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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Sep 17. 2022

바라나시에 도착해
맥주를 외상으로 마셨다.

인도 바라나시

나의 아이들이 이 행성에 대해 불평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조용히 해! 나도 여기 좀 전에 도착했어."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커트 보니것


바라나시 공항에 도착해 선불 택시를 탔다. 

"마담, 오늘 축제로 길이 막혀요."

축제? 믿지 않았다.

"마담, 숙소 예약했어요?"

아는 곳으로 데려가 수수료를 받으려는 걸 알았다.

기차역 근처에 왔을 때 또 물었다.

"마담, 여기 내려서 숙소를 구해보는 건 어때요?"

"노, 예약했어요."

딱 잘라 말하고 보니 창 밖에 사람들이 많기는 하다.

결국 택시에 3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하늘이 점점 껌껌해지는데. 

여기가 어딘지 또 숙소를 구하는 일이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해가 져 버리고 나니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다.

릭샤를 탔으나 내가 가려는 가트까지 진입 불가였다.

그래도 가 보려는 지 릭샤 할아버지는 골목으로 이동했다.

이미 8시가 다 되어가는 저녁.

길은 좁고 냄새나고 인적이 없어 음울했다. 

배낭을 뒤에 메고 무릎에 캐리어를 끼고 앉았다. 

짐이 많아 하나쯤 채가도 쫒을 길이 없을 테니.

제대로 앉지 못해 양 손잡이를 겨우 붙잡았다.

난 의자에서 너무 튀어나와 있었고, 외모도 눈에 틔였고, 릭샤도 느렸다. 

몹시 두려웠다. 


바라나시에서 불가능하다던 돌돌이 캐리어를 끌고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택시 안이 릭샤 위가 의지할만했다.

이슬람 축제로 하얀 모자와 하얀 옷을 걸진 사람들이 길을 꽉 메웠다.

여기저기에서 자잘한 불꽃들이 터졌고.

밤이라 똥과 오물과 가래침이 보이지 않았다.

왜소한 남자가 친절한 척 다가와 길을 안내했다.

분명 팁을 바라는 사람이다.

뻔히 알면서도 그를 따라가는 게 최선이었다.

골목은 캐리어를 끌 수 없는 길이라 들고 걸었다.

그를 따라가는 게 맞을까?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면 어쩌지?

어두운 골목에 들어설 때마다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꽤 오랫동안 그를 따라갔다. 

안 되겠다 싶어 아직 불이 켜진 가게에 들어가 물었다. "옴 레스트?" 

가게 아저씨가 알려주는 길이 날 안내하던 남자와 같았다.

못 미더워 좀 걷다가 또 다른 가게에 물었다.

안내 남자의 입에서 갑자기 다른 게스트 하우스 이름이 나왔다.

그렇다. 그는 비바로 안내해 수수료를 챙길 생각이었다.

난 가게마다 물어 옴 레스트를 찾았다. 

남자는 할 수 없이 옴 레스트로 안내했다.

숙소에 도착하자 팁을 요구했다.

난 10루피가 있어서 10루피를 주고 미안해했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나에게 무서운 악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달래다가 공항에서 비싸게 샀던 껌을 건넸다.

그의 눈이 바로 휘둥그레졌다.

내가 준 돈과 껌을 들고 다시 옴 레스트 주인에서 끈질기게 수수료를 요구했다.

옴 레스트는 이미 꽉 차 있었다.

옴에 짐을 맡기고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아 나서는데,

그때까지도 그는 수수료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날 데려가려고 했다고. 나에게서 팁을 받았다고.

주인에게 일렀다.

"이건 나에게 준 선물이잖아." 안내 맨이 말했다.

옴 주인은 단박에 그를 쫓아버렸다.

옴에서 다른 숙소를 안내했지만 다 찼거나 별로였다. 

나도 나서서 몇 곳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모든 방이 풀이거나 별로. 축제였으니까.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 가서 방을 셰어 해줄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다들 망설였다. 

내가 도둑 일지 모르니.

할 수 없이 옴에서 소개해준 방에 머물렀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숙소였다.

처음엔 그리 음침하더니 묵겠다고 맘먹으니 괜찮아 보였다.

샤워를 하는데 따듯한 물이 꽤 셌다.

아니 진정 3000원도 안 되는 방의 물발이란 말인가?

물론 커다란 꼽등이를 할아버지께 치워 달라고 부탁했지만.


맥주가 간절해졌다. 맥주를 찾아 나섰다. 

번화한 골목에는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일본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들은 맥주를 사려고 멀리 갔다고 했다. 거긴 이미 문을 닫았다고.

한국 학생으로 보이는 얼굴이 하얀 여자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맥주 제가 좀 나누어 줄까요? 근처 우리 집에서 가지고 올게요." 

난 큰돈밖에 없었다. 

"그럼 돈은 나중에 주세요."

어떻게 믿고 나에게 맥주를 주는 것일까?

"괜찮아요.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다음 날 그 여학생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철수에게 주었다. 

여학생이 자신을 못 만나면 철수에게 맡기라고 했으니까.


인도. 정말 놀랍다.

바라나시에서 어리둥절해 있던 나에게 ATM을 찾아주고, 

밤기차를 위해 짐을 맡아주고,

뻔뻔하게 샤워까지 하도록 도와주고, 

캐리어를 릭샤 타는 곳까지 날라다 준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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