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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n 26. 2019

나는 지금 어느 계층에 속해있을까

자본주의에 대해서

얼마 전에 친구들과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보는 내내 불편했고 그 기분은 영화관을 나오고 나서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간은 모두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걸까.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신기하게도 같이 본 친구 셋은 모두 다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박사장이 불쌍하다는 친구도 있었고 무광네가, 혹은 기택네가 불쌍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바라보면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를 따지기 어려운 영화였다.


ㅣ 이래서 복지가 중요한 것 같아. 인간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안전장치 만들어줘야 해.


내가 말했다. 친구 A 갑자기 웬 복지타령이냐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친구는 박사장이 불쌍하다고 말했던 친구였다. 친구 B가 옆에서 조용히 읊조렸다.


ㅣ 나중에 기택이가 진짜 그 집을 살 수 있을까.


 그걸 듣던 친구 A는 정색하고서 또렷이 자기 견해를 밝혔다.


 ㅣ 아니. 그럴 거면 진작 그랬어야지. 수한 건 그냥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야


때마침 친구 C가 얼른 눈치를 살피더니 우리가 반지하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감사하게 여기자며 대화를 종식시켰다. 각자 집에 돌아가는 전철을 탔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인지 저도 모르게 몸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아봤다. 나는 지금 어느 계층에 속해있을까. 가만 생각하다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벌써 두 번째 방문이었던 터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여전히 그곳은 내게 무서운 나라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불빛에 몰려든 하루살이 떼처럼 여기저기서 시선들이 쏟아졌다. 휘파람을 부는 남자도 있었고 캐리어에 손을 올리며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남자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서 주위를 살폈다. 얼마 안 가 내 이름이 적힌 피켓 보이를 발견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곧장 픽업 차량에 탑승했다. 


차 안은 냉동 창고 같았다. 바깥의 습기를 모두 날리고 말겠다는 듯 에어컨 바람이 사방에서 전투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앞으로 3시간 반 이상 가야 목적지인 모알보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곤하지만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필리피노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있고, 여기는 필리핀이니까. 창밖에 내려앉은 어둠만큼이나 깊은 적막만이 차 안을 맴돌았다.


밤거리

총기 소유가 합법화돼있는 필리핀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치안이 꽤 좋지 않은 편에 속했다. 수도 마닐라를 포함한 필리핀 대부분 지역이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 자제 권고지, 황색경보 지역에 속했다. 실제로 내 첫 필리핀 여행 또한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식당을 찾아 가는데 캣 콜링, 플러팅이 난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해 여름 휴가지로 이렇게 다시 필리핀을 찾았다.

순전히 다이빙 때문이었다.


세부섬 서남부 해안에 위치한 시골마을, 모알보알. 거북이 알이라는 뜻의 모알보알은 내가 AOW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처음으로 딴 곳이자, 필리핀이란 나라에서 처음으로 다이빙이 시작된 곳이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이빙 인프라가 잘 발달돼 있어서 연중무휴 전 세계 다이버들이 이 곳을 찾았다. 게다가 다른 곳에선 많아야 하루 세 번밖에 할 수 없는 다이빙을 이곳에선 최대 다섯 번까지도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천국 같은 곳이 따로 없었다. 단, 오고 가는 것만 빼면 말이다.

 

모알보알

사실 세부 공항에서  터미널 출발 시외버스를 이용할 경우 130페소(한화 3,000원)면 모알보알에 갈 수 있었다. 반대로 나처럼 개인 벤을 이용할 경우  버스비에 20배에 달하는 비용, 편도 60불 (한화 70,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교통비를 아끼려면 버스를 타는 게 맞지만 나는 매번 벤을 이용했다. 따지고 보면 필리핀 남자와 둘이 있는 벤도 위험하긴 매한가지일 텐데 아무래도 위험에 대한 경우의 수가 적다는 생각에서였다. 공항에서 모알보알 들어올 때 한번, 모알보알에서 공항으로 돌아갈 때 한번, 늘 긴장한 채 벤에 올랐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 신나게 다이빙을 마친 후 기진맥진해진 몸으로 벤에 탑승했다. 드라이버가 자기 이름을 톰이라 소개하며 악수를 건네 왔다. 손을 떼고 나서도 한참을 운전을 하지 않고 힐끔힐끔 내 쪽을 바라보았다.


ㅣ 에어컨 바람이 안 갈 텐데 앞으로 오지 않을래?


그가 조수석을 가리켰다.

 

 ㅣ 괜찮아. 바람 잘 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심장은 벌써 쫄깃해져 있었다. 시동이 걸렸고 차는 바닷가 근처에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좌우로 녹음이 가득한 도로가 펼쳐졌다. 순간이나마 아직 개발되지 않은 도로가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필리핀

그리고 얼마 안가 산길처럼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가 나왔다. 승용차가 위아래로 심하게 흔들렸고 머리와 몸이 제 대로 움직였다.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앞뒤로 움직이는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다. 비포장 도로를 다 벗어나기 전에 급브레이크가 밟혔다. 톰이 뒤를 돌면서 말했다.


 ㅣ 괜찮아?  


미소 짓고 있었다.


ㅣ 괜찮다면 앞에 와서 앉을래?

 

톰이 다시금 조수석을 가리켰다. 그의 의도가 선한건아닌건지 속내를 읽고 싶었지만 눈동자를 봐도 도통 파악이 되지 않았다.  


 ㅣ 같이 가면 좋잖아. 운전할 때 면 안 되는데.  쪽이 바람도 더 쎄.


차는 도통 출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조수석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됐다. 어쩔 수 없이 차문을 열었다. 앞자리로 옮겨 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차체가 세상 시원하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도로 양옆으로 커다란 야자나무가 고개를 떨구고 서있었다. 긴 야자수 잎들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솨솨솨 하고 몸을 떨었고 마치 그 모습이 조수석에 앉아있는 나처럼 느껴졌다. 세차가 안된 차창 밖으로 가마솥 같은 태양이 일렁거렸  열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현기증이 났다. 아무래도 불안한 여정 아닐 수 없었다.


열대 야자

 ㅣ한국에서 무슨 일 해?

 

운전을 하다 말고 톰이 물어왔다.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냥 회사원이라고 대답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다시 물었다.


 ㅣ 무슨 회사? 무슨 일을 하는데?


차가 막 코너를 돌고 있을 때였다. 반대 차선에서 큰 덤프트럭이 지나갔는데 도로가 비좁아 금방이라도 부딪칠 것 같았고 다급하게 답했다.


 ㅣ 음악회사 마케팅


톰은 눈치 없이 자꾸만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가뜩이나 구불구불한 길인데 그의 시선 때문에라도 앉은자리가 불편할 수 밖에 없었다.


 ㅣ 재밌겠다. 그런데 그런 회사 다니면 얼마 벌어?


 머뭇거리자 그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ㅣ 내 여자 친구는 월에 9,000페소를 벌어. 마트에서 일하는데. 알지? 다리도 아프고 참 힘들어.


여자 친구라는 말에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건 왜였을까. 톰은 잡고 있던 운전대를 아이 다루듯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ㅣ 거기에 비하면 난 이거 한번 움직이면 되니까 훨씬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알아? 이거 내 차야. 정말로 내 차.


자랑스럽다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필리핀 화폐 페소


혼자 머릿속으로 9,000페소를 한화로 환산해보다가 계산이 끝난 후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식을 하게 됐다. 9,000페소를 달러로 환산하면 170불, 우리 돈으로 20만 원도 안 되는 돈이었다. 여자 친구가 주에 몇 시간 일을 하냐고 물었다. 7시간 이상 일한다고 대답했다. 네가 말한 9,000페소가 월 급여냐고 물으니 당연한 거 아니냐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ㅣ 난 하루에 3시간, 4시간만 일하면 돼. 모알보알에서 공항까지 운전하고 좀 기다렸다가는 새벽엔 다른 손님 데려오면 되거든.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많아. 모알보알에 정어리 보러 많이 가잖아? 물론 난 본 적 없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고개를 숙이자 무릎에 놓인 방수팩이 눈에 띄었다. 새로 산 다이빙 시계와 마스크가 들어있었다. 스쿠버 다이빙에 꼭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방금 들은 월급으로 이 장비를 사려면 자그마치 네 달을 일해야했다. 그것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무것도 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는 필리핀이지만 막상 그곳 사람들은 바다속 아름다움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할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자 마음이 이상했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쐐서였을까. 머리 또한 어지러워 바람 나오는 곳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톰이 그 근처 서랍에 손을 가져다 대더니 불쑥 명함 한 장을 꺼내들었다. 

운전

 ㅣ 다음에 다이빙하러 올 거면 바로 이 메일로 연락 줘. 다이빙 샵 이용하지 말고. 더 싸게 해 줄게.


명함은 알아보기 힘든 필기체로 쓰여 있었다.

그러고서는 이제 자긴 더 할 얘기가 없다며 내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얼마 안 있어 다시 급여를 물어왔는데 그런 얘기를 할  그의 눈은 매처럼 빛났다. 한화를 페소로 바꾸면 얼마인지 모르겠다고 어영부영 대답을 돌렸다. 달러로 바꾸면 얼마냐고 재차 물어왔지만 모르쇠로 얼버무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이미 그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내내 창밖을 보고 있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내가 접한 필리핀은 굉장히 부분적인 게 아니었을까.  


바깥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폭우에 정체된 찻길 사이로 경찰들이 보였고 그들의 허리춤엔 모두 총기가 꽂혀 있었다. 빗길에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차 앞을 비집고 들어왔다. 연식이 족히10년은 넘었을 법한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 안장에 4인 가족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는데 아빠, 엄마, 남자아이, 남자아이의 동생 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로 허리를 꽉 부여잡은 채 우산도 없이 빗물을 내리 맞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누구 한 명 떨어질까 살벌한 풍경이었다. 그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맨 뒤에 앉은 남자아이가 혹시나 엄마 옷자락을 놓치면 어떡하지. 세찬 빗물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 또 어떡하지.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A가 그런 날 보더니 옆에서 심드렁한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ㅣ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가족들이 저런 곳에서 사는 거야.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둑방길 아래 하천이었다. 초록색 물길이 닿는 곳엔 집이라 보기에 영 위태로운 판자촌이 십자수처럼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슬레이트 지붕들은 어느 하나가 쓸려가기라도 하면 다른 지붕 또한 금방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슬레이트 집

경찰이 호루라기를 불었고 차들이 일제히 앞을 향해 분주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네 가족이 탄 오토바이도 느릿느릿 전진했다. 오토바이를 보다 하천 이래 슬레이트 판잣집을 보다 한참을 그렇게 번갈아 보기를 몇 번, 톰이 뭐라 뭐라 말했지만 고산 지대에 온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어쩌면 가슴이 먹먹한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가 시내로 들어오자 거리엔 비싸 보이는 고급 승용차들이 하나둘 등장했고 갓길에서는 경찰에게 잡혀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는 몇몇 오토바이가 보였다. 경찰 허리춤에 꽂혀있는 총이 햇빛에 반사돼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무섭지 않아, 총기 소유가?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생각이란 걸 물었다. 무슨 그런 걸 묻냐며 별 거 아닌 것처럼 세상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ㅣ 가져갈 게 없는걸.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쳐다보자 자기  옆 허공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총 쏘는 흉내를 냈다.


ㅣ 만약에 우리 집에 총 가진 도둑이 들었어. 냉장고? TV? 다 가져가라 그래. 난 그럴 거야. 나만 내버려 두세요~


도둑이 쳐들어왔을 때 풍경을 다소 과장스레 묘사하던 그는 급기야 살려달라 비는 시늉 . 끝에 가서는 세상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ㅣ 진짜로 가져갈 게 없다니까.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까 봤던 오토바이 가족떠올랐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그 안장 위에 앉아 있던 남자아이도 훌쩍 자라나겠지. 그때 그 아이는 어떻게 커있을까 막연하게나마 상상해보게됐. 

필리핀

차는 예정보다 빨리 공항에 도착했고 내리기 전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에 필리핀을 다시 오게 되면 이 메일로 연락하겠다며 명함도 흔들었다.


방수팩을 챙겨서 차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내 팔목이 덥석 붙잡였다. 헤어지기 전에 기념 키스를 하자고 했다.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고.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소름이 돋았다. 손을 세차게 뿌리치고 도망 나왔다. 차에서 내려 그대로 공항으로 달음박질쳤는데 공항 출입문 앞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열대지방 특유의 무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을 짓눌렀고 떨리는 손을 붙든 채 뒤를 돌아봤다.  차는 아직 그 상태 그대로 멈춰 있었다. 선탠 되지 않은 차창으로 얼핏 그 날카로운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던 1,970년대의 우리나라 모습이 지금의 필리핀과 비슷하다고 한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슬레이트 판잣집들은 50년 만에 주상복합 아파트 단지로 변모됐고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필리핀에도 그런 기적이 찾아올까. 현재 필리핀의 GDP는 한국 GDP의 1/10 수준,  6% 이상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본 그곳의 현실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비가 내려도 막을 우산이 없었고 도로에는 총기를 찬 경찰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넘어갈 것 같은  슬레이트 판자촌들이 도미노처럼 하천 옆에 놓여있는 풍경. 국민 대다수가 국가 성장의 속도를 체감하기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는 구시대적인 전경이 많았다. 그 사이에서 복지나 사회안전망이란 말은 채 꺼내볼 수 없는 단어였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의 눈빛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네가 보여줬던 눈빛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할 수 있었다. 기택이 박사장 차를 운전하며 동경의 눈빛을 보내던 것처럼 그 또한 자기 차에 탑승한 외국인 다이버들을 그렇게 바라보았던게 아닐까.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자차를 구입했다던 톰이 핸들을 쓰다듬으며 아이처럼 좋아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또 다른 외국인에게 기념 키스를 하자며 선을 넘을지 정말이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을까.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아님 내가 감정이 과잉돼서 너무 넘겨짚어서 상상해버리는 걸까.

필리핀의 아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는 없다. 한정된 재화 안에서 누군가는 더 가지고 누군가는 덜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맞다. 그렇지만 사람이 출생한 곳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부의 불평등은 너무 심하게 적용된다. 눈으로 겪어보고 이를 개인의 차이를 넘어 범지구적 차이로 확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지점에 맞닿게 된다.


필리핀 둑방 밑 슬레이트 판자촌을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거라고.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 만큼의 사회안전망은 구비돼야 한다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온전히 바르게 자라나기 위해선 꿈을 꿀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오토바이 안장 위에 있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대엔 어떨까.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아니,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문명이 발전할수록 절대 빈곤층이 줄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이 문장 하나로 묵살돼버린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이 보이는 법이다. 그러다 보면 자본을 가진 이들과 가지지 않은 이들 간의 삶의 격차가 지금 이 순간에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다는 것 또한 새삼스레 인지하게 된다. 


실례로 유엔 인권이사회 자문위원이자 최초의 식량 특별조사관이었던 장 지글러는 2007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집필하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올해 초 다시금 신간을 발표했는데 그 책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저자는 아직도 책을 통해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세계는 아직도 이토록 불평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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