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사일 2호
작심사일은 정이와 반이가 한 개 주제를 사일 동안 도전하고 그 사일 동안의 기록을 담는 뉴스레터 콘텐츠입니다. 구독 가능한 링크는 콘텐츠 마지막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스시,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빵. 이런 저도 예전부터 비건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다만 음식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은 없었는데요. "~동에서 추천하는 맛집은?" "~ 역에서 추천하는 맛집은?" 누가 물으면 자동으로 술술 말할 수 있을 만큼 식탐도 강합니다. 외식 성애자 정이의 사일 비건 도전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놀라지 마세요, 비건 성공!
서브웨이에서 로티세리 치킨만 먹는 사람이었다. 비건에 도전하며 처음으로 안 먹어본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얼터밋 썹이라고 식물성 고기로 된 샌드위치였다.
"얼터밋 썹 주세요!"
"단종됐습니다."
음.. 동공 지진이 일었다. 서브웨이 비건 메뉴를 다시 알아보기엔 뒷줄이 너무 길었다. 다급한 마음에 로티세리 치킨이라는 말을 해버렸다. 빵은 늘 먹는 허니 오트로. 그렇게 0일 차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샌드위치에 들어간 닭가슴살이 아니더라도 빵 자체가 문제였다. 허니 오트의 허니는 꿀이기 때문이다.
*비건은 단순히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뜻하지 않는다. 동물을 희생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일절 이용하지 않는 윤리적 소비를 뜻한다. 꿀을 채취하는 과정에서는 벌꿀들이 많이 죽는다. 꿀벌이 일생동안 열심히 일해도 약 12 티 스푼 정도의 꿀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먹기 위해 꿀을 착취하는 건 비건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꿀팁
서브웨이에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빵은 화이트, 위트다. 허니 오트는 안 된다. 비건이라면, 서브웨이에서 치즈 없이 베지 샌드위치를 시키는 게 좋다. 보통은 빵 > 치즈 > 고기 > 샐러드 순으로 고르는데 베지 샌드위치는 치즈와 고기가 생략된 형태의 샌드위치이다. 물론 가격도 더 싸다.
아침에 스타벅스에 커피 마시러 갔다. 블로그에서 미리 찾은 대로 주문했다.
"블론드 라떼 우유를 두유로 변경해주시고요. 바닐라 시럽 넣어주세요."
"시럽 몇 번 넣어드릴까요?"
"아... 한 번이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닐라 시럽은 허니가 아니라서 비건일까? 바닐라는 풀에서 추출되는 게 맞겠지? 전날 저녁부터 열심히 찾은 레시피인데도 다시 한번 구글링을 했다. 다행히 스타벅스 바닐라 시럽은 비건이 먹어도 되는 당분이었다.
오후에는 미용실에 갔는데 자판기 우유를 넣은 특제 제조 커피를 건네받았다. 헤어디자이너 언니께 비건 챌린지 중이라 못 마신다고 했다. 내일부터 하라 그랬는데 이미 내일부터라 안된다고 했다. 작심사일 챌린지는 일주일에 딱 하루만 치팅할 수 있기 때문에 나머지 4일은 정말로 주의해야 한다.
저녁 무렵엔 외근이 있었는데 비건 식당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죄다 고깃집만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인근 분식집에 들어갔다. 샐러드김밥을 시켰다. 드레싱에 마요네즈 있을까 봐 계산할 때부터 빼 달라 그랬는데 아뿔싸, 속재료도 문제였다. 샐러드 김밥 안에 계란과 맛살이 들어있었다. 계란은 비건이 먹어선 안되고 맛살 또한 게살이 0.1%라도 들어있을지는 몰라서 먹지 않았다. 후... 생각보다 비건 식당 찾기도 비건 음식 먹기도 너무 어렵다.
꿀팁
샐러드김밥에 드레싱은 마요네즈가 들어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일반적인 마요네즈는 식초, 계란 노른자, 오일로 만들어진다. 김밥 앞에 붙은 샐러드란 이름에 속지 말고 계란이나 맛살이 속재료로 들어가진 않은지 주문할 때 한번 더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다.
아침으로 서브웨이 베지 샌드위치 먹는 게 점점 익숙해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채라 배가 빨리 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점심에 콩 100%로 된 콩국수 먹으러 가자고 동료를 꼬드겼다. 가는 길에 전화를 해봤는데 계절 메뉴라 안된다는 말을 들었다.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오갈 데 없이 헤매다 산채비빔밥집으로 방향을 돌렸다.
"혹시 비빔밥에 고기 들어가나요? 네. 고기 빼주세요"
비빔밥이 나왔는데 위에 얹은 계란 프라이가 유독 노랗게 보였다. 프라이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앞에 앉은 동료에게 줬다. 나물과 밥을 고추장에 비벼서 꼭꼭 씹어 먹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상당히 맛있게 먹었나 보다.
"정이님 보니까 비건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럼 한번 해볼래요? (우물우물) 동료님도 다음 주 go?"
영업은 대성공. 심지어 직장 동료는 라면을 한 번에 7봉 먹고 피자는 세 판 먹는 사람이다. 실패하면 그다음 주에 재도전해야 된다는 약속도 영상으로 받아냈다.
"제가 비건이란 거 잊어버리지 않게 다음 주 월요일 아침 구글 캘린더로 알람 주세요."
그 정도쯤이야. 밥맛이 이상하게 더 좋게 느껴졌다. 선한 영향력의 전파다.
꿀팁
당신이 비건이라면 직장 동료와 밥을 함께 먹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럴 땐 같은 비건으로 끌어들여보자. 선한 영향력의 전파다.
3일 연속 아침으로 베지 샌드위치를 먹었다.
점심엔 날이 맑아서 식사를 스킵하고 회사 근처 루프탑 카페에 갔다. 햇빛 받고 싶어서 간 건데 운 좋게 비건 빵을 파는 카페였다. 바게트를 사려고 계산대에 줄을 섰다.
"다음 주면 비건 빵 종류가 더 많아질 거예요"
사장님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 주엔 비건 아닐 텐데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 쏙 하고 다시 들어갔다.
오후 5시쯤, 회사 근처 또 다른 카페에 갔다.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인데 어니언이라고 꽤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는 라떼를 마실 수 있다. 메뉴 이름은 오틀리 라떼인데, 일반 라떼 베이스가 우유라면 오틀리 라떼 베이스는 귀리 우유다. 최근 들어 대체식과 비건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면서 스웨덴 기업 오틀리의 기업 주가도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비건 바게트와 오틀리 라떼.
작심사일이 끝나갈 때가 되니 새로운 비건 메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나 보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출근 전 24시간 분식집에 들렀다. 비빔밥을 시켰다. 물론 계란은 빼서. 밥이라 그런지 서브웨이 베지 샌드위치보다 조금 더 든든한 것도 같았다. 점심으로는 샐러드와 바나나, 오후 간식으로는 옆자리 동료가 준 안동사과즙(사과 100%), 어제 먹었던 오틀리 라떼를 먹었다. 그리고 대망의 저녁.
이번 주 처음으로 집밥을 해 먹었다. 메뉴는 비빔메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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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인이다. 내 라이프 스타일에 외식 비중이 꽤 높은 이유도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고. 막연히 비건 해보고 싶다 생각했을 때도 실은 이게 제일 걱정됐었다. 1인 가구 자취러로써 집밥 해 먹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으니까. 외식으로 과연 비건을 계속할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문이 들었다.
사일 해보고 나니 생각보다 비건은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프랜차이즈에서도 비건 메뉴를 많이 찾아볼 수 있으니 결국엔 의지의 문제인 것 같다. 가령 중간중간 직장 동료가 케이크를 건넨다던가, 고기 먹자는 유혹이 있었지만 모두 참아냈다. 굳은 의지로 어찌어찌 4일 챌린지가 끝이 났으니 나처럼 하루 세끼 밖에서 사 먹는 직장인들에겐 이 콘텐츠가 유용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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