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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 킴 Feb 28. 2024

서씨네 5자매 김장하는 날

나는 소금에 절여졌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준태야 더 이상 힘들어서 이모들이 김장 못 하겠다. 경민이형이랑 니 형이랑 와서 김장 도와줘라. 아빠도 미군부대 출근해야 해서 힘쓸 사람이 없다.”


종갓집 김치도 비비고 김치도 맛있는데, 우리 집은 수십년 동안 엄마를 포함한 서씨네 5자매, 아빠, 지금은 돌아가신 이모부까지 외할머니집에 모여 꾸역꾸역 김장을 했다.


곧 80을 바라보는 큰이모, 환갑이 수 년 지난 우리 엄마까지 대가족 김장은 생각보다 더 중노동이다. 정작 나는 예전만큼 김치를 자주 먹지 않는다. 염분도 많고, 꺼내서 잘라 먹기 귀찮다. 비타민이나 채소류가 필요하면 다듬은 야채나 시판용 샐러드를 먹는다.


김장 전날 차를 몰고 본가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충청남도 아산시입니다’ 푸른색 빛 바랜 지역 간판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해가 졌다.


“내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언능 밥 먹고 배추 다듬으러 가야 한다. 언능 자고 일어나”


“알았어.”


“할 게 엄청 많아. 밭에서 뽑아온 배추는 흙이 많아서 더러운 부분 잘라내고, 절여야 한다. 무채도 썰어야 하는데 남자들이 힘이 있어서 쭉쭉 잘 밀어.”


“알았어.”


(1) 김장 1일차

아침이 밝았다. 출근하는 습관이 있어서 6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엄마 방에 갔다.


“엄마 엄마 일어났어?”


두어 번 불러봤다. 엄마는 힘에 부쳤는지 도무지 일어나기가 힘이 드나 보다. 김장 재료 준비는 중노동이다. 우리 집은 김장 재료 준비만 일주일이 걸린다. 


나는 뒷 베란다로 가서 양재기에 쌀을 두 컵 받아 씻고 밥솥에 밥을 안쳤다. 냉장고를 열었는데, 마땅한 재료가 없다. 냉동실에 얼린 녹두전이 있길래, 냄비에 들기름 두르고 약불로 데웠다. 계란, 대파, 건새우를 꺼내서 계란국을 끓였다. 도무지 새우젓이 어디 있는지 못 찾았다. 국에 감칠맛이 안 나서 조금 심심하다. 엄마에게 맛있게 차려주고 싶은 욕심이 있는데, 맛이 안 살아난다. 김 몇 개와 김치냉장고에서 열무김치를 꺼내니 아침 상이 완성되었다.


상 차리는 뚝딱뚝딱 소리에 엄마가 잠에서 깼다.


“아니 이게 뭐여?”


“뭐긴 밥 차렸지. 언능 밥 먹고 가서 일 해야 한다며, 새우젓이 없어서 국이 맹숭맹숭 해”


김장을 하기 위해, 외할머니집으로 향한다. 외할머니집은 투명색 플라스틱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힌 작은 마당이 있다. 마당에는 배추가 차곡 차곡 쌓여있다. 

동네 시장 커다란 가판대를 가진 야채상인도 이렇게 많은 배추를 쌓아놓고 팔지 못할 양만큼이다. 생생정보통 가락시장에서 배추 한 트럭을 내리는 장면에서나 볼 법한 배추가 있다. 


내가 물었다. 


“엄마 배추 200포기라며.. 이건 300포기도 넘겠는걸..”


“어디 가서 300포기라고 하지마. 내일 속 넣으러 오는 아줌마들 다음부터 힘들어서 안 온다고 할지도 몰라.”


형이 왔다.

“와씨~ 이게 배추야~”

형은 카메라를 꺼내 바닥에 끝도 없인 쌓인 배추와 김장 재료들을 찰칵 찰칵 사진으로 찍었다.


경민이 형이 왔다.

“이모 저 왔어요. 아니 배추가 이게 뭐야.” 

나도 형도 경민이형도 웃음만 짓는다. 때때로 어처구니 없으면 웃음이 나지 않는가


엄마가 배추를 다듬는 요령을 알려준다.


“배추를 잡고 흙이나 더러운 부분이 있으면 밑동 짤라 내. 너무 많이 자르면 배추 절일 때 이파리가 다 떨어져 나가면 아까우니 적당히 짤라 내. 그리고 배추를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 마지막은 잘 절여지도록 배추 머리 부분에 칼집을 적당히 내”


“엄마 적당히가 뭐야? 이 정도 짤라 내라는거야? 머리는 이만큼 칼집 내라는 거야?”


“아이고 아까운 배춧잎 다 떨어지네. 적당히 짤라.” 날카로운 엄마의 목소리가 귀를 때린다.


배추를 적당히 잘라 내는 건 김장 첫 해로부터 3년이 지난 다음부터 깨우쳐다. 그래 적당히 잘라내면 된다. ‘적당히….’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배추를 자르는 건, 장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깨와 허리가 비명을 지른다. 바닥에 파란색 천막지붕 같은 재질에서 연신 배추만 잘라냈다. 

3년이 지난 후 우리는 테이블을 만들어서 서서 일하는 요령을 터득했다. 


배추를 잘라 내니, 이제는 소금에 절여야 한다. 키가 내 허리까지 닿을 듯한 빨간 다라이, 넓이가 어릴 때 따뜻한 물 받아 형과 나를 씻길 법한 크기의 빨간 초대형 고무 다라이, 그리고 끝도 없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자잘한 고무 다라이가 총 5개가 넘는다.


“아이고 다라이가 모자라면 어쩌지” 엄마는 걱정한다.


“준태야 형이랑 신성리 큰집 가서 큰아빠한테 김장 한다고 큰 다라이 하나 빌려와”


결국은 다라이를 하나 더 빌리러, 걸어서 5분 거리 큰 집에 가서 하나 더 빌려왔다.


외할머니집에는 광이 있다. 어둑한 광 옆 복도에 시멘트 벽돌에 받혀 간수 뺀 천일염 20kg 6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온다.


배추를 절이는 과정은 물과 소금의 전쟁이다. 


“이제 배추 절인 건데 물이 많이 필요해. 저기 제일 큰 다라이 꺼내다가 물 받고 소금 반 포대 넣어. 경민아 넌 배추 차곡 차곡 최대한 많이 들어가게 틈 넘이 집어 넣어.”


천일염을 녹이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때면, 귀가 얼얼하다.


다라이에 물을 받으면서, 소금을 녹일 때마다 물이 튀어 운동화가 젖어 간다. 젖은 운동화 속에 양말에 물이 들어왔다. 발가락에 조금씩 감각이 무뎌진다. 뭐 동상은 걸리지 않겠지 하면서 일한다. 멋 낸다고 입고온 조거 팬츠도 다 같이 젖었다. 찬물에 닿는 손끝 마디마디는 작은 바늘로 가끔 찔리는 느낌이 난다. 다리는 젖은 바지가 스칠 때마다 살갗이 아린 느낌이 났다. 김치가 뭐라고 이렇게 힘든건가.


“언니 애들 밥 좀 먹고 하라고 해. 뭐 애들 밥도 안 먹이고 일만 시켜.”


“아니 이 년아 바빠 죽겠는데, 밥 타령하지 말고 언능 끝내야 돼. 좀 있으면 해 떨어져.”


“언니는 언니 아들 밥도 안 먹이고 일만 시키냐고! 얘들아 이 것 좀 먹어”

이모는 입 속에 넣어주며 서울에서 사온 비싼 빵이라고 한다. 난 밥보다 빨리 일이 끝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지만, 서씨네 5자매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모든 게 다정한 대화 일 뿐이다. 다른 집 사람들은 우리 집 목소리만 보면 자매들이 싸우는 것 같지만 그냥 일상 대화이다. 막내이모는 우리 언니들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눈물이 난다고 한다.


배추를 다 절이니, 마당에 보이는 노란색 컨테이너 박스에 무가 가득 보인다. 배추 1포기에 무 반 개 들어간다. 배추가 어림잡아 300포기라고 하면, 무가 150개다. 

어느 새 하루는 땅거미를 향해 간다.


남자 셋이서 본격적으로 무채를 썬다. 무채 써는 게 힘든 일이냐 우습게 말할 수 있지만, 무 한 개를 들면 마치 5kg 아령을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다. 손잡이 없는 아령을 들고 날카로운 채칼에 손을 휘휘 춤춘다고 생각하면 손가락이 베일까 아찔하다. 얇은 실 면장갑을 끼고 목장갑을 끼고 열심히 위 아래 위 아래 반복한다.


“준태야 쉬었다 해. 힘들지? 김장이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여. 그래도 한 해 반찬이 되니 얼마나 든든하냐” 큰이모가 껄껄 웃으면서 말한다.


무채를 썰고 나니, 해가 졌다. 김장 1일차가 끝났다. 절인 배추와 함께 나도 푹 절여졌다. 


코르테즈 운동화 사이로 물이 들어와 발은 꽁꽁 얼었다. 내일 이걸 다시 신어야 하나 고민이다. 낮부터 젖은 바지는 얼어붙어 다시 장딴지 살갗을 에인다. 

미희 이모가 끓여준 따뜻한 국에 대충 밥 말아 넘긴다. 고단한지 별로 입맛도 없다. 집에 와서 따뜻한 물을 연신 온 몸에 뿌린다. 연신 따뜻한 물을 뿌려도 몸속에 남은 한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는다. 이불 깔고 누운 것 같은데 어떻게 잠든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 김장 2일차


윙- 윙- 윙윙윙-- 진동 알림이 울린다. 새벽 4시 반이다. 어둠이 상당히 짙다. 

동네 사람 모두 잠든 새벽이다. 엄마는 어제 밤에 쑤어 놓은 찹쌀풀을 트렁크에 실으라고 재촉한다.


“다섯 시 부터 절여 놓은 배추 꺼내서 물에 빨라야 돼. 시간이 모자르다. 언능 언능 해.”


속 넣어주러 오는 동네 아줌마들은 9시부터 오신다고 한다. 그 전에 여섯 개의 대형 고무 다라이에서 배추를 꺼내서 소금기를 빨아야 한다.


배추를 씻는 것도 요령이 필요하다. 엄마가 진두지휘 한다. 이번에는 플라스틱 다라이가 나왔다. 다라이는 대체 무한대인가.


“준태야 다라이 여기다가 놓고, 수도 가서 물 틀어와라. 소금기를 빨아 낼려면 물이 많이 필요해. 이빠이 받아.”


다라이는 1번부터 3번까지 있다. 1번 다라이는 가장 크다. 소금물에 절여진 배추를 꺼내서 1차로 씻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크다. 2번 다라이와 3번 다라이를 거쳐 소금기를 빨아낸 배추는 물기를 빼기 위해 배추를 차곡 차곡 김장 비닐 위에 쌓는다.


“어우 혜자야 배추가 짠거 같아.” 둘 째 이모가 배추를 뜯어 먹으면서 짜다고 한다.

“뭐 짜다고.. 짜면 안 되는데… 소금이 뭉쳐서 그럴 수도 있어. 언니 다른 배추들이랑 섞이면 간 맞을거야.”


짜다, 배추가 쓰다. 배춧잎이 달큰하다. 잘 절여졌다. 다양한 맛 평가가 오고 간다. 이 때가 김장에서 제일 고통의 순간이다.

해가 뜨지 않아 물 얼음장 같이 차갑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를 다라이에서 건질 때마다 바지와 운동화에 소금물을 뒤집어 쓴다. 바닥에 있는 배추를 꺼내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다시 필 때마다 아이고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힘든 작업을 수 십년동안 어른들만 했다니 속마음이 죄송하다. 이 순간만큼 제일 고통스러워서 김치는 사서 먹고 싶다. 


“아니 절임배추 사서 하면 될 걸 왜 이렇게 힘들게 해” 내가 말했나 사촌형이 말했나.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물에 푹 절은 무거운 배추를 다라이에서 꺼내는게 짜증나고 힘들어서 한 투정이다.


“절인 배추 사서 하면 냄새 난다고”


“무슨 냄새가 난다는거야?”


“있어 그런 냄새가” 절임배추 사자고 했다 욕만 먹는다.


해가 뜨고 모든 배추를 건져냈다. 9시가 되었다. 윗 층에 사는 쌍둥이 이모가 오셨다. 엄마의 친구이자 내가 기저귀 차고 코 흘리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어이구~ 우리 준태 다 컸네. 엄마 도와줄 줄도 알고 말여.”


엄마가 놀 시간 없다고 또 타박한다.


“자 이제 속 버무려. 경민이형이랑 양쪽에서 바닥부터 뒤집으면서 고춧가루가 무채에서 나온 맛있는 물을 머금어야 해.”


키가 큰 나랑 경민이형은 둘이서 바닥에 깔은 투명한 초대형 김장 비닐 앞에 주저 앉는다. 어제 썰어 놓은 무채를 쏟아내고, 고춧가루 5봉지, 간 마늘, 간 무, 어슷하게 썰은 갓과 대파, 생새우, 새우젓, 찹쌀풀, 마지막으로 뉴슈가 한 봉지 섞는다.


버무린다. 버무려… 고춧가루가 뭉치지 말라고 이번에는 동네 아줌마들까지 와서 잔소리한다. 정신이 혼미하다. 잠도 몇 시간 못 잤는데, 빨간 김치양념을 보고 있자니 뱃속에서 신물이 올라온다. 아침부터 먹은게 없으니 입은 쓰다. 


겨우 겨우 버무리는 작업이 끝났다. 김치 양념 속이 온 몸을 뒤엉켰다.


김치 속을 넣는 과정이 시작됐다. 커다란 접이식 테이블 2개를 설치했다. 테이블 위에 다시 김장 비닐을 깔고 김치 양념 속을 부어준다. 그리고 아줌마들 옆에 의자를 놓은 다음 의자 위에 소쿠리를 놓고 물기 뺀 배추를 놓아드린다. 


“준태야.” “준태야.”

모두 준태만 부른다. 원태는 잘 부르지 않는다. 아줌마들도 막내아들 준태가 만만한가 보다.

내 나이 40 넘어서도 여기서는 애 취급이다. 아줌마들 모두 동네에서 내가 코 닦아 주고 밥 차려주던 아줌마들이다. 애기 취급이 때론 나쁘지 않다. 그냥 여기서 만큼은 내 마음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배추 여기 가져와라.” 배추 여기다 놓아라.” “양념 속 좀 퍼서 여기다가 놔줘라.”

심리적 안정감은 잔소리에 금새 또 잊혀진다.  그만 좀 시키세요.


대략 250포기, 300포기인지 알 수도 없는 김장이 끝났다. 5자매는 각자 한 통이라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 통을 들이민다.


각자 김치를 공평하게 나눠주기 위해서 눈치도 봐야 한다. 김치 통은 이모 한 명당 10통은 최소이다. 이모들은 각자 식구들이 있다. 막내 이모는 같이 일 하는 공인중개사 사무실이나 사돈댁에도 나눠준다. 큰 이모는 외숙모를 사별한 둘째 외삼촌에게 김치를 줘야 한다고 소리 친다. 사촌형 보고 와서 가져가라고 하면 될 걸 굳이 80이 다 되가는 이모는 비닐 포장해서 택배로 둘째 외삼촌에게 보내준다.


둘째 이모는 가장 많은 통을 들이 댄다. 왜 그런지 알기 때문에 굳이 더 이상 말은 하지 않는다. 사촌형은 1급 지체 장애가 있다. 사촌형은 반찬으로 김치만 먹는다. 우리 엄마는 언니 통 좀 그만 들이대 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김장 김치가 떨어질 4월 즈음 김치가 모자르다 하면 서씨네 자매는 김치냉장고에서 통을 꺼내서 나눠준다.


김장을 마치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한다. 다듬은 배추 껍질, 무 껍질, 대파 껍질 쓰레기는 검은색 대형 쓰레기 봉투로 8개 나온다. 물에 젖어서 보는 것과 다르게 상당히 무겁다.

 “준태야 형이랑 이거 트렁크에 싣고 신성리 논에다가 버리고 와라. 논에다 뿌리고 와. 엄마가 큰엄마 한테 이야기 해놓을테니 가서 버려.”


담장 밑에 물 묻어 숨이 빠진 야채 쓰레기는 처량맞다. 1박 2일동안 소금 물에 절여져 축 처진 내 모습 같다.


김증은 끝났다. 집에 가야지. 차 트렁크에 김치 4통을 실었다. 겉절이 1통, 배추 속 1통, 양념 속 1통까지 알차게 포장해왔다.


1주일이 지났다. 어느 새 김치는 숨이 죽었다. 배추는 감칠맛 도는 달큰 짭짤한 김치 양념 맛이 들었다. 김치 한 포기를 스테인리스 양재기에 꺼내 받혀 도마에 올렸다. 


김치 자른 도마에 남은 김치 국물 한 방울도 버릴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만들어진 김치인지 내가 김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도마에 있는 김치 양념 국물까지 칼로 쓱쓱 긁어 그릇에 옮겨 담았다.


김장 담글 때는 그렇게도 입이 쓰더니, 꺼내 먹은 김치의 시원한 맛은 아무튼 감동이다.


첫 해 김장은 엄마에게 잔소리 듣고, 일 배우느냐 곤혹을 치렀다. 3년 지나고 나와 사촌 경민이 형이 김장 지휘를 한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소금 잡는 일은 내가 한다. 배추 절이기는 가장 중요한다. 배추를 어떻게 절이느냐 따라 1년 김치 맛이 결정된다. 조금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서씨네 5자매는 김장 최전선에서 살짝 물러났다. 그래도 잔소리 한다. 잔소리는 어떻게 대응하는지 알고 있다. 그저 씩 웃는다. 이모와 엄마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한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너희들은 김장을 하겠냐고. 며느리들 일 시켜먹을 수도 없다고 말이다. 진담이다 라고 생각한다.

김장은 아마 몇 십년이나 이어갈 수 있는 문화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김치를 만드는 노동은 정말 고된 노동이다. 고된 한국의 노동은 공장으로 넘어가서 상업화 되기 아주 좋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김치 문화는 각자 가진 집집마다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각자 집마다 살아 숨쉬는 소울 푸드 같은 존재이다. 엄마 김치맛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나는 엄마에게 걱정말라고 했다. 내가 계속 담궈 줄게. 내가 만든 김치는 자부심 넘치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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