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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Oct 09. 2019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내가 가면 길이 된다

지도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란 두 발만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늘 새로운 길을 가길 좋아했다.

익숙하게 아는 길도 좋지만 낯선 곳, 인적이 드문 거리를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여행을 갈 때도 블로그에 유명한 곳 말고 사람들이 가기 힘든 곳, 좀 귀찮아도 손 때가 덜 탄 곳을 찾아 헤매는 편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많이들 가는 호수마을 할슈타트보다 그 옆 마을 오버트라운이 더 좋았고 거기서도 굳이 케이블카를 두 번 타고 올라가야 하는 해발 2,100m 상공에 위치한 롯지 암 크리펜슈타인(lodge am krippenstein)이라는 곳에서 숙박을 했다. 이건 순전히 호기심 많고 도전적인 내 성격 탓이었다.

삼 년 전만 해도 롯지 암 크리펜슈타인에 대한 정보는 웹 상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에는 한국어로 올라온 해시태그가 전무했고 포털에서도 숙박 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있는 거라곤 산 정상에 전망대 보러 갔다 왔는데 거기 그런 집이 있더라, 라는 한 줄짜리 문장이 전부였다.


유명하지 않은 숙소라 더 호기심이 일었다. 숙박 예약 어플을 통해 후기를 열심히 찾아보았고 손만 뻗으면 별이 쏟아진다는 어느 외국인 여행자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바로 숙소를 예약했다. 미리 짜둔 여행 스케줄 앞뒤 동선을 생각했을 땐 조금 빠듯한 일정이긴 했지만, 용케 마지막 케이블 카를 타고 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케이블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별은 쏟아지지 않았다. 날은 흐렸고 하늘엔 구름만이 자욱했다. 고산 지대라 10월인데도 앞니가 자동으로 딱딱, 하고 부딪칠 만큼 많이 추웠다. 기상 상태가 안 좋아서 그런지 10인실 숙소도 혼자서 사용했다. 스키 시즌이 아닌 이상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롯지의 주인이 말했다. 산 아래와 연결된 마지막 케이블카는 오후 5시에 끊겼고 내가 그걸 타고 올라왔으니 이제 여기엔 더 올 사람도 없었다.


그 밤은 무척이나 길었다. 혼자 방안에 누워 있노라면 너무 할 게 없었고 산책이나 해볼까 싶어 두꺼운 담요를 돌돌 말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밖은 한 걸음 내딛기도 어려운 캄캄한 어둠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어두운 밤, 깊은 산 중에서 결국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그렇다면 그 숙소가 최악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었다. 조용하고 길었던 저녁이 지나자 어김없이 아침이 왔고 창밖에 지저귀는 새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깼다. 10인실 룸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노란 햇빛이 오로라처럼 방 안을 너울지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을 때 눈으로는 차마 담기 어려운 대자연을 보았다.


서리가 낀 침엽수 나뭇잎이 보였다. 다음으로 온통 녹음으로 가득한 주변 경관이 들어왔고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이 인기척을 느끼고선 창공을 향해 파드득 날아갔다. 새들이 날아간 쪽으로 설산의 봉우리가 꼿꼿하게 서있었는데 수북이 눈 덮인 산봉우리는 내가 보는 게 눈인지 구름인지 모를 만큼 신비로웠다. 하늘과 지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앞에서 롯지 주인이 키우는 산양들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제 그만 넋 놓고 정신 차리라는 듯 웅장한 울음소리였다. 말로 다 담기 어려운 풍경 앞에서 나도 모르게 연신 소리 내어 감탄했고 새삼스레 내 안의 근거 없는 모험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었다.

 


해발 2,100m에 사는 산양


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스무 살 때에도 나는 이렇게 스스로 새로운 길을 뚫는 걸 좋아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을 때였다. 처음 접한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나는 도통 눈을 둘 데가 없었다.


내가 살던 광주와 달리 어딜 가려고만 하면 지하철 역이 너무 많아 눈이 아팠다. 가령 광주는 지하철 노선이 하나뿐인데 여긴 무려 8개나 됐다. 여기가 신촌이라고? 여기가 홍대였구나. 여기가 이대였네.  이름은 하나하나 둘러봐도 금세 잊어버리기 마련이었다. 사실 신촌, 홍대, 이대는 모두 서대문구라  동네인데도 나는 그것들에 관해 교집합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다. 지하철 정거장들은 각각의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섬처럼 느껴져 역과  사이엔 마치 도보로는   없는 넓은 바다가 끼어 있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버스는 지하철과는 좀 달랐다. 지상으로 다녔기 때문에 어디로 가는지 길이 보였고 지나치는 공간에 대한 안내방송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덕분에 엑셀에 수식 입력하듯 역 이름과 풍경을 대입해서 암기해볼 수 있었다.


ㅣ 이번 정거장은 신촌기차역입니다. 신촌 지하철역 현대백화점 앞입니다. 다음 정거장은 홍대 입구역입니다.  


버스는 얼마 가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아는 역 이름들을 몽땅 읊었고 나는 바쁘게 눈을 굴렸다. 들려오는 역 이름을 외우기 시작한 것, 기억을 발판 삼아 버스 노선대로 거리를 걸어보기 시작한 것, 그게 내 서울 도보 여행의 시작이었다.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마주한 대도시에 대한 궁금함, 그곳에서 나만의 서울을 찾겠다는 모험심은 거의 바다를 찾아 떠난 로빈슨 크루소만큼이나 비장하고 패기 넘쳤다. 걷는다는 건 튼튼한 두 다리와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어서 학생으로서 부담감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그러한데 더 어렸을 때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골목을 가든 산을 오르든 마음만 먹으면 못 가 볼 곳이 없었다.


걷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걷는 여행이란 으레 목적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발이 닿는 곳에 우연처럼 마주한 것들에 자주 감동을 받곤 했다. 내가 주의 깊게 보고 발견해야지 비로소 의미가 부여되는 어떤 공간, 사물, 또는 사람이 주는 매력은 유독 가슴에 오래 남았다.


기찻길 아래 테이블 하나밖에 없는 라멘집이 그랬고  옆에 돋보기안경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책방이 그러했다. 홍제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만날  있는 성산대교,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안산 산의 벚꽃나무길이 그러했다.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꼬박 5년을 서울 여도보  지도를 만들며 꾸준히 나만의 경로를 업데이트해 나아갔다.


그 사이 내게 옥타비오 빠스의 책을 추천해줬던 돋보기 할아버지는 헌 책방 문을 닫았고 라멘집은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모든 좋은 것들에 끝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내 대학생활 또한 끝이 났다. 졸업 후에는 tvN 드라마 미생처럼 이 안은 총성 없는 전쟁터지만 바깥은 지옥이라는 회사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이제 더는 책상 앞에서 인간은 왜 사는가, 우리는 왜 인문학을 배우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기보다 어떻게 살아야 승진하는가, 어떻게 벌어야 더 부자가 되는가에 대해 얘기하고 갈수록 둔화되는 경제 성장에 좌절하는 지루한 어른의 범주에 속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봄이 오면 안산 산에는 벚꽃이 만개했고, 답답할 때마다 홍제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에 어김없이 성산대교가 등대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서있었다.



 

오스트리아 산 정상에 위치한 롯지 암 크리펜슈타인에서 비현실적인 아침을 맞이한 후 나는 곧장 파이브 핑거스(Five fingers)라는 유리 전망대로 향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관광지였는데 전망대까지 가는 길엔 아무런 인적이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케이블카 첫 차도 운행 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가는 길은 더 절경이었다. 풀잎엔 아침 이슬 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나뭇잎들은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엘프나 동화 속 요정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면 바로 이런 곳에 위치해 있지 않을까.


길의 끝엔 다섯 개의 손가락 모양을 띤 유리 전망대가 있었는데 전망대 아래로는 고요한 호수가 다소곳하게 자리해 있었다. 호수를 빙 에둘러 설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는데 흡사 그 모습이 알을 품고 있는 어미 동물 같기도 했다. 나는 투명 유리 전망대 위에 올라서서 호수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 할슈타트를 아주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자연과 인간의 어우러짐이 참으로 조화롭다는 생각을 갖게했다.  한참을 혼자 앉아 풍경을 감상하며 벅찬 가슴을 진정시켰다.


다음 순간 갑자기 저 아래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고 산에서 부는 바람이 너무 춥게 느껴질 때 쯤이었다. 이제 나는 저기서 실제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인간은 본래 좋은 풍경을 보거나 너무 예쁜 예술 작품을 마주하면 자기가 보고 느낀 걸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어 하기 마련이다.


이걸 함께 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 아름다움을 나누고 싶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갑자기 비현실적 풍경은 현실적인 풍경으로 변질됐다. 눈으로 보는 것만큼 예쁘게 나오지 않는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산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제일 먼저 사진을 전송했는데 신호가 터지지 않아서 채팅방에 자꾸 오류 메세지가 떴다. 끝내 전송 실패가 떠 있는 핸드폰 화면을 보다 괜히 먹먹해지는 마음에 주머니에 있는 휴지를 빼서 코를 팽하고 풀었다. 때마침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Five fingers


ㅣ  아.. 우리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그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첫차 타고 올라왔는데 사람이 있어서 놀랐다며 어떻게 여길 왔냐고 물어보았다. 난 반가운 마음에 눈꼬리가 반달처럼 접힌 채로 내가 머물렀던 롯지에 대해 말해주었다.  대만 커플이었는데 동유럽 여행을 하는 중이고 프라하를 거쳐 오스트리아에 이제 막 도착했다고 했다. 산을 좋아해서 이곳을 먼저 보고 아래로 내려가 호수마을을 관광한 후 곧장 헝가리로 떠날 예정이라 했다. 난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서 일주일 전에 다녀온 헝가리의 좋은 점과 안 좋았던 점을 요목조목 말해주었다. 그리고 유리 전망대를 배경으로 두 사람만을 위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더는 혼자가 아닌 채로 대만 커플과 함께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하게 됐다. 탑승장까지 가는 길에 갑자기 대만 남자 친구가 내 머리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벌레가 있나 싶어서 머리를 만져봤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쓰고 있던 모자가 사라져 있었다. 흰색 비니 모자를 끼고 있었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뒤를 돌아봤지만 모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착한 커플은 다시 돌아가서 찾아보자고 했지만 이 첩첩산중에서 모자를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우리 셋은 이미 고산의 추위에 내몰려 루돌프처럼 코가 빨개져 있었다.


ㅣ 어딘가를 헤매고 있겠죠. 모자도 이 산이 좋았나 봐요.


체념하고서 빨리 가자고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그렇게 산 아래로 내려가는 케이블카에 탑승했다. 호수마을까지는 그 커플과 함께 동행했고 마을에서부터는 한국인들을 만나서 같이 밥을 먹었다. 일행들과는 반나절 동안 함께 했다. 산 꼭대기에서 줄곧 혼자 있다 드디어 같이 밥 먹고 시간을 함께 보낼 사람들을 만났다는 마음에 짧은 시간임에도 마음을 많이 열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지나가는 아시아인에게 서슴없이 우리들의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호수마을


다들 다음 행선지가 있었고 어김없이 밤은 찾아왔다. 호수마을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봤던 호수 마을은 잔잔하고 예뻤는데 막상 그 안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정신없기도 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관광객들이 쉴 틈 없이 몰려와 매사 떠들썩하고 시끄러웠다. 나는 정신없는 그곳을 벗어나 오후쯤 다시 홀로 마을 뒷산에 올랐다. 산 중반쯤 올라갔을까. 역시나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계속 산길을 걷던 중,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길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반대쪽에서 오던 보행자 몇 명과 눈이 마주쳤다. 까이 다가가 인사했는데 자세히 보니 어제 호수 부근에서 사진 찍어달라 부탁했던 태국인 여자 친구들이었다. 셋이서 손 붙잡고 폴짝폴짝 뛰다가 이것도 기념이라며 셀카를 찍었다. 사진은 내 폰으로 찍은 게 아니라서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진짜로 보내줄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며칠이 지난 후 메일이 한 통 왔다.


그때 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서울로 향하는 귀국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발신인 oat violet. 빙그레 웃음이 났다. 사진을 저장한 후 고맙다고 회신하고서 비행기에 올랐다. 캐리어를 올려두고 막 자리에 착석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돌아보니 승무원 한 명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왜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데


ㅣ 다시 만나서 반가워. 우리 정말 운명인가 봐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명찰을 봤다. oat라고 쓰여있었다. 순간 외마디 비명이 나오는 걸 손으로 틀어막았다. 우리는 손을 잡고 곧장 비행기 맨 앞쪽으로 향했다. 이건 운명이니 기적이니하며 환호했다. 탑승객들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는데 oat는 손님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금방 금방 표정을 바꾸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쉽지만 이만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oat에게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만 펄떡이는 심장을 붙들고 자리에 착석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난 후에도 Oat는 내게 담요를 추가로 가져다준다던지 뭐 필요한 게 없는지 자주 물어봐주었다. 귀국 후에 나는 개인 인스타그램에 이 신기한 인연에 대해 몇 장의 사진과 나름의 짤막한 일기를 올렸다.


ㅣ 이 모자 산에서 주웠었는데 네 꺼였어? 누구 건지 몰라서 그 자리에다 가져다 뒀는데. 날아갈까 봐 돌도 얹어놓고 왔었어.

 

팔로우를 맺은 oat가 그 사진을 보고서 답장을 보냈다. 하하...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인생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는 정말 운명인가 보다. 메시지를 보냈다. 그 후로도 태국 친구들과 간간이 계속해서 연락을 유지해왔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의 소셜을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 날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그 포스팅에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넣지 않았더라면 내 모자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사진을 찍어달라 했고 그냥 뒷산에 올랐을 뿐이고 그냥 소셜에 일기를 썼을 뿐인데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행지인 할슈타트와 귀국행 비행기에서 만난 태국인 친구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무엇도 만날 수가 없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때론 나와 oat처럼 우연이 너무 반복돼서 모든 것이 운명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삶의 모든 것이 운명이라 생각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차단되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 그게 내 운명이려니 받아들이고 '그래도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태도를 조금만 달리하면 그때의 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펼쳐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운명이란 건 내가 한발 한발 내딛는 길을 따라서 결국 양상을 다르게 나타낸다는 거다. 이는 니체의 철학, 운명애(amor fati)와도 일맥상통하는데 결국 인간의 삶이란 태어나서 죽는 과정이란 점에서 길의 시작과 끝은 모두 똑같으나, 내가 나만의 지도를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간다면 아는 만큼 나아갈 수 있고 나아가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은 길의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처럼 나는 내가 걸어갔기에 마주할 수 있었던 사소한 우연들에 감사하고, 또 그런 우연들이 빚어준 소소한 인연들에 또 감사한다. 어릴 적 내가 걸으면서 보고 들려서 관심 가졌던 그 가게들이 아직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아 책으로든 식성으로든 나라는 사람에게 오래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일테고.


요즘도 시간이 날 때면 나는 자주 걷는다. 주로 직장이 있는 선릉에서 삼성역까지 걸어가 별마당 도서관에 앉아 책을 보거나, 보고 싶거나 시간에 맞는 영화가 있으면 근처 메가박스에서 혼자 영화를 보고 집에 간다. 평지이고 일직선으로 뻗은 길이라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아직도 걷는 게 더 좋다.  


어느새 나는 스물에서 서른이 됐고 더 이상 지하철 노선도가 어색하지 않고 익숙해졌지만,  오히려 고향에 내려가 내가 자란 초등학교 담벼락 옆을 거닐 때 이게 이렇게 작았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내가 지나온 그 모든 거리, 그 모든 길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너무나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길들이 모두 선분으로 이어져서 지금의 나라는 도형, 어떠한 형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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