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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Mar 15. 2019

살다가 우연히 다시 만날 확률

 타인이 건네는 위로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을 다시 만날 확률이 몇이나 될까? 아마 절반 이상은 한번 보고 말 사이라는 생각을 베이스로 깔고 있을 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아주 우연이거나, 적어도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리스본에서 처음 만난 미리 언니를 제주에서 다시 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설맞이 가족여행이면서 동시에 연차 몰아 쓰기 신공으로 혼자 여행을 겸했던 2월 제주여행이었다. 부모님은 빨간 날에 맞춰서 4박 5일간 제주에 있다 가셨다. 나는 앞뒤로 일주일 정도 제주에 더 머물렀다.


그때 이미 제주에 온 지 거의 일주일째였다. 동쪽, 서쪽, 남쪽, 웬만한 관광지는 다 가본 것 같은데 이제 대체 뭘 더 해야 하지? 누구한테라도 도움받고 싶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글을 올렸다. 몇 시간 후 거짓말처럼 미리 언니한테 메시지가 왔다.


 ㅣ나도 제주도 놀러 옴. 언제 서울 가?


반가운 마음에 만나자고 답장을 보냈다. 물론 진짜로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진 않았다. 우리는 고작해야 삼일밖에 보지 않은 사이니까. 그마저도 낯선 땅 리스본에서 여행자로 만난 거니까.

 

리스본

 

비양도라는 제주 안에 있는 또 다른 섬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돌아가는 배 시간 때문에 정신없이 해안 산책로를 걷고 있을 때였다. 전화가 왔다. 받지를 못했다. 몇 분 안돼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와의 대화가 쉼 없이 이어졌고 진짜로 약속 시간을 잡게 됐다. 뜻밖에 구체적인 일정 또한 생겨버렸다.


  ㅣ슬기야 그냥 우리 집 올래? 여기 친구 아파트인데 넓어. 친구도 명절이라 제주도에 없고 심심했는데 같이 여행하자.


불과 5분 전까지만 해도 무계획이었는데. 남은 5일 동안 뭘 해야 할지 어디서 자야 할지 안개 낀 4차선 도로 위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이 막막했었다.


  ㅣ저 일단 게스트하우스에 짐이 너무 많은데요. 내일 체크아웃하는데 고민해보고 연락 드릴게요.


  ㅣ데리러 갈게. 언니 차도 렌트했어. 주소만 보내줘 봐


이렇게 순식간에 정해져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언니와 전화를 끊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 발은 날개가 달린 것처럼 가가벼고 희망이나 기대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서 바닷물처럼 넘실거렸다. 바야흐로 여행 2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아침

언니는 정말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게스트하우스로 픽업을 왔다. 애월 하늘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만약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 빗속에 캐리어를 끌고 이동할 숙소를 찾아다녀야 했을 텐데...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왔다.


서귀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는데 정체돼 있는 도로에서도 시간이 금방 금방 흘러갔다. 언니는 차 안에서 음악을 듣는 걸 좋아했는데 그 음악은 내가 예전에 들어봤거나 자주 듣는 음악들이었다.


그냥 가기 아쉬워 동선에 맞춰 몇 곳을 관광하기도 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비 내리는 걸 본다던지 미술관이나 차 밭을 간다던지 대개 정적인 것들이었다. 생각보다 우린 취향이 잘 맞았다. 그렇게 저녁 무렵쯤 식료품을 한 아름 안은 채 남의 집 현관 안에 들어섰다. 이상하게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언니와 온종일 함께여서 가까워진 느낌 때문이었을까.


저녁으로는 카레 목살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언니는 목살 스테이크, 나는 카레를 만들었고 식사가 끝난 후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테이블을 치우고 설거지를 했다.  방탄소년단 노래를 들으며 k-pop의 세계화에 대해 얘기했고, 그러다 지치면 소파에 기대앉아 스카이 캐슬 종방을 보며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누가 보면 마치 오래된 친언니동생처럼 보일 것 같았다.


언니와 함께 만든 저녁


처음 만난 리스본에서는 우린 꽤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언니와는 에어비앤비 룸메이트로 처음 만났다.


방이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이 비싼 숙소가 있었다. '이 집 때문에 리스본 다시 올 것 같아요' '지금까지 간 집 중에 제일 좋았어요. 강추합니다.'  이런 후기들을 읽었는데 도저히 그 숙소를 그냥 포기할 수 없었다.


고민하다가 유럽여행 커뮤니티 카페에 룸메이트 모집 공고를 올렸다. 그  공고를 보고 연락 온 게 미리 언니였다.


ㅣ영국에서 대학원 다니고 있어요. 포르투 여행하다 넘어갈 건데 괜찮나요?

 

언니에 대해 아는 건 사실 그것뿐이었다.

첫날과 이튿날은 각자 따로 리스본을 여행했다. 셋째 날 근교 투어를 가려했는데 택시비가 부담돼서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부득이 동행하게 됐다.


단 하루였다. 그런데 그 하루를 꼬박 같이 있다 보니 언니 옆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다니게 됐다.


음악을 자주 듣고 여행을 좋아하며 먹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언니도 이런 나를 곧잘 받아줬다. 무려 삼일이나 같은 숙소에 머물렀는데 떠날 때가 다 돼서야 친해졌으니 마지막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근교 투어 다음날 나는 곧장 리스본발 귀국 행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언니가 새벽부터 졸린 눈을 비비며 현관으로 나왔다.


ㅣ 다음에 서울에서 봐


꼭 보자고 대답하고 잠시 언니 품에 안겼다. 따뜻했다. 숙소 밖으로 나오자 새벽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바로 정신이 들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가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언니의 거주지는 영국이었고 나는 서울이었으니까.


마지막일 거란 생각 때문인지 언니가 내게 남긴 온기만큼은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아주 오래 남아있었다. 귀국 후, 언니 소식은 주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봤다. 그 해 겨울 언니가 갔던 아이슬란드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영국 아미로 활동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졸업 후 서울로 돌아온다는 스토리를 봤지만 연락하진 않았다.  그렇게 끝날 인연인 줄만 알았다.




리스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제주 또한 돌아오는 비행기가 오전 항공편이었다. 동이 트기 전이라 사물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사방이 어두운 새벽이었다. 언니가 공항행 버스정류장까지 차로 배웅해주었다. 리스본에서 헤어질 때가 생각나 마음이 울컥했다. 그래도 다시 서울에서 볼 거니까.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서귀포발 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짐칸에 캐리어를 싣고 계단을 올랐는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핸드폰이 없었다. 주머니를 샅샅이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ㅣ핸드폰 없어요? 잘 좀 찾아봐요


기사님이 버스 문을 닫으며 말했다. 버스는 출발했고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맨 앞자리에 앉은 할머니가 날 바라보시더니 지갑을 꺼내 들어 대신 요금을 내주셨다. 이걸로 전화해보라며 핸드폰도 빌려주셨는데 4-5번이나 통화를 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핸드폰을 언니 차에 두고 온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신호음만 듣고 있길 몇 분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ㅣ야~ 이거 뒷좌석에 떨어져 있었어!


한마디 내뱉기도 전에 언니가 먼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서 당장 버스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정거장 이름만 알려주면 바로오겠다고.


 ㅣ죄송한데 택배로 보내줄 수 있어요?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언니는 단호했다.


 ㅣ그럼 체크인 어떡할 거야? 너 모바일 항공권이잖아.  


다음 순간 나는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ㅣ 일찍 나온 거라 다음 버스 타도 돼. 다음 버스 오기 전까지 갈게.   


차분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겼다. 때마침 버스에선 다음 정거장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얼마 안 가 앞문이 열렸고 할머니와 기사님께 공손히 인사를 드린 후 주춤 주춤 버스에서 내렸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도로에서 나는 멍하니 서 있게 됐다.  낯선 곳, 낯선 정거장. 이른 새벽부터 일어난 일에 두 다리에 그만 힘이 풀려버렸다.


그대로 정거장 앞쪽에 주저앉았는데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던 해녀 아주머니 세분이 말을 걸어왔다. 알아듣기 어려운 제주 방언이었는데 대답할 힘조차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로지 이게 웬 날벼락일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ㅣ 젊은 사람이 씩씩해야지.


꾸준히 말씀하시는게 너무 잘 들릴만큼 고요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무슨 마음이었는지 나도 그쪽으로 다가갔고 천천히 내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해녀 할머니들은 추임새를 넣으며 내 일을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셨고 동시에 생각지도 못한 해결법도 말해주셨다.


내 손녀딸도 서울 오고 가고 하는데 비행기 많아. 걱정하지 마. 다음 거 또 타면 되지.


공항에 비행기가 얼마나 많은데.


이런 날도 있으면 저런 날도 있는 거지, 기운 차리라고.


얼마 후 해녀 할머니들을 태워갈 봉고차가 왔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서서히 동이 트고 있었다. 잿더미 같던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힘이 나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건네 주고 간 작은 위로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저 몇 마디 위로였을 뿐인데 캄캄했던 앞길을 어스름하게나마 밝혀주는 것 같았다. 아침이 왔고 사물의 형상이 보다 명확해졌고 머릿속도 한결 정리가 되는 것 같달까.


 내 이름을 부르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언니 차가 미끄러지듯 정거장으로 다가왔다. 차창을 열며 손이 불쑥 하나 튀어나왔는데 내가 그렇게도 찾던 핸드폰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언니는 늘 그렇듯 괜찮다고 웃었고 짧게 두 번째 작별인사를 건넸다. 뒤이어 공항행 버스가 오고 있었다.


공항행 직통 버스를 탄 후 도착하자마자 수화물을 맡기고 검색대를 지나쳤다. 다행히 이제 막 탑승이 시작되고 있었다.


핸드폰을 켜서 아까 버스에서 대신 요금을 내준 할머니께 감사드린다고 문자를 보냈다. 뭐라 썼는지 다 기억은 안 나지만 고마운 마음을 절절히 적었던 것 같다. 뜻밖에 답장이 왔는데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건네주셨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라는 말처럼 이번 여행은 예상치 못한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그때마다 나타나 손 내밀어주던 낯선 이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서 아쉬움은 없지만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서 만나죠?


사람과 사람의 작은 만남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란 말이 있듯이 어쩌면 우연처럼, 혹은 정말 운명처럼 알게 된 사람들이 가로등이 되어 그때그때 길을 밝혀준것만 같았다.




좋아하는 소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  아닌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을  위로하는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아들의 생일에 맞춰 주문한 케잌을 가져가라고 전화한 빵집 주인,  앞에서 아들의 죽음을 알려야 하는 나에게 담담한 위로가 건네진다.


"롤빵이라도  드세요. 그래야 힘을 내죠."


  아닌  같지만 너무나 힘든 순간에는 따뜻한  한마디가  도움이 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하루 하루 맞부딪치는 크고 작은 사건들 안에서 개인이 꿋꿋하게 버틸  있는 힘은, 타인이 건넨 작은 위로 또는 칭찬  마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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