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을 넘어 나를 기록하는 독서의 힘

by 곽준원

심리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독서치료'라는 개념을 사용해 왔습니다. 말 그대로 책을 통한 치유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사실은 그 이야기 위에 나의 감정, 나의 경험을 투사합니다. 그래서 어떤 문장을 읽을 때 이유 없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평소에는 지나치던 표현에 유독 마음이 끌릴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책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감정 라벨링입니다. 막연하게 불편했던 마음을 '이건 불안이구나. 이건 서운함이구나. 이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구나'하고 언어로 변환하는 순간 감정의 강도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리가 되기 시작합니다.


책이 강력한 도구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책 속 문장은 이미 잘 다듬어진 언어이고, 우리는 그 언어를 빌려서 '아.. 나도 이런 마음이었구나'하고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게 됩니다.


의미 없는 문장이라도 이상하게 울컥했던 날이 있다

어려운 실용서적 보다 에세이와 산문집을 읽다 보면 그냥 무심코 넘기려던 페이지에서 잠시 멈추는 경우가 생깁니다. 몇 해 전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었던 책의 내용이 그랬습니다.


당시 저는 꽤 지쳐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 개발 일정에 치이고, 집에 돌아오면 해야 할 노후를 준비하려고 여러 가지 부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실용 서적도 제법 많이 읽으면서 서평도 작성하고, 유튜브도 해보려고 대본도 작성하고, 촬영에 편집까지 직접 다 작업했습니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막상 쉬는 법을 몰라 지칠 때까지 일만 하다가 쓰러져서 잠드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날도 큰 기대 없이 가방에 있던 에세이를 펼쳤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떤 문장에서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그저 '요즘 좀 바빠'라는 말 뒤에 숨어 있었다"


별것 아닌 문장처럼 보였는데 읽는 순간 다음 문장으로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눈을 떼지 못한 채 몇 번을 다시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도 늘 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해도 "요즘 많이 바빠요. 괜찮아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죠 뭐"라며 안심을 시켜드리곤 했죠.


정작 속으로는 힘들다고 말하고 싶으면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려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지하철 창밖으로 스쳐가는 어두운 창을 보다가 현실을 자각했습니다.


'아.. 나도 이 작가처럼 똑같이 힘들다는 말을 다른 말로 감추고 있었구나.'


책 속 작가의 문장이었지만 그 순간 그 문장은 온전히 저의 마음 요약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그 문장을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 문장을 적은 아래 칸에 제가 느낀 점을 다시 적었습니다.


"나도 그렇다. 요즘 나는 바쁘다는 말로 내 마음을 얼버무리고 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을 쓰고 나니 묘하게 가슴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던 감정을 책 속 문장을 빌려 겨우 한 번 꺼내본 밤이었습니다.


지금 내 손이 향하는 책이 말해주는 것들

우리가 책을 고르는 순간에도 이미 감정의 힌트가 담겨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인문학, 심리학, 뇌과학, 에세이, 산문집, 자기 계발, 경제경영 등등. 물론 저는 인문학과 심리학을 주로 많이 읽었지만, 최근 어려운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싶으면 에세이를 한 두권 읽곤 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불투명하고 막막함이 밀려올 때는 자연스럽게 이론서와 정리된 책에 손이 갔습니다. 쉽게 읽는 심리학, 자기 계발서와 같이 '이럴 때 이렇게 생각해라' 식의 구조화된 문자들이 불안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하염없이 허전하고 사람은 분명 곁에 있는데도 혼자인 느낌이 강해질 때는 클래식 음악처럼 흘러가는 문장이 많은 에세이나 산문집을 찾았습니다. 저자의 솔직한 고백과 누군가의 아주 사소한 하루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과 더불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쏟아내 버리면 뭔가 피해를 주는 것 같은 죄책감도 들어서인지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책 속 인물과 저자의 통찰을 통해 '대리 위로'를 받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진짜 어떤 시기에는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줄거리도, 이론도, 조언도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그림이 많은 책, 짧은 단상과 사진이 섞인 책, 한 페이지에 한 문장만 적힌 책을 펼쳤습니다. <곰돌이 푸, 행복은 매일 있어>와 같은 책입니다.


페이지를 넘기고 있으니까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를 겨우 위로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책은 늘 제 감정 옆에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불안을 느낄 때는 심리학과 뇌과학으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외로울 때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과 닮은 책들이, 지쳤을 때는 그냥 쉬고 싶은 마음에 짧은 글귀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다가 어디선가 마음이 멈추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이 문장이 왜 이렇게 마음을 울릴까?'라고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책을 읽는 권수로 판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빨리 읽고, 독후감을 써야 1년에 몇 권을 읽는 사람이라는 평가 지수에 더욱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밑줄을 그어도 나중에 보면 왜 밑줄을 그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문장을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조금 방식을 바꾸어 보기로 했습니다. 읽는 권수에 집착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문장을 음미하며 읽기로 태도를 바꿨습니다. 마음이 멈추는 문장을 읽으면 거기에서 책의 빈 공란에 저의 생각을 쓰거나 아예 책을 덮고 생각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나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라는 문장을 만나면 예전 같았으면 그냥 '아프다'라고 느끼고 넘겼을 문장이었는데, 그날은 책을 덮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왜 이런 문장에서 멈췄을지 질문했습니다.


생각을 조금 해보니까 괜찮지 않은 날에도 괜찮다고 말하는 걸 습관처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데, 상대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음 마음이 더 큰 사람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짧은 문장에서 얻은 여러 자기 이해는 그냥 좋은 문장이 아니라 나를 설명해 주는 문장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독서치료에서 말하는 투사와 통찰의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정 일기와 더불어 독서 기록을 쓰기

<이상심리학>에서는 그날의 역기능적 일일기록표를 작성해서 자신의 인지 오류를 발견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상황을 적고, 그때 느꼈던 감정, 자동적으로 나타난 생각, 감정의 강도를 점수로 표시하고 행동과 실제 결과가 어땠는지 적어보는 연습으로 인지 오류를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석으로 매일 쓰면 참 좋겠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매번 그렇게 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올라온 상황이 지나고 다시 생각하려면 기억 왜곡이 발생해서 그 순간 어떤 자동적 사고가 나타났는지 메모를 하지 않으면 정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독서를 하면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바로 생각을 적는 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혼자 있는 게 외로운 게 아니라, 함께 있어도 외로운 감정이 더 괴로웠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연결되지 못한 채로 곁에 있는 관계에서 느끼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립감'이라고 저의 생각을 함께 적어 놓는 것이죠.


이렇게 쓰고 나면 꼭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아도 마음이 어땠는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유대감을 느끼고 싶다', '위로받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고 있구나'와 같이 책 속 문장은 감정을 꺼내기 어려운 날에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게 먼저 말을 걸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독서와 글쓰기에 매료되면 같이 취미를 지닌 사람들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의 일환으로 독서 모임에 꾸준히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저는 독서 모임에 나가면서도 의견을 말하며 굉장히 불안했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저의 경험에 비춰 책을 평가하고 내용에서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설명하는 자리에서 행여나 듣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낄까 봐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책이 어떠했는지 묻는 질문에도 타인의 시선에 주눅 들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 있게 발표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떤 문장이 마음에 들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말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워낙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향이었지만, 독서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끝까지 저의 말을 잘 경청해 주었고, 길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의 발언이 끝나면 참가자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흡사 집단 상담의 분위기와 유사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안전하네'를 느끼면 그다음부터는 여러 사람이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놓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 감정을 나누는 건 거창한 고백이 아니라 이런 문장에 공감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구나'라는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


책은 우리 각자의 상처를 조금 덜 적나라한 언어로 바꾸어 줍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에도 조금 더 안전한 재료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는 지식뿐만 아니라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

어린 시절에 독서는 그저 무협지와 삼국지만 읽으며 재미를 추구했습니다. 취미가 독서인 사람은 마치 외계인이라 생각했죠. 그 어려운 책을 어떻게 매일 읽을 수가 있으며, 그것을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저에게는 책은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도구, 전공을 배우기 위한 지식 창고였습니다.


그러나 8년 전부터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조금씩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장면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어느 문장에서 눈물이 날 정도록 공감이 되었는지, 어디에서 앎의 기쁨을 느꼈는지 말이죠.


지식을 얼마나 얻었는지보다, 내 감정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책장은 조금씩 달리 보였습니다. 책들은 내 머리를 채워주는 지식이라기보다, 내 마음을 여러 번 연습시켜 주는 도구라고 생각의 전환이 발생했습니다.


신나게 공감해 본 감정, 도저히 이해 못 하겠던 감정, 부러웠던 감정, 불편했던 감정. 그 모든 감정들을 책이라는 안전한 공간 안에서 먼저 연습해 본 덕분에 현실의 장면에서도 대인관계는 훨씬 견고해졌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독서를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에세이를 한 권 구입해서 읽어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유독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책의 빈 공간에 적어보는 겁니다.


"이 문장을 읽을 때, 내 마음은 ___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요즘 나는 ___ 같은 상황 속에 있어서다"


이러한 두 줄만 적어도 책 속 문장은 더 이상 작가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건 분명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될 겁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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