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하는 삶, 세 번째 이야기
열정하는 삶
: 열심히 애정하는 우리의 삶.
Q. 3년 전,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건방진 간호사 :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다할걸?
이직 프로듀서 : 너무 걱정 마. 어차피 힘들걸?
매일 속을 태우며 고민하고 여유 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던 3년 전의 그들에게, 눈물을 닦아주며 전하고 싶다. 미안하지만 눈앞에 놓인 고통의 크기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고. 그렇지만 당신들은 그 서러움을 이를 꽉 깨물고 감미롭게 즐기며 더 큰 야망을 가질 것이라고.
건방진 간호사 : 3년 차 간호사
건방. 산소포화도 측정을 위해 손가락을 달라는 간호사에게 환자는 건방지다고 답했다. 3년 차 대학병원 간호사는 이제 이렇게 터무니없는 소란도 거뜬하다. 살아갈 날에 비해 턱없이 짧을 찰나의 3년은 P에게 묵직한 내공을 더해주고 있다.
P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교수님 추천 장학금, 성적장학금 등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은 다 받았다. 동아리장, 멘토링장, 봉사활동장 등 할 수 있는 장은 다 했다.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해보고 알바도 하면서 4년의 찬란함을 맘껏 누렸다.
건방진 간호사 :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꼭 가고 싶었던 집 근처 병원이 있었어요. 4년을 그곳만 바라보면서 붙기 위해 정말 무엇이든 하겠다고 간절히 바랬어요. 그리고 그곳은, 네 맞아요. 제 첫 직장이 되었습니다. 컴퓨터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 기도하던 그날을 떠올리니 또 울컥하네요. 제 절실했던 시간들이 합격이라는 단어로 압축되었던 그 순간은 앞으로도 평생 못 잊을 거예요.
입사하고 반년 정도 지났을 때 저한테 막중한 업무가 주어졌어요. 4년마다 받는 병원 인증평가의 담당 멤버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거든요. 보통 3,4년 차 분들이 맡게 되는 업무인데, 제가 너무 믿음직스러우셨나 봐요. 도망치고 싶기도 했지만 제가 꿈꾸던 병원이자 첫 직장이기에 책임감을 갖고 준비했습니다. 두 달을 넘게 하루 20시간씩 병원에서 살면서 두꺼운 규정집을 외우고,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다행히 좋은 평가와 함께 제 첫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대견한 신입이었네요.
지금은 프리셉터로 신입 교육도 맡고 있어요. 단순히 해야 돼서 하는 일이 아닌, 저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임하고 있습니다. 제 업무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10점이에요. 하지만 오로지 업무만 봤을 때예요. 업무를 제외한 모든 환경이 너무 힘들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P의 담당 환자는 16명이다. 그리고 P는 응급병동에서 일한다. 응급한 상황에 놓여있는 16명의 환자를 P가 담당하고 있다. 1년 차, 매일매일 눈물이 쏟아졌다. 새벽 근무를 가는 날 택시에서 내렸던 순간은 지옥문을 여는 서문 같았다. 2년 차, 일주일의 한 번으로 빈도가 줄었다. 그리고 3년 차가 된 지금, 한 달에 한 번씩 아직도 눈물이 흐른다. 함께 들어온 동기들 중 둘만 남았다. 그중 한 명이 P다. 떠나간 그들을 감히 나약하다고 말할 수 없는 환경에서 다부진 눈물로 버텨낸 하루하루가 지금이 되었다.
달라진 것은 많다. P는 더 이상 택시에서 울지 않는다. 차가 있기 때문이다. 독립도 했다. 가끔씩 찾아오는 노잼 시기가 지금 또 돌아왔지만, 운동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너무 사랑하지만 너무 힘든 이 직업이, 애증의 교차점에 있는 지금의 시간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P는 평범해 보이던 환자의 이상 징후를 먼저 발견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고, 몸이 아파 까칠하기로 유명한 환자도 칭찬글을 남기게 하는 유능하고 따뜻한 간호사다. 하지만 3교대의 파괴성과 5분 만에 때우는 끼니 심지어 그것마저 거르는 게 일상이라면, 사명감 하나로 반드시 버텨야만 할까? P는 이제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P는 답을 찾아낼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직 프로듀서 : 3번째 신입사원
이직.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중견기업에 취직했다. 1년 후 그만두었다. 다시 6개월 후 대기업 입사, 그리고 1년을 채우지 않고 박차고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또 스타트업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모든 일이 3년 안에 벌어졌다.
수없이 많은 서류를 쓰고 면접을 보고 또 계속해서 떨어졌다. 남들은 한번 하기도 어려운 취업을 어떻게 계속하냐 싶지만 눈물과 땀으로 쉴 틈 없이 꽉 채운 B의 시간이 가능하게 했다.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고 이제 그저 빨리 나이를 먹고 싶다는 B는, 그렇게 3번째 신입사원이 되었다.
이직 프로듀서 : 제 한마디면 공장도 멈춥니다. 프로젝트 하나가 시작되면 온전히 제가 다 책임지거든요. 기획부터 생산 그리고 전국 판매채널에 다 퍼지는 그 모든 일의 책임자가 저 하나예요. 더 놀라운 건 저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신입이랍니다! 회사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다 해내는 저야말로 멋짐이 심하지 않나요?
이전의 직장들이 너무 힘들었어요. 저를 담기엔 그릇이 너무 작았던 거죠. 지금도 문득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이 들면 갑자기 또 화가 치밀어요. 그런데 이제 상관없어요. 그냥 걷어차고 나왔잖아요. 그리고 잘못 끼운 그 단추로 저한테 어울릴만한 옷을 다시 또 만들었잖아요? 괴팍한 제 성격대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도 이렇게 살려고요. 누가 감히 내 앞길을 막을쏘냐. 지금 하는 일은 전보다 더 많고 더 넓지만, 재밌고 뿌듯해요.
그렇다고 지금 이 회사에서는 오래 있을 생각? 없어요. 대신 이제 이 직무로 커리어 쌓으면서 더 마음에 드는 곳으로 이직할 거예요! 그동안은 아마 또 죽도록 일할걸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만들어낼 결과물이 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떻게 설렁설렁하겠어요! 무엇보다도 저는 옛날부터 필연적으로 열심히 살아와서 관성 때문이라도 어쩔 수 없네요. 이제 좀 열심히 "안"하고 싶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요!
경력직스러운 신입을 원한다? 웬 라떼의 말이냐 싶지만 여기 실제 B 같은 사람이 있어서 말이 된다.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짧은 기간을 2번의 입사와 휘몰아쳤던 엄청난 업무량으로 밀도 높게 가득 채웠다. 그런 것까지 한다고? 해당 직무 특성상 사소한 것 하나부터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고, 하필 또 가장 까다로운 곳으로 발령받았다. 어린 사회 초년생이 부모님 또래 직원들까지 통솔해야 하는 아찔한 위치였다. 힘들었고, 정말 너무 힘들었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B에게는 공허함만 남았다.
첫 번째 퇴사 후, 다시는 그 직무를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전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 회사도 같은 직무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장소만 바꿨다. 그러나 맞지 않는 옷을 브랜드만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업무 강도와 너무나도 당연한 듯 그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는 하루빨리 이곳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B를 부추겼다. 그렇게 다시 또 빠른 장면 전환이 일어났다. 그간의 짧았던 업무 경험을 인정해 주고 더 크게 총괄하는 자리가 주어졌다. 자 이제 다음은 어디일까? 멈추지 않을 B의 방황이 궁금하다.
[건방진 간호사 : 나의 열정은 내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건방진 간호사는 감자를 닮았다. 감자로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수억 개다. 찐 감자로도 살아보고 감자전으로도 살고 감자 샐러드로도 살아갈 것이다. 맘만 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감자. 5년 후, 더 좋은 환경에서 더 건방진 감자가 되어있을 것이다.
[이직 프로듀서 : 나의 열정은 나를 당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직 프로듀서는 기린을 닮았다. 최대 8m까지 성장하는 가장 큰 동물 기린은 드넓은 초원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거닐어야만 한다. 5년 후, 하늘 높이 쭉 뻗은 자신감과 절대 꺾을 수 없는 기세로 자기 멋대로 사바나를 프로듀싱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