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리고 살리고 Apr 21. 2019

"엄마, 나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너에게>>(율마, 일센티페이퍼, 2019)

친구가 저자가 되었다. 저자가 되기 전, 그녀는 결혼도, 아이도 나보다 늦었다. 둘 다 일을 하며 취미 삼아 또는 제2의 직업을 알아볼까 하여 공부하던 중 만났다. 워낙 재주가 많아서 일, 공부, 그림, 음악 등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다 늦었나 보다 했다. 나도 늘 바랬지만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희망사항. 아이들이 주인공인 책을 써보리라, 생각만 했었다. 나의 바람은 생각에 머물렀고 그녀는 실행에 옮겼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너에게>>(율마, 일센티페이퍼, 2019)의 저자는 "아이를 키우며 인간이 가장 사랑스럽고 귀여운 시기"를 그림일기로 그렸다. "우스갯소리로는, 아이가 사춘기가 와서 부모 속을 뒤집어 놓고 돌아서면 등짝에 이 그림일기를 던지겠노라"(p.306)고 쓰던 일기를 우연히 친구에게 보여줬다가 그 친구의 소개로 출판사 대표님과 덜컥 계약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몇 장 넘겨보니 덜컥 계약을 맺게 된 이유를 알겠다. 내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얘기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분주한 불안감에 묻혔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심지어 아홉 살 딸이 묻는다.

"엄마, 나 아기 때도 보고 있어도 보고 싶었지?"

"어떻게 알았어?"

"책에 쓰여 있잖아."

딸아이마저 자신의 이야기로 믿으며 흥미진진하게 읽다 자기 전, 책갈피를 꽂아두었다. 아이가 어릴 때의 모습을 물을 때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 몇 가지만으로 도돌이로 돌려막기를 해왔는데 이 책으로 인해 뭔 짓을 해도 이뻤던 '그때 그 짓'들에 대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게 아쉽다. 그중 육아는 특히 그렇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은 이제 지겨울 정도다. 저자 또한 첫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성장을 통해 얻는 깨달음을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아기에게 있어서 도(道)는 마땅히 가야 할 길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 아닐까. 이게 곧 아기의 '도'이고 도를 잘 지켰을 때 건강하게 자란다는 게 리(理) 일 것이다."(p.80) 이것이 작가가 파악한 아이를 향해 주고받는 '도리도리~까꿍' 중 '도리'의 의미다.

"처음에는 따뜻하고 읽다 보니 유익하네 싶다가 끝에는 코가 찡했다."(이봉주) 책 뒤표지의 이봉주 선생님의 짧은 소감이 와 닿는다. 이렇게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세 번째 줄 '쌍둥이 엄마 정현주'가 나다. 부끄럽다. 좋은 책에 낙서해 놓은 기분이다. 그래도 내 이름이 인쇄된 두 번째 책. 나에겐 큰 의미다.


처음 육아를 하는 분이나, 좋았던 시절 다 잊혀 그리운 분들,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고픈 분들께 권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학부모가 된 후, 따뜻한 눈길보다 충고나 조언을 일삼고 안아주고 쓰다듬는 대신 어릴 적에 비해 못 미치는 외모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나에게 일침이 되는 책이었다. 다시 이 책을 닮아가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