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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l 19. 2019

밥은 먹고 다니냐

엄마와 나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밥은 먹었냐라고 묻는다.


ㅣ 밥, 밥, 밥 얘기 좀 그만 할 수 없어?


못난 딸은 엄마에게 늘 말대꾸를 하곤 하는데 엄마는 또 그걸 곧이곧대로 받는다.


ㅣ 잘 챙겨 먹고 다녀야지


그럼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할 말이 없다. 집을 나와 산지 10년째, 스무 살 딸은 서른이 됐지만 엄마에겐 여전히 애다.


짜증내고 칭얼대 봤자 엄마가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았고 나보다 남을 돌보는데 익숙한 사람이니까.


ㅣ 누룽지 좀 보내줄게. 아침에 끓여먹고 회사 가게.


집에 쌓여있는 누룽지 봉투를 떠올리며 괜찮다고 말해보지만 엄마는 강경하다.


ㅣ 반찬은. 반찬이랑은 다 떨어졌을 텐데.

 

보내줘 봤자 다 못 먹고 버린다는 말이 차마 입안에서 떨어지지 않아 썩 괜찮은 핑곗거리를 대본다.


 ㅣ 다이어트 중이야. 짠 거 먹으면 안 돼.


역시나 통하지 않는다.  


 ㅣ 그럼 미숫가루라도 보내줘 볼까.


결국 알았다고 대답해야 한다. 일찍 퇴근해서 택배 꼭 제 때 받으라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긴다. 엄마에겐 늘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다.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 회사에 취업하며 줄곧 집에서 나와 살았다. 학생  방학 때라도 집에 내려갔는데 직장인이 되니 연차도 빨간 날에 붙여 써가며 여행을 다녔다. 어떻게 요즘엔 학교 다닐 때보다 집에 가는 횟수다  손에 꼽았다. 오랜만에 집에 갔던 , 엄마가 그랬다.


 ㅣ 딸, 내년 추석엔 엄마랑 같이 여행 가자.


내가 아는 엄마가 맞나 싶어 다시 보게 됐다.  남매의 첫째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엄마는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돌보면서 커왔다. 시집도 빨리 가야 집안에 부담이    같아  있는 남자만 골라가며    아빠였다고 했다. 고르고 골라 만난 아빠는 불행히도 종갓집 장남이었다. 연마다 돌아오는 각종 제사, 시제는 엄마도맡아했다. 아빠는 남아 선호 사상이 짙은 할머니 밑에서 어려서부터 받들면서 자라났기에 여자가 집안일하는  당연시 여겼고 그런 아빠 옆에서 엄마는 손이 야무지다 못해 부르텄다.


어릴 땐 결혼하면 다 엄마처럼 사는 건지 알았다. 처음 인사왔을 때와는 달리 우리 집에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작은 엄마들을 보면서 아, 이게 꼭 정답은 아니었구나 깨달았던 때가 중학교 때였다.  


 ㅣ 유럽 가보고 싶어. 더 늙기 전에. 수영장 언니가 그러는데 스위스가 그렇게 좋다더라.

 

날 보는 엄마 눈이 반짝반짝거렸다. 꿈 많은 눈동자를 보다 보니 옛날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스물여섯, 생애 첫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였다.
 

ㅣ 여기서 이 친구를 만났는데 말이야. 저 음식 정말 맛있어서 한번 더 시켜서 먹었어.


수백 장이나 되는 유럽 사진들을 한 장씩 넘겨가면서 뭐는 이랬고 저건 어땠고 엄마 옆에서 앵무새처럼 쉴 새 없이 좋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좋았겠다. 엄마는 이제  늙어서 언제 유럽 볼까.

 

그때 엄마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눈동자를  데가 없어졌다.  어두워진 엄마 얼굴을 보다가 손을  잡고서 말했다.


 ㅣ 엄마, 나랑 가자. 내가 다 해줄게. 한번 갔다 왔으니깐 가이드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당시에는 호언장담했지만 그걸 또 새까맣게 잊어버렸다니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임에 틀림없다.


그럼 어디 놀러 가고 싶은데?
유럽.


대답하는 엄마 얼굴에서  옛날 표정이 오버랩됐다. 갑자기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다고  내가 유럽여행을 보내줄만큼의 능력자는 되지 못했다.적당히    건사할 만한 월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항공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추석이었고    분의 경비를 전액 부담할 능력이 못됐다. 다른  딸들은 가족 여행 가면 턱턱  낸다는데 못난 딸이라 부모님께 돈을 받아 엄마 몫의 경비를 댔다.


여행은 준비하면 할수록 점점 기가 죽었다. 돈이 없으니 가이드만은 똑바로 하기 위해 맛집, 교통, 숙소 정보들을 미친듯이  찾아봤는데   보고   보고   보며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는데도, 막상 여행지에 가서는 밤이면 밤마다 다시 구글링을 하고 날씨에 따라 일정을 재정리해야했다.


추석 기간에  맞춘 8 9일의 모녀 유럽 여행. 독일  스위스 아웃 여행은 기억하기에 시작부터 끝까지 마치 이상 기후 같았다. 어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다가 다시  맑아지는 순간들이 수없이 반복됐다 해야할까. 도무지 종잡을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가령 우리가 독일 옥토버 페스트에 갔을 때였다.



옥토버페스트


 ㅣ 여긴 왜 이렇게 미친년, 놈들처럼 저런 옷을 입고 술을 퍼마신다니


축제 현장에 가자마자 엄마는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족히 수백 명은 들어갈만한 옥토버페스트 텐트 안은 이미 만취한 사람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가슴이 과하게 파인 독일 전통 의상을 입은  여자가 흥에 취해 남자와 스킨쉽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 손에는 전부 커다란 맥주잔이 쥐어져 있었고 여기저기서 웅웅 거리는 말소리가 쌓이고 쌓여 벌떼처럼 우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바닥엔 먹다  음식들이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고 토사물이나 술을 쏟은 흔적들도 간간히 보였다. 그때 텐트 안은 살이 쪄서  터질  같은 바지처럼 위태롭고 숨이 막혔다. 엄마의 낯빛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그러나  딴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야심 차게 준비한 곳이 옥토버페스트였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유명하다는 성당도 뮤지엄도 다녀왔다.  이상  어디  곳도 없다는 생각, 있다 보면 좋아지겠지라는 자기 합리화 때문에 억지로 중앙 테이블 구석에 착석했다.


술을 키자 커다랗고 두꺼운 1L 유리잔에 파울라너 맥주가 나왔다. 하루 내내 긴장한  돌아다녀서인지 갈증이 났다. 엄마가  곳을 불편해한다는 데서 오는 부담감도 컸던  같다. 그래서였을까. 맥주  잔을 먹었는데 금세 취해버렸급기야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맥주잔을 놓쳐버리기까지 했다. 두꺼운 유리잔은 곧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속절없이 졌다. 다음 순간  등도 깨질  같이 아파왔다.


ㅣ 정신 차려 이것아, 내가 이러려고 널 키운 줄 알아?


사정없이 등짝을 때리는 엄마가 보였다. 눈물이  돌았고 화도 났다. 그런데 웬일인지 시야는 점점 흐릿해졌다. 엄마가 다시 손을 위로 올리는 순간 우악스럽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고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따라왔고 술김에 이곳저곳으로 도망 다녔다. 머물던 파울라너 텐트를 나가 다른 텐트로, 다른 텐트에서 나와 철조망 근처로 달려갔다. 안전을 위해 조성된 철조망이었는데 엄마는 계속해서  쫓아왔고 나는 달밤에 기억이 나지 않는 계주를 했다. 그러다가 안전 요원에게 잡혀갔는데 울고 있는 엄마를 대면하자 그제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택시를 불러 숙소로 향했다. 저녁 내내 엄마에게 손이 발이  정도로 빌었다. 엄마는 꼴도 보기 싫다며 한국 가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외국에서  하나 의지하고 왔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모습은 최악이었다.


다음  아침까지도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엄마는 돌아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눈이 퉁퉁 부어 개구리처럼 튀어나와 있었다. 여행이 이제 반절밖에 안됐는데  없는 시간들만이 흘러갔던고, 숙소에 머물러 있으면 있는 대로 우울했고 겨우 기어 나와 어딜 가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디즈니 성의 모티브가 됐다는 뮌헨 근교의 아름다운 성을 방문해도  모습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우리 딸이랑 가는 거면 뭐든 좋아라고 했던 엄마는 이제 나를 쳐다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하루빨리  관계가 나아지지 않으면  하든 최악의 순간을 마주할  같았다. 얼마  우리는 독일에서 스위스로 넘어왔다.


스위스
여기 갈래?
.
아니.



 외에 어떤 말도 하지 않던 엄마와의 관계가 나아지기 시작한  기적 지만 날씨 탓이 컸다. 춥고 음울하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만 밟던 독일과는 달리 스위스에선 연일 날이 좋았다.


쾌청한 날씨만큼이나 예약한 투어나 식당도 무리 없이 흘러갔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이동하는 기차에서부터 대자연에 감탄했너른 초원만큼이나 하고 싶은  많아졌다.


독일에서의 일들은 어느 순간 혼자 사는 여자  비밀번호처럼 쉬쉬하고 함구해야  사건이 됐고 그날 이후부터 나는 술을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을 살피고 맞추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스위스에서는 엄마가  가고 싶다던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산악 열차를 는데 추석이라 그런지 단체 관광  한국인들이 많았다. 우리가 앉은 칸도 아줌마, 아저씨들로  칸이  차있었다.  밖에 이국적인 풍경만 아니라면 여기가 스위스인지 한국인지 모를 일이었다.


ㅣ 어쩜 이렇게 예쁘지. 이 소 봐봐. 수입산 소 안 먹는데 이젠 먹어도 될 것 같아. 이렇게 평화로운 데서 풀 뜯고 자라니 얼마나 토실토실해.


엄마는 누가 물어본 것 마냥 한국어로 크게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왜 저렇게 크게 말하나 싶었지만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눈이 반달 모양으로 접힌 채 아이처럼 조잘거리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기도 했다.


ㅣ 아이고. 딸이랑 이렇게 같이 오신 거보니깐 참 보기 좋고 예쁘네요. 이거 드세요.


앞에 앉은 아저씨가 품 안에서 조그마한 자유시간을 건넸다.


ㅣ 유럽이 좋긴 좋은데 돈이 많이 깨져서 다시 또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우리 집은 가족 넷이 다 와서 소나타 한대 값이 나가버렸네요


 나이 대의 특성인지 아저씨 또한 묻지도 않은 말을 서스름 없이 꺼내놓았다.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우린 자유여행이라  정도는 아니라고 웃어넘겼다.


ㅣ 따님이 똑 부러지나 보네요. 우리 나이엔 가이드 끼고 와야 하니깐 돈이 더 나갈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않고. 여기 가라 저기 가라 너무 바빠요 진짜.


창밖으로 고개를 리자 소떼가 목에 걸린 방울을 딸랑딸랑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너른 초원 위에서 느릿느릿 걷고 있는데 정말이지 한없이 여유로워보였다. 어떤 소는 풀밭에 늘어진  잠들어 있었는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햇살을 만끽하는 소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ㅣ 저희는 상대적으로 여유롭죠.


엄마가 스위스  들소만큼이나 나른한 눈빛으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저씨뿐 아니라 주변에서 거듭 우리 모녀를 칭찬했다. 바라본 엄마의 어깨는 이미 한껏 높이 솟아있었다. 문득  머릿속엔  목에 걸린 방울이 떠올랐다. 그리고나서 저도 모르게 오늘은 마트 가서 소고기 사서 요리해 먹자는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는데 독일의 어느 성당에서 봤던 마리아 상만큼이나 인자하고 자애로운 미소였다.  후로는 모든 것이 평안했다.

엄마와 스위스 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위스에서 딱하나 우리가 달랐던 게 있다면 음식이 아니었을까. 다른 유럽 국가 대비 비싼 물가 탓에 500ml    가격이 8,000원에 육박했아. 스위스에서 엄마는  다시 짠순이가 됐다.


ㅣ 가져온 반찬 먹어야지. 그건 언제 먹을래


 컵라면 8개, 햇반 6개, 김 10개. 엄마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들고 온 음식이 이렇게나 많았다.


 ㅣ 엄마, 이런 걸 왜 가져와. 집에서 맨날 밥해먹는데 그냥 나가서 사 먹자 제발.


인천 공항에서 위탁 수화물 맡기기 전에음식 문제로 조금 다퉜었다. 배낭을 메고  엄마가 캐리어에 옮겨 담으라고 김치를 꺼냈는데 보자마자 가 났다. 밖에 나와서만큼은 요리  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이왕이면 맛있는  먹고 싶은데 우리 엄마는  맨날 이렇게 바리바리 챙겨 오는지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ㅣ 나가서 먹으면 다 돈이야 이것아. 어떻게 매일을 사 먹니.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고.   


짜증 내는 딸 앞에서 엄마는 캐리어를 직접 열어 주섬주섬 김치 종지를 넣었다. 여행 중간중간 캐리어를 열 때마다 쉰 냄새가 났다. 입는 옷들마다 냄새가 나서 향수를 몇 번이나 뿌렸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ㅣ 김치 그냥 오늘 먹어버릴까.


그럼   아니라고 나가서 좋은  가자며 엄마의 주름살 많은 손을 붙잡고 꾸역꾸역 거리로 나왔다.  식당  식당을 오가며 어느 날은 스테이크, 어느 날은 기름에 튀긴 족발, 어느 날은 크루아상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독일에서의 삼시  끼가 엄마에겐 고역이었을지도 몰랐다. 여긴 이게 맛있대. 이거랑 저거 중에  먹고 싶어? 구글링 하며 찾은 맛집들을 하나하나 보여줄 때마다 엄마는 .. ..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할 뿐이었아. 엄마를 위해서라고 포장했지만 어쩌면 엄마를 괴롭히는 건지도 몰랐다.


여행일자가 길어질수록 내가  보이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맞지 않는 레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됐다. 누가 이런데 오고 싶냐 했냐, 독일에서 울먹이던 엄마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냥 처음부터 옥토버페스트 텐트를 나왔으면 됐는데  그렇게 꾸역꾸역 앉아있었는지 기억이 돌아올 때마다 후회가 됐다. 내가 상상한 여행을 하겠다는 이기적인 마음, 상대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망, 결국 나는 이만한 가이드가 없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인건 내가 괜찮지 않은 가이드라는  인정한 , 나는   괜찮은 가이드가 됐다.


스위스에선 비가 오는 날엔 산이 아니라 계곡이 좋다 했지만, 엄마가 산에 가고 싶다 하면 산악열차를 탔다. 정상은 안개뿐이라 오르는 즉시 그냥 내려와야 했지만 언제 그런 <폭풍의 언덕> 영화 같은 안갯속을  경험해볼  있을까 싶기도 했다.


흐린 날에 유람선 타면 감기 걸릴  같았지만 엄마가 원하면 유람선 패스를 끊었다. 갑판에서 쨍한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유람선 실내에서 잠시나마 여독을 풀었던  다음 여정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외식 대신 집밥을 먹은  모든 선택을 통틀어 신의  수라고   있었다. 융프라우에 다녀온 , 스위스산 소고기를 먹고 싶다던 엄마를 위해 마트에서 소고기와 이런저런 세지를  봐왔다. 레스토랑 가면 질색할까봐 요리를 한건데 다행히 소고기 품질은 확실히 좋았다. 그런데도  소고기보다 가져온 반찬에  손이 가는  정말이지 아이러니했다.

 

 ㅣ 딸랑구~ 밥이랑 라면이 왜 이렇게 맛있니. 역시 김치 가져오길 잘했지?


숙소에 구비된 포크로 김치를 찍어서 뜨끈한 햇반 위에 올린  목구멍으로 꿀꺽 넘기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와 엄마는 서로를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


목조 주택 창문 밖으로 하늘에  놓인 별이 보였다. 저녁 7시인데도 가로등이 없어서 별빛이 환했다. 이제야 길을  찾아왔다고 위로하는  마냥 북극성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ㅣ 설거지는 내가 할게 엄마


 엄마는 밥을 먹다 말고 흘겨보았다.


 ㅣ 그럼 우리 딸, 설거지도 안 하려고 했어? 엄마가 밥했으면 설거지는 당연히 네가 해야지.


어린아이처럼 미소 짓는 엄마에게 나도 피피식 웃으며 응수했다. 밥은 전자레인지가 했지만 어찌 됐든 엄마가 차린  겠지.


 , 얼마  되는 정리를 끝낸  엄마와 함께 마당으로 나왔다. 하늘은 구름   없이 쾌청했고 별은 금방이라도 우리 품으로 쏟아질  빽빽히 들어차 있었다.  별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ㅣ 딸 덕분에 여행 잘했어. 엄마 나이에 또 언제 이런데 다 와보겠니.


스위스의 밤

엄마는 수줍게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포갰다. 푸근했다. 엄마 손을 꽉 잡고서 내가 더 고맙다고 조용히 그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꾹 눌러 담으며 한마디만 말했다.


사랑해, 엄마


어느 날은 친구 같고 어느 날은 애인 같고, 어느 날은 원수 같았던 모녀 여행, 우리가 같이 보낸  시간들은 너무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았다.


압력 밥솥 증기처럼 뜨거웠던 날도 있고 햇반처럼 차가웠던 날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이 밥심으로 산다고 엄마가 없으면 이렇게 재밌게 하루하루  돌아다닐  있었을까. 이번 유럽 여행이 이렇게 소중하게 기억에 남을  있었을까 싶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우리 사이가 단단해졌을 거라고, 밤이 어두워질수록 별이  반짝 빛나듯 독일에서의 일이 있었기에 스위스가  좋게 느껴지는  수도 있을 터였다. 적어도 나에겐  밤이 이곳에 와서 가장 좋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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