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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헨님 Apr 26. 2023

카카오톡 선물 받기를 거부합니다.

(생일) 카톡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협회장

 생일, 그 하루가 시작되는 자정에 평소에 잘 건드리지 않는 상태 메시지를 오랜만에 바꾸어 두었다.


 카톡 선물 No! 사랑의 말이면 충분해(하트)


 정말 그랬다. 하루 종일, 틈틈이 도착하는 기프티콘과 집 주소를 입력해 달라는 선물들에 감사함을 늦지 않게, 또 충분히 표현하는 일을 올해는 하고 싶지 않았다. 생일이면 원격으로 간편하게 선물을 문화가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나는 질렸다. 이 고리를 나부터 끊고 싶었다.


1. 이미 물건이 너무 많다.

핸드크림, 립밤, 립스틱, 바디로션, 바디클렌저, 향수, 헤어 에센스 등 작고 향기로운 아이들이 선반에, 수납장 안에 이미 그득하게 있다. 아무리 부지런히 써도 새 상품이 들어오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 나 자신을 대접하는 소비가 잦은 나는 더욱이, 이미 다 스스로 실컷 사 주었다고요. 바이레도, 조 말론도 샤넬도 에르메스도 톰 포드도 다 써 봤다. 무얼 받아도 그다지 설레지 않는다.


2. 다른 이와 겹치지 않으려고, 깊었던 날들과 특별한 인연임을 상기하면서 꼼꼼히 스크롤을 내렸을 그 정성을 떠올리면 송구함이 앞선다. 아침에 일어나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이 가장 위에 떠 있으면, 적당히 만족스러운 선물을 전송할 때까지 마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깊게 좋아하는 사이여도 그날이 되어서야 ‘오늘이구나, 너의 생일’ 알게 될 때가 있으니, 그럴 때면 더 비싸고 그럴듯한 걸 고르느라 시름한다.

나의 기념일, 친구들의 일상에 그런 짐을 지운다면 슬퍼…


3. 굳이 마음먹고 사용해야 하는 기프티콘 따위보다 사랑의 말이 더 근사하다.

카톡 친구리스트의 가장 윗 구좌를 차지한 덕분에 여태 없던 안부를 물어오는 이들. 전 직장의 선배가, 일로 만난 사이의 사람들이, 소식을 몰랐던 친구들이 다시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이어진다. ‘오빠, 우리 신입사원일 때 만났는데 나 이제 벌써 차장이야.’라는 감탄도, ‘몇 년 전에 만났을 때, 준비 중이라던 책은 잘 출간됐니?’ 기억을 더듬으며 긴 공백을 줄이는 물음도 생일이면 문득 나눌 수 있다. 메신저에 뜬 이름 만으로 순식간에, 들썩이는 십 대를 소환한 친구들까지. 하루 종일 폴짝폴짝 즐거웠다.


손가락을 움직여서 보내는 선물에는 낭만이 없다.

서울을 떠나 있을 때나 소담하고 질서 없는 소품점을 발견하게 될 때, 꼭 그냥 지나치치 않고 무어라도 골라 보는 습관은 버려지지 않는다. 포장이 구겨지지 않게 온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을 정한다.


이건 00에게 주자,

카드를 써야지.

스티커도 붙여 줘야지.

에세이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어느날 후배가 회사로 보내 온 책 선물! 안 그래도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던 책인지라 서로 또 특별했던 선물.


어린 딸 둘을 기르면서도 회사 일을 허술하게 하지 않는 동료에게는 온전한 휴식을 바라며 패턴이 화사한 파자마를, 피카소 전시를 보고 기념품 샵을 지나다 휴학생 인턴이 떠올라 미니어처를 샀다. 춘천에서만 판다는 토마토 맥주도, 전국 품절이라 했는데 지방의 독립서점에는 몇 개나 남아있던 2023 토끼 일력도 모두 그와 어울리는 친구들에게 안겨 주었다.


카카오톡 선물도 사실 일 년 내내 애용하는 중이다.


다음 주에 첫 출근이야, 했던 친구의 그 첫날 출근 시각에 맞춰 시작을 응원하는 꽃을, 데스크테리어를 위한 소품을 보내는 뿌듯한 순간. 작년의 오늘 날짜, 결혼한 친구에게는 퇴근길에 픽업할 케이크 쿠폰. 한숨을 자주 쉬던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에, 응원의 말과 함께 일주일치 진한 비타민. 모두 이 새롭고 간편한 문화 덕분이지.


하지만, 그 목적이 생일 축하라면 다른 때보다 내 마음이 얄팍하게 느껴져.


 이번 생일은 카톡 선물함이 가벼웠지만, 더 진하게 기뻤다. 가장 가까운 동료들이 마음을 모아, 나의 위시리스트 하나를 지워 주었다. 할머니가 되어도 나는 이 지갑을 들고 다닐게, 과장된 약속을 했다. 내 넘치는 사랑의 근원인 연인은 몇 년째 충실히 주얼리함을 채워 주고 있다. 시계, 반지, 목걸이 전부 문신처럼 매일 함께하니까 하루도 안 빼고 행복해질 수 있다! ‘선물을 거절한다니 거절이야!’라며 굳이 굳이 카톡으로 선물을 보내 준 말 안 듣는 친구들도 있다. 만나지 못할 사정과 거리가 있으므로 그 마음을 기꺼이 받았다.

 

메신저를 통해 전할 수 있는 마음의 가격대도 품목도 갈수록 다채롭지만, 꼭 맞춰 고민한 선물을 주고 싶다. 포장도 예쁘게 해 가지고 막, 여러 번 고쳐 쓴 카드도 넣고 이렇게 저렇게 써 줘, 구체적으로 용도를 주문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날에 사랑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근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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