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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r 21. 2019

세상 모든 것들이 연결돼있다면

카르마

서로 다른 사람 둘이 만나 우연한 기회로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면 왠지 모르게 가까워진 느낌이 드는 법이다.


집 구하기 어렵단 얘기를 하면서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어느 순간부터 앞뒤가 아닌 양옆으로 걸었고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우리가 걷는 이 좁은 골목 어귀에서 나고 자랐을 그녀는 서른 후반이 될 때까지 멕시코, 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발리, 호주에서 장기간 살아본 프로 여행자였다.


ㅣ아프리카는 어떻게 해서 살게 된 거야? 나도 죽기 전에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꼭 가보고 싶은데. 발리도!


묻고 싶은 게 아주 많았다. 아마 조안나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들떠서 그랬나 보다.


ㅣ봉사하러 갔어. 포르투갈어를 알려주는 교육봉사였는데... 아무튼 다시 가고 싶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죽고.. 힘들었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거를 회상하던 조안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팔을 쫙 펼쳤다. 그때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 새 같았다. 모든 고난과 무거운 책임을 벗어던지고 자유를 갈망하는 새. 하늘을 보면 갈매기 몇 마리가 불규칙적으로 강 언저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 조안나는 묵혀뒀던 기억들을 하나둘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복잡한 것 같았다. 나 또한 봉사라는 단어를 생각하니 접어뒀던 옛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20대 중반에 비영리 단체에 일년간 몸 담았었다. 학부 때 아시아 사회적 기업 경진대회(Social Venture Competition Asia)를 기획하는 대외활동을 재능 기부로 일 년간 했는데 이때 접하게 된 사회적 기업이라는 일자리에 반해 휴학하고 인턴으로 일하게 됐다. "내가 하는 일이 돈도 벌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좋지 않을까?" 단순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이 시작됐다.


성공한 기업인이었던 회장님이 여러 회사, 대학, 지자체와 연계해 사회적 기업을 발굴하고 투자하기 위해 만든 NPO단체였다. 운 좋게 그곳에서 소셜 섹터 내 저명한 인사들을 짧게나마 마주할 수 있었다. 한국을 넘어 홍콩 중국계 아시아권 젊은이들이 낸 사회적 기업 창업 아이디어를 받고 경연대회를 열면서 세상은 넓고 유능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게 됐다. 부족한 상태에서 많은 걸 배운 만큼 인턴 기간은 금방 지나가버렸다. 반년 후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준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와서도 어찌어찌 다시 이쪽 분야에서 인턴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이번에는 직원이 30명 있는 이전보단 조직화된 NGO였다. 기업 사회 공헌 활동을 대행해주는 단체였는데 마케팅으로 따지자면 마치 홍보 대행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대기업에서 사회공헌 또는 마케팅 비용을 받아 저소득층, 취약계층에게 문화 예술 교육을 시켜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웠는데 다니다 보니 공갈빵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곳이었다. 매일 밤 야근하는 게 당연시됐고 옆자리 팀장님은 수시로 편두통이 왔다. 집 계약이 만료돼 이사 가야 하는데 보러 갈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팀장님 얼굴은 인턴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그 공간에서 우린 모두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고 노동 강도와 급여는 반비례했다. 순수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와서 일했던 사람들은, 역으로 자신이 봉사받아야 하는 사람이 돼버렸단 사실에 좌절한 후 제 발로 걸어 나갔다. 퇴사를 예정해둔 사람들은 자주 내게 빨리 나가서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당부했다.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외에도 대관 사업, 인터넷 신문사, 카페 운영  대표님이 다루는 사업은 무럭무럭 커져갔고 나는 비영리에 입사했지만 영리 사업 홍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턴이란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CEO 욕심만큼 조직 문화가 받쳐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은 계속해서 확장되는데 인력은 최소한으로 쓰니 일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가고 정직 얘기가 나올 때쯤 그만두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소속된 팀과의 사이가 좋았기에  나가냐는 말에 뾰족한 이유를 대기가 애매했다. 퇴사하고 전공을 살려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지만 반쯤은 핑계였다.


이후에 영리 기업에 취업을 하고 난 후, 우연히 내가 다닌 비영리 단체에 관한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게 됐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 단체는 미르 재단과 비슷한 문어발식 페이퍼 컴퍼니 운영, 기업 및 정부부처의 후원금 횡령 단체로 고발됐다. 처음엔 사회에 기여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겠지만 직원 복지 및 자금 운용의 투명성을 지키지 못했으니 비영리를 가장한 영리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소셜 섹터를 경험하고 나오다 보니 이후에   또래의 누군가가 NGO, 사회적 기업 얘기를 꺼내면 대단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젊은 나이에 이 분야에서 일한다는  상당히 많은 것들을 희생하고 감내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의 회장님처럼 사회적으로나 물적으로 이미 많이 이뤄놓은  비영리에 뜻을 품고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물론 사업 아이템 자체가 좋아서 사회적 가치와 금전적 가치를 모두 지속•확장시키는 사회적 기업을 차리거나, 그런 회사에서 성취감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었다. 적어도 내가 일했던 2014년도의 한국 비영리는 구조적으로 열악했으며 열정 페이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들 만큼 불합리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도 순수했었고 뜨거웠기에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했다. 특히나 조안나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더 그러했다.




 ㅣ발리는 3개월 동안 갔었어. 정말 쉬러. 그냥.. 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시간들이 좋았던 것 같아. 아 물론 거기서도 힘든 일은 있었어. 렌트했던 차에 문제가 생겼는데...


 조안나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ㅣ 엘레나! 혹시 카르마(karma) 알아?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카르마가 뭔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우리의 대화가 끊기는 걸까. 순간 침울한 기분이 들었는데 조안나는 알만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카르마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르마(Karma)=業


우주의 모든 힘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으로 작용한다.

고로 내가 힘든 일을 당한 것은 나에게 부정적인 카르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쾌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남한테 비슷한 일을 가한 적 없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아가 복수심을 비우고 가해자를 용서하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 부정적인 카르마가 종결된다.

반면에 나한테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긍정적인 카르마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그냥 오는 게 아니라 이 일이 언젠가 베푼 선행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아야 한다.

결국 카르마란 세상 모든 게 연결돼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안나는 부정적인 카르마와 긍정적인 카르마를 자기 경험에 빗대어 생생하게 말해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카르마의 시발점은 발리 여행에서부터였다.


 ㅣ엘레나! 차를 렌트했는데 처음부터 차체가 허술했었어. 물론 내 잘못도 있긴 한데 사이드미러가 부서져버렸지. 돈 아끼려고 대충 티 안 나게 붙여놓고 반납했는데 말이야!


말할 때 강세를 주는 것만으로도 조안나가 충분히 흥분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ㅣ직원이 그걸 발견하고 돈을 내라고 하는 거야. 난 끝까지 내 잘못 아니라고 잡아뗐어. 조금 억울하잖아. 왜 내가 돈을 내야 하냐고 돌아서는데 It is your karma (이건 네 카르마야) 이러는 거야.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ㅣ그땐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 난 원래 이랬다며 결국 돈을 안 냈어.


 잠시 조안나는 내 반응을 살폈다.


ㅣ웃긴 게 그 후에 호주에 갔는데 정말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렌트한 차가 또 고장 난 거야. 맙소사, 돈을 얼마를 냈냐면.. 호주 물가 알지? 발리랑 엄청 다르잖아


울분을 터트리며 손가락을 접었다 펴는데, 액수가 상당했는지 손가락을 계속 접다 말고 이내 부질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그러고 나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는데


ㅣ그게 내 카르마였던 거지!


잠시 멍 때리던 나는 이내 웃어버렸다. 오른쪽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웬일인가 싶어서 힐끔거리며 우릴 쳐다보고 갔는데 조안나는 이게 뭐가 웃기냐는 듯 양 볼에 뾰로통하게 바람을 넣었다. 귀여웠다. 자기보다 한참 어린 동양인 여자애 앞에서 이렇게 열심히 카르마에 대해 설명하는 게. 카르마를 믿으라며 내 손을 꼭 부여잡는 이 모든 상황이. 나는 마주 잡은 조안나의 손을 꽉 쥐며 짓궂게 웃었다.


ㅣ그럼 너랑 나랑 만난 것도 카르마겠네?


조안나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연한 거 아니냐며 고개를 끄덕였다.  


ㅣ물론이지. 긍정적인 카르마!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포르투 골목을 걸으며  낯선 땅 낯선 건물의 유래를 듣고,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그녀의 카메라에 내 사진을 맡겼다. 정말 카르마라는 게 있다면 이런 만남도 미리 정해진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스냅


한참을 걷던 우리는 포르투에서 가장 높은 수도원 전망대로 향했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가파르고 비좁았다.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데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위를 올려다보자 저기서부터 소형차  대가 쏜살같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사람도 여럿이서  줄로   없는 좁은 골목이었는데 내려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깜짝할 사이에  앞에 차가 와있었고 조안나와 나는 황급히 가장자리로 몸을 틀었다. 위험할 정도로 가까운 위치에서 차체가 스치듯 지나갔다. 당황했고 화도 나서 뭐라도 말하려는데  둔탁한 소리가 퍽하고 울려 퍼졌다. 조안나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번호판을 보았다.


  ㅣ어쩌지. 저거 재네들 차가 아니야


좁은 골목이라 긁힌  확실할 거라고 했다. 조안나의 걱정과는 달리 차는 벌써 저만치로  달려가며 형체가 줄어들고 있었다. 어이없었지만 순간 머릿속을 불쑥 스치는 문장이 하나 있었는데


 ㅣ그것도 게네들의 카르마인 거지


조안나가 잠시 멈칫하다 허리를 폴더처럼 구부린 채 꺼이꺼이 웃었다.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니 좀 전까지 차에 치일 뻔한 건 잊어버리고 나 또한 함께 웃었다. 정말이지 우리 둘 제대로 만난 거 아닐까. 여행 얘기, 봉사 얘기, 카르마 얘기, 몇 번의 경험을 함께 나눈 뒤 공통점을 발견하니 세상 이렇게 편한 사람이 있을 수 없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수도원도 어느새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수도원 전망대는 포르투(Porto) 시내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로 동루이스 다리와 도오루 강이 한눈에 보여 이 배경으로 사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이른 오전인데도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ㅣ 오후에 혹시 뭐해? 누구 만나거나 할 일 없으면 나 부르라고 말하려고. What's app(메신저) 알지?


조안나는 이곳이 우리의 마지막 스냅 스팟이라는  강조하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걱정  기대 반으로  보는 조안나에게 대답 대신 포옹을 했다. 때론  마디 말보다 조그만 행동 하나가 마음을   표현할  있을  같았다.


그렇게 3시간가량 진행된 포르투 워킹 스냅 투어가 끝이 났다. 조안나는 다음  때문에 가봐야 한다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가려면 빠듯하다고 말했으면서도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는 조안나에게 나는 안심하라고 손을 크게 흔들어주었다. 사라져 가는 조안나를 보면서 심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고지대의  공기가 들어와 뜨겁게 상기된 속을 가라앉혔다.


나는  후로도 한참 동안 수도원 전망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포르투가 제일  보이는 곳에서 이곳을 잊지 않겠다는  하나하나 꼼꼼히 내려다보며. 우리가 걸어온 , 마주한 건물들을 회상하고 곱씹었다. 하늘엔 어김없이   마리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수도원 전망대

   

 <이 글은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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