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 킴 Feb 28. 2024

책상의 크기와 무덤의 크기


2016년 12월 셋째 주 겨울치곤 온화했다. 나는 퇴사한 회사에 2년전 재입사했다. 


“J야. 대표이사한테 보고한다? 총 예상 매출이 9억이라고?”

사업 본부장 L이사는 살짝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대표이사와 임원들은 종무식을 겸한 등산 중이다. 연말 평가를 앞두고 다른 임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형 사업 수주 건을 자랑하고 싶은 눈치 같다. 


“아직 A은행 측에서 정확히 얼마에 계약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팀장과 사무실에 남아 A은행과 최종 계약 협상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주말도 반납하고 지난한 영업활동을 계속 진행해 왔다. 기필코 따내야 한다. 


9억부터 시작한 금액은 깎고 깎였다. A은행 주요 경영자 1,800여명을 위한 영상 콘텐츠 제공 사업은 계약금 5억으로 최종 협상되었다. 


“고객에게 바락바락 우기다 1원도 못 건지는 수가 있다. 나중에 금액 올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팀장은 고생했다고 응원해 주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9억이라고 보고했는데 5억이라고? 내가 허위보고한 꼴이 됐잖냐. 더 벌어올 생각 해” L이사의 타박을 들었다. 내가 9억이라고 언제 확정했냐. 지긋지긋한 영업사원…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재입사했지. 

미쳤다


2017년 1월 첫째 주 추운 겨울은 깊어간다. 

복합기는 웅웅 소리와 함께 고속으로 A4 용지 계약서 종이 2부를 토해냈다. 계약서에는 ‘5억(부가세 별도)’ 금액이 찍혀있다. 나는 계약서를 들고 회사 법무팀을 찾아가 인감 날인을 요청했다. 계약서 갑과 을의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을에 날인 된 계약서를 받는다. 소원이 있다면 나도 갑이 되보고 싶다. 행여나 계약서가 구겨질세라 투명 L자 클리어 화일에 조심스레 모셨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계약서 날인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생글생글한 미소를 지으며 A은행 담당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깨를 한껏 움츠린 자세로 찾아갔다. 


“네. 고생 많으셨어요. 그런데 저 이제 인사발령 났어요. 다른 부서로 갑니다.”

망했다. 통상 사업을 수주하고 바로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 제일 최악이다. 은행은 순환 보직이라서 연말에 갑자기 발령이 난다. 


회사에 돌아왔다. 2017년 1월 새해 인사 발령 공고가 떴다. 나와 함께 이 사업을 준비한 팀장님은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걱정이 든다. 입술이 겨울철 바싹 마른 고목나무 껍질처럼 꺼끌꺼끌하다. 이제 혼자만의 싸움이다. 


2017년 1월 마지막주 날씨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 하는 신임 담당자 K과장과 L차장에게 2주간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A은행 인재개발 원장실 가죽 소파 홀로 앉아 있었다. 내 앞에는 눈에 불을 켜고 바라보는 A은행 사람들이 있었다. 한겨울이지만 나는 와이셔츠 겨드랑이부터 젖는 느낌이 들었다.

인재개발원장 앞에서 콘텐츠를 시현하고 모바일 앱 사용법을 상세히 말씀드렸다.


“내일부터 쓸 수 있게 준비해봐요.” 원장의 한 마디에 일사천리로 사업은 진행됐다. 다행이었다. 원장에게는 1년 전부터 사전 영업을 진행했다. 담당자들보다 사업 이해도가 높았다. 

회사에 돌아와 A은행 전용 웹사이트를 점검하고 모바일 앱이 구현되는지 확인했다.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저녁 7시 40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시동을 걸고 집으로 향했다.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사거리에서 한남대교를 타기 위해 신사동 쪽으로 향했다. 갑자기 찌를듯한 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직장인이면 대부분 퇴

근하는 8시 20분 L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아니 지금 뭐하는 겁니까? 내가 원장님한테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나요?”

거친 말투에 온갖 짜증, 원망, 증오가 섞인 말투였다. 


“무슨 말씀이실까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아 됐고.. 전화 끊은 다음 앱에 들어가보소.” 


전화를 끊고 A은행을 위해 만든 안드로이드 전용 앱을 켰다. A은행 앱에 경쟁사 B은행 로고와 디자인이 입혀져 있었다. 내가 죽어야지. 죽어야 겠다. 


사건의 전말은 내가 퇴근하는 사이 앱 개발자가 저녁에 테스트 한다고 이 것 저 것 개발 소스를 건드렸다. 검수도 안 하고 그냥 집에 가버렸다. 바로 그 날 저녁 인재개발원장 상무가 그 시간에 앱을 켰다. 

다음날 오전 8시까지 A은행 담당자 사무실 앞에 앉아 있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A은행 직원도 아닌데, 누구보다 아침 일찍 A은행 앞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벌 받는 아이처럼 죄스러운 표정을 짓고 담당자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K과장은 출근을 했다. 아침에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왔다고 한다. 머리 카락은 샤워를 했는지 물기가 살짝 있었으며, 표정은 상쾌해 보였다. 난 경위서를 제출하고 혼났다. 나는 내가 너무 초라하다. 손이 벌벌 떨렸다. 


2017년 2월 겨울의 끝이 다가 온다. 

회사 건물 5층 야외 정원에 나갔다. 눈이 베일 것처럼 시린 겨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늘에는 수 많은 날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진짜 날벌레가 아니다. 내 안구에 이물질이 끼었다. 안구 질환 중 안저에 출혈이 발생한 비문증이라고 한다. 50세 전후로 발생한다고 한다. 난 이제 겨우 36살인데 말이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았다. 오른쪽 입술 끝으로부터 1.5cm 떨어진 곳에 딱딱한 물집이 잡힌다. 볼록하게 부어 올랐다. 안면에 뭐가 만져진다면 일단 겁부터 난다. 퇴근 길 회사 근처 선릉역 8번출구 Y 피부과에 찾아갔다. 


“피부층에 염증이 생긴 것 같습니다. 항생제 처방해드릴테니 좀 드세요.” 의사가 말했다.

한 달 내내 오른쪽 입술 끝이 갈라져 있었다. 갈라진 상처 틈 사이로 세균이 들어갔다. 얼굴 피부 밑으로 부어 올라 염증이 발생했다. 


토요일 저녁 염증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피부 사이로 상한 크림치즈 색깔 고름이 보인다. 거울을 보고 나는 내 손으로 고름을 짜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 얼굴을 쥐어 짜내면서 너무 아파 울면서 화장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하얀색 고름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목구멍에서 삐져 나오는 소리를 모두 삼키고 계속 짜냈다. 마침내 투명한 빛깔의 빨간 피가 보였다. 


2017년 3월 봄이 왔다.

더 이상 못 해먹겠다. 나는 인사팀 L과장에게 병가 상담을 했다. L과장은 차라리 육아휴직을 권했다. 나라에서 육아휴직 수당도 받을 수 있고, 병가보다 더 장기적으로 쉴 수 있기 때문에 낫지 않겠냐 라는 권유였다. 나는 회사에 3개월만 육아 휴직을 쓰기로 했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간다는 사회적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을 때였다. 조금 눈치가 보였다. 개의치 않기로 마음 먹었다.


3개월간 무일푼으로 아내와 나 그리고 두 아들이 살아가야 한다. 생활비가 모자르기 때문에 만원 하나 허투로 쓰지 않고 아끼면서 살았다. 첫 째와 둘 째가 눈 앞에서 커 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첫 째 어린이집을 하원 후 놀이터에 앉아 있을 때마다 동네 아줌마들이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내에게 들은 바 나는 백수로 소문났다 


2017년 6월 더위가 시작되었다.

복직을 했다. 육아 휴직 후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부서가 변경되었다. 여전히 똑같은 영업 업무를 한다.


2017년 12월 다시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다.

나는 퇴사 면담을 진행 중이다. 내 앞에는 J 인사팀장이 앉아 있다.

“너는 회사 다니다가 퇴사하고, 재입사 한다음에 육아휴직 하고 또 퇴사한다고. 너 회사가 장난이냐?” 인사팀장은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살짝 지었다. 오히려 내 조용한 미소는 인사팀장을 더욱 화나게 한듯하다.

“저는 제가 알아서 살겠습니다.” 문을 닫고 나왔다. 


나는 정말 일을 잘 하고 싶었다.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고 싶었다. 첫 회사에서 내가 적어도 임원이 되겠다는 큰 마음을 먹었다. 신입사원 시절 선배는 나에게 전설의 사원이라는 칭찬을 해주었다. 우쭐했다. 그 칭찬은 중독성이 강렬했다. 그 마음은 나를 점점 혹독하게 몰아 넣었다. 


나는 늘 내 건강이 해치는 수준까지 가서야 내가 가는 길이 잘 못 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늘 한계의 문턱으로 데리고 가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늘 내가 나를 잡아먹었다. 

마지막 퇴사 하기 전에 회사에서 내가 차지 하고 앉아 있는 책상 크기와 내가 죽어서 들어갈 무덤의 크기를 비교해보았다. 큰 차이가 없다. 회사에서 죽을 것도 아닌데, 회사에 목숨 걸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깨달았다. 그만할 줄 아는 용기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입 돌아간 사람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