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안을 제대로 못 쓰는 꿈을 꾸었다.
내용도 형편없는 데다 양도 한 줄밖에 안 돼,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깼다.
실제로 팀장은 '이 기획안으론 컴펌 못 받아요'라고 했다.
'이 따위 걸 기획안이라고 쓴 거냐'라는 말을 최대한 돌려서 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 바닥 소문 빠른 거 생각하면 아마 나를 아는 작가 중 몇몇은 내가 이 팀에서 죽을 쑤다 못해 똥을 싸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당분간 이 팀을 그만 둘 생각이 없다.
여러 가지 감정이 들끓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감정은 억울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때의 수모와 굴욕을 기억하는데 이대로 그만둔다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로, 누구 좋으라고 그만 두란 말이냐. 난 절대로 내 발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피디 일정 때문에 중간 한 주의 시간 적 여유가 생긴 건 참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꾸 이렇게 부담스럽고 두려운 감정이 드는 게 걱정된다.
자꾸 신경을 쓰면 쓸수록, 어렵고 긴장이 되면 될수록 일은 그르치게 돼 있으니까.
내 페이스를 찾자.
모니터를 열심히 하고 할 수 있으면 필사도 해 보자.
이번 편만 하고 그만둘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팀을, 아이템을 대하자.
이렇게 최면을 걸며 하루를 마감한다.
- 이게 어떻게 25년 차 작가의 일기란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