하고 저것하고, 같은 거야. 아파? 오라버니는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기억해둬.라고 오라버니는 말했습니다. 이걸 잊어버리면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pp.130~131) 고통 속에 자랐다고 해서 고통을 낳는 또 다른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이들의 끈질긴 사유와 사투. 책을 중간에 덮을 수 없던 이유인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 사는 젊은이들이 여기 있다. 상황에 이끌려서가 아닌 자신에 대한 이해와 경험과 공감을 통해 삶을 이끌고 선택하는 그들. 하찮다는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그들.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주어진 삶을 충분히 살아낼 것이다. 그것이 ‘존재의 가치’이며, 그 가치를 찾아내는 것이 소설을 읽는 우리의 훌륭한 자세가 아닐까.


썼다 버리기 아까워 덧붙임.


타인의 고통을 보며 상대적 위안을 얻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소설을 얕잡아 보는 것이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해서 세상에 없는 걸로 만들진 말아줘."(p.187)란 나기의 외침이 책을 덮고도 한참을 맴돈다. 나의 상상력 부족으로 얼마나 많은 삶을 외면했나. 타인의 고통을 생각할 줄 알기 위해, 그러한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소설은 널리 읽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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