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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놂작가 May 09. 2023

무해한 것들이 주는 위로

바야흐로 자극의 시대다.

모든 것이 풍족하여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고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앉은 자리에서 천리를 본다.

미디어는 온갖 자극적 소재가 난무하고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콘텐츠가 아니면 대중의 눈길은 머물지 않는다.

음식 취향 또한 이러한 시대와 결을 같이 하는지 요즘 가장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외식 메뉴는 마라탕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살롱에 앉아 삶과 사랑, 철학과 음악을 논하지 않으며 천천히 흘러가는 지난한 시간에 대한 존중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며 변화하는 가운데 더 강렬한 것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된 사람들에겐 뒤쳐지고 소외된 자들을 살필 여력이 없다.


나 역시 도파민 중독으로 강렬한 쾌감만을 좇으며 하루살이처럼 살던 날들이 있었지만 즐거움은 잠시 뿐, 매일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는 삶은 내가 꿈꾸던 이상이 아니었다.

그닥 가진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에 쥔 것을 내려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이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도, 손아귀에 들어온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하찮고 무거운 티아라를 쓰고 어딘지도 모를 방향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무너지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 바탕 태풍이 휩쓸고 간 이후 내게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간신히 서 있기도 버거운 몸뚱아리 뿐이었다.

애써 비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비워지는 것이 인생, 텅 빈 광야에 서서 온전한 나를 마주하게 되자 비로소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멋진 차를 타고 한강변을 달리는 것보다 오솔길을 걸으며 들꽃 구경하는 것에 설레고,

팬시한 파인다이닝에서 정찬을 즐기기보다 동네 단골 밥집에서 먹는 백반에 감동하고,

떠들썩한 파티나 클럽에 다닐 시간에 좋은 친구 한두 명과 소소한 수다 떠는 것을 즐기고,

경쟁에서 누군가와 싸워 이기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를 극복해 내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두는 사람이었다.


자극적인 성공의 향연보다 오늘 지나치고 있는 소소한 순간이 나를 행복하고 완전케 했다.

앞만 보고 걸어갈 때는 보이지 않던 길가에 핀 풀꽃과 어린 아이들의 웃음 소리, 커피숍 유리창에 와 닿는 햇빛과 희미하게 느껴지는 바람의 내음이 부서져 만신창이가 된 나를 일으켜 주었다.

하잘것 없이 미미한 존재들이라 여겼던 것들이 보내는 무해한 미소가 세상 그 어떤 전문적인 치료보다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시선이 달라지면서 나는 이제야 행복해졌다.

그동안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던 마음의 곳간이 차오르고 마셔도 목마르던 영혼이 서서히 해갈되고 있다.

오늘도 여전히 바쁘고 빠르고 경쟁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서 이리 저리 치여 지쳐갈 때 시끄러운 모임이나 세속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시도는 결국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꼴이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사진첩을 열어 강아지의 웃는 얼굴을 들여다 보거나 유튜브를 켜고 푸바오네 가족을 구경해 보자.

무해한 것들이 주는 위로가, 잠깐 멈춰서면 보이는 그 따스한 시선이 어느새 영혼에 스며들어 나를 달래고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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