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서사에서 찾아낸 내 삶의 '잃어버린 정체성'

by 곽준원

심리학자 댄 맥애덤스는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할 때 머릿속에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을 서사 정체성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단순히 '나 이런 사람입니다'라고만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런 일을 겪었고, 이렇게 느꼈고, 그래서 이렇게 살아가기로 결심했다'처럼 이야기 형태로 자신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직업, 이름, 관계를 기반으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체성은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과거의 사건, 현재의 선택, 미래에 어떤 기대를 하느냐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이게 나의 삶'이라는 감각이 생깁니다. 여기서 독서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책 속에서 타인의 삶, 감정, 선택을 따라가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동시에 내 삶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겹쳐 보기를 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 인물의 감정과 행동을 따라가고 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나의 마음과 삶을 다시 재구성하는 과정은 바로 서사 정체성 이론에서 말하는 타인의 서사를 빌려 내 서사를 정리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세이가 주는 선물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내 이야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어떤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멈춰서는 순간이 있습니다. 삶이 지쳐 있을 무렵 읽고 있던 에세이에서 어떤 한 꼭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그 침묵이 결국 내 마음을 망가뜨렸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문장 자체는 에세이를 쓴 작가의 고백이었지만 읽는 순간 이상하게 찝찝함이 느껴져서 책을 덮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그 찝찝함을 마주할 용기를 낼 수 없어서 회피한 모양입니다.


바로 이런 장면이 서사 정체성 이론에서 말하는 타인의 서사를 통해 자기 서사를 재구성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손으로 쓰인 문장 덕분에 내 삶의 어느 장면을 비로소 마주하고, 회피하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되니까요.


30대에 저는 번아웃의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퇴근하면 하루 종일 아이를 혼자 본 아내가 안쓰러워 아이를 품에 안고 잠들 때까지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당연히 피곤합니다. 출근하면 제대로 수면하지 못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늦게까지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성과를 빨리 내어서 경제적으로 더 괜찮은 조건으로 만들어놓아야 책임감 있는 가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피드백도 '너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저는 제 상태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에휴. 이 정도 피곤은 누구나 견디고 살겠지'라며 스스로에게 늘 버티는 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과거를 회상하게 만든 건 에세이의 한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지친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예민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출근길에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내가 많이 망가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장을 읽는 순간, 책을 덮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습니다. 지친 게 아니라 그냥 예민한 줄 알았다는 문장이 저의 30대 시절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항상 예민한 사람이라는 주변의 피드백에 지친 게 아니라 예민하다고 스스로 포장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작가의 문장을 마주하면서 저의 서사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30대에는 단지 예민함만 있었던 건 아니다. 꽤 오래된 '무기력'을 버티고 있었던 사람이었구나.'


지나온 삶을 설명하는 문장이 바뀌니까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왜 이 정도도 못 버티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나는 20년 가까운 직장 생활을 하면서 버티고 있었구나. 이제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줘야 할 때인 것 같다'라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읽은 타인의 서사가 제가 살아온 삶의 해석을 바꾸어 준 경험이었습니다.


닮고 싶은 인물과 닮고 싶지 않은 인물 사이에서

중학교 시절에 읽었던 무협지인 '소설 영웅문'에서는 닮고 싶은 주인공과 그렇지 않은 주인공이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2부의 주인공인 양과는 세상의 규율에 반기를 들며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이 '사부'라도 상관없다는 발언으로 공분을 삽니다. 3부의 주인공인 장무기는 여러 여인에게 마음이 오가며 착함을 넘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양과'라는 인물을 닮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규율과 규칙은 내가 판단하기에 타인에게 해를 입힐 정도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나에게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결정을 과감하게 여러 사람 앞에서 발언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해 가는 소설의 주인공을 닮고 싶었습니다.


반대로 '장무기'라는 인물은 여러 여인에게 마음을 주며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여줍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한 여인에게 정착하여 소설이 끝을 맺지만 그가 보인 모습은 제가 닮고 싶지 않은 인물상이었습니다. 우직하게 자신이 죽을 고비에 다다를 때까지 신분을 밝히지 않는 모습도 어찌 보면 타인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자신이 피해를 입게 되는 형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장무기라는 인물이 못마땅하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서 본인이 참는 모습은 어쩌면 제가 바꾸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무협지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설을 읽으면 인물과 나 사이의 공통점을 찾게 됩니다. 나는 상처를 받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혹시 누군가를 밀어내며 안전함을 확인하려 들지 않았는지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닮고 싶은 인물과 닮고 싶지 않은 인물을 떠올리는 과정은 결국 '나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서사 정체성 이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질문 하나가 앞으로의 선택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 된다고 믿게 됐습니다.


공감의 독서 질문으로 서사를 변경한 날

나는 그날 내게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던 친구가 아직도 떠오른다. 아무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 침묵이 내게는 아주 오래된 상처가 되었다.

짧은 문장을 읽고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비슷한 경험이 내게도 있었나요? 그때 감정은 무엇이었고, 지금 다시 옛 기억이 되살려본다면 어떻게 보이나요?


이런 실습을 따라 해 봤을 때, 잠시 멈춰 앉아 제 기억 속 한 장면을 꺼내 보았습니다. 대학교 시절, 가깝게 지내던 학과 동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발표 과제로 말다툼이 생겼고 그 뒤로 친구는 제 연락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조금 지나면 풀리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졸업식까지도 그 친구와 끝내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문장을 읽고 질문에 답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그때의 감정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나 혼자만 중요하다는 느낌',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했나 싶은 억울함', '내가 생각하는 소중함이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지로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트에 적었습니다.


지금 다시 보면 그 당시에 저는 대학원을 준비하는 학기여서 학점에 굉장히 예민했지만,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서로의 관점이 달랐지만 저는 다름을 틀림으로 판단하고 잘못한 건 그 친구라고 확정 지었습니다. 그 친구와 있었던 일은 분명 저에게 상처로 남아 있지만, 그 사건을 담고 있던 제 서사는 조금 바뀌었습니다.


서로의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당위적 사고로 무장한 채 그 친구의 맥락은 고려하지 않았었죠. 공감의 독서 질문을 따라 쓰는 일은 결국 오랫동안 묶여 있던 기억의 이야기를 자아 성찰하는 방식으로 다시 펼쳐보는 작업이었습니다.


타인의 서사를 읽으면 내 인생의 장르도 변한다

서사 정체성 이론에서는 우리가 자신의 삶을 어떤 장르로 이해하는지 알아가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비극으로 볼 것인지, 성장 소설로 볼 것인지, 로드무비로 볼 것인지 책을 많이 읽을수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장르도 늘어납니다.


예를 들어, 실패를 겪고 무너진 사람의 이야기를 재기가 불가능한 몰락담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방향을 틀게 되는 전환점으로 읽게 되면 내 삶의 실패 장면들도 조금은 다른 맥락으로 다가옵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지?'에서 '내 인생은 생각보다 삶의 굴곡이 많구나'쪽으로 약간 이동하게 됩니다.


타인의 삶을 읽는 독서는 그 사람의 이야기만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일지의 선택지를 늘려 줍니다. 그래서 요즘은 '나는 어떤 책을 읽느냐만큼이나, 그 책을 읽으며 내 이야기를 어떻게 다시 설정하고 있느냐가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여전히 책을 읽으면 블로그에 서평을 작성합니다. 그저 생존독서로 읽으면 어떤 내용인지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싫어서 열심히 요약하고 저의 생각을 약간씩 첨언했다면 이제는 책을 읽으면서 다른 질문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무슨 내용을 말하나요?'라는 관점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로 다시 이해하게 되나요?'를 묻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전에는 '그때 회사 프로젝트가 망하면서 내 자신감도 함께 무너졌다'였다면, 지금은 '그 프로젝트는 실패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일과 나를 조금 분리해서 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라고 리프레이밍 작업을 합니다.


타인의 삶을 읽는 독서는 결국 '이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난 나는 앞으로 내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고 싶은가'를 묻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혹시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면서 마음속에 오래 걸려 있는 장면이 하나 떠오른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빌려 내 서사를 조금만 바꿔 보아도 좋습니다. 그 한 줄이 당장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하겠지만, 책 속 수많은 삶들이 조용힌 내 삶을 비추어 주는 것처럼 조금씩 '나는 누구인가'의 정체성을 흔드는 과정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indunf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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