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
아이를 돌보며 주책 맞게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스피닝에 데려 갔다. 어른들은 서서 페달을 굴리는 것도 몇 주가 걸리는데 아이들은 무게 중심이 다른지 바로 서서 아주 잘 탄다. 두 아이를 내 시선 안에 들도록 앞에 두고 쩌렁대는 음악과 현란한 조명에 머리를 흔들다가 아이들 뒷모습을 보게 됐을 때 눈물이 핑. 너무 이뻐서 보다가 미소가 곧장 우는 얼굴이 되는 이상한 표정이다. 벅차서 웃음 정도로는 감당 안되는 기분. 주책이다.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그 내용이 너무 슬프다. 「콩가면 선생님이 웃었다」라는 책이다. 인물 한 명이 부모님이 안 계신다. 모든 관계를 말썽을 통해 맺으려는 케릭터인데 그 애가 나오는 부분마다 눈물이 나온다. 또 한 명은 엄마 아빠가 아이를 고모네 맡기고 베트남에 일하러 가셨다. 걔가 고모 심부름하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 고모가 학대하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살림에 조카에게 심부름 잘했다고 500원 주는 장면인데 웬 눈물. 너무 따뜻하잖아......하면서 운다.
애들은 '엄마, 진짜 울어?' 하며 눈물도 닦아주다가 몇 번 그랬더니 '엄마 또 운다'하며 으례 그려려니 한다. 이런 메마른 것들. 아이들이 보고 느끼라는 설정 같은데 애들은 아무 생각 없다. 나만 왜 이렇게 슬픈건지.
「코끼리 똥」이란 책도 있다. 주인공 코끼리는 딱 100년을 사는 데 태어난 후 50년은 하루에 똥이 한 개씩 는다. 첫째 날은 1개, 둘째 날은 2개, 1살 때는 365개, 10년 째 되는 날엔 3,650개의 똥을 싸는 거다. 50년이 되자 바로 다음 날부터는 다시 똥이 한 개씩 줄어든다. 99년 364일째 되는 날 꼬끼리는 1개의 똥을 싼다. 100년 째 되는 날 꼬끼리는 아무 똥도 싸지 않았다.
인간도 이와 같을 텐데. 우린 지금까지와 같이 뭐든 늘어나고 좋아질거라 기대한다. 그 기대가 기대로 끝나야 할텐데 믿어버리는 게 문제. 믿는 순간, 확신을 갖게하고 확신과 다른 현실을 볼 때마다 불만족스럽다.
내 나이 41세가 되어보니, 작년과는 느낌이 다르다. 건강한 인간 수명 80세라 가정할 때, 성장 그래프가 팍 꺽인 느낌. 성장, 발전, 증가는 안녕. 자의든 타의든 자연스럽든 뭔가 하나 씩 덜어지고 줄어지는 느낌이다. 기억력도, 시력도, 노력도, 의지도 힘과 관련된 건 하나 씩 잃는다.
이런 나에 비해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는 그 찰나를 우연히 보게 되면 이뻐 죽겠다. 자식이라서 좋다. 좋아서 운다. 좋아도, 슬퍼도 에니타임 울 것 같은....... 느는 것은 주책 뿐.
그림책을 보며 쌩뚱맞게 우는 나는 누구냐?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 자라지 못한 내가 있나 보다. 마냥 늙어가기엔 난 너무 어리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