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장편 소설] 댓플레이스 (That Place)
“마이클! 어서 와요!”
희주가 엉덩방아를 찧은 채 바닥에 앉아 있을 동안 미즈키가 연기 속을 빠져나온 첫 번째 손님을 맞이했다. 마이클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모르긴 해도 280세는 훌쩍 넘었을 것 같다. 마이클은 조금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안정을 찾았다.
미즈키가 마이클에게 <댓플레이스> 입장 절차를 간단히 설명하며 그를 입장 심사대로 안내했다. 마이클은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댓플레이스>은 어떤 곳인지, 옆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채 앉아 있는 여자는 누구인지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고 그저 미즈키의 말에 순응하며 가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희주도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두 사람 뒤를 엉거주춤 따라갔다. 여전히 마구 구겨진 것만 같은 이 곳의 공간감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마이클은 말없이 미즈키의 손을 붙잡고 조심스레 걸어갔다.
“마이클, 먼저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한 후 <댓플레이스>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당신의 지난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회고할 수 있는 시간이예요.”
미즈키가 마이클의 프로필이 적힌 책을 쓱 흝어보며 말을 이어갔다. 마이클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눈을 살포시 감고 심사대 앞 테이블에 곧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당신의 마지막 순간을 설명해 드릴게요.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노환으로 인한 죽음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당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모두 한 자리에 모였어요. 당신은 거의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네, 기억 납니다. 많이들 와 주었지요.”
“엇, 마침 유족들의 메시지가 도착했네요! 잠시만요.”
미즈키가 인터뷰를 진행하다 말고 책을 보며 마이클에게 말했다. 미즈키가 책의 한 지점을 손으로 꾹 눌렀다. 그러자 살포시 감고 있던 마이클의 눈이 번쩍 뜨였다. 희주에게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마이클은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띄우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가를 슬쩍 훔치기도 했다.
“이제 끝난 것 같네요.”
마이클이 말했다.
“괜찮으세요?”
마이클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을 발견한 미즈키가 물었다.
“네, 가족들이 파라스페이스로 꼭 들어가라고 응원을 해줬습니다. 우리 손자는 할아버지, 들어가면서 꼭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주세요. 라고 했어요. 귀여운 녀석. 허허.”
“탐사선이 포착한 심사대는 2007번이에요. 손자가 아쉬워하겠는데요.”
마이클이 손가락을 들어 ‘브이’자를 만들며 말하자 미즈키가 싱긋 웃으며 농담조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궁금하거나, 남기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마이클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미즈키의 안내에 따라 입장 심사대 앞에 섰다. 미즈키가 빨간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마이클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지만 오히려 희주는 너무 긴장이 된 나머지 점수를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 과연 몇 점이 나올까? 어떻게 이 순간에 저렇게 평온할 수 있는 거지? 희주의 머릿속이 다시 한번 연기로 가득 찬 듯 복잡해졌다.
그 때, 미즈키가 빨간색 버튼을 길게 놀렀다.
‘띵동, 79점입니다. 입장하세요.’
경쾌한 안내음에 희주가 눈을 번쩍 떴다. 희주는 79라는 숫자와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마이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 있던 심사대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안쪽에서 강한 빛이 마치 거대한 폭포처럼 뿜어져 나왔다. 희주는 빛을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미즈키는 강렬한 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뜨고 열린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희주도 이내 눈에 아무런 타격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고개를 돌려 눈 앞을 가득 메운 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살아 생전 겪어본 적 없는, 태양처럼 찬란한 빛이 그녀의 몸을 감싸자 희주는 자신이 그 빛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이클을 밀치고 자신이 그 문으로 들어가고 싶은 열망이 다시 한번 솟아났다. 미즈키는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축하합니다 마이클, <댓플레이스>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미즈키가 목소리를 한 톤 높여 마이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 소리에 한 동안 빛에 취해 있던 희주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감사합니다.”
마이클이 크게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했다.
“이제 곧 망각 주스를 드릴 거예요. 지난 삶의 기억을 지워주는 주스죠. 고통스럽거나 불행했던 기억들도 지워주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들도 지운답니다.”
“음…….”
미즈키의 말에 마이클이 주름이 가득한 눈꺼풀을 살포시 닫았다. 희주도 그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삶의 기억을 지워주는 주스라……. 희주의 머릿속에 온갖 기억들이 파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박수한이었다. 그 자식을 만났던 순간을 아예 없애버리고 싶다. 박수한과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있었다면 삶이 좀 더 행복, 아니 행복 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인성의 밑바닥과 분노의 끝자락을 경험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할 때 정말 진상 고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전화상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직접 센터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었다. 그 때 희주는 들을 필요가 없는 갖가지 욕을 들어가면서도 죄송하다며 빌었다. 희주는 갑자기 그 때 일이 생생하게 떠올라 머리에서 김이 나는 것 같았다.
“꼭 망각 주스를 마셔야 하나요? 딱히 지우고 싶은 기억들은 없어요.”
마이클의 대답에 희주의 머릿속을 잔뜩 채우고 있던 바꾸고 싶은 과거에 대한 잔상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네. 많이 아쉽겠지만 이 곳의 규칙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댓플레이스는 인간 세상의 삶과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곳이라 지난 기억이 오히려 방해가 될 겁니다. 마이클, 잘 생각해보면 혼자만 기억을 가진 채로 <댓플레이스>에 들어가서 기억을 지운 이들과 재회하는 것이 썩 좋다고만 할 수 없어요. 아 참, 공황장애 때문에 꽤 오랜 기간 고생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황장애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싶진 않으세요?”
미즈키가 마이클의 프로필을 검토하며 하나 건졌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그것도 괜찮습니다. 공황장애를 겪었던 것도 제가 그 동안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니까요. 죽기 전에는 오히려 상태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고요. 굳이 잊고 싶지는 않지만 규칙이라니 어쩔 수 없이 따라야죠.”
마이클의 대답에 미즈키가 망각 주스를 제조하여 마이클에게 건네주었다. 마이클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단숨에 주스를 마신 후 <댓플레이스>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곧 환한 빛이 그를 감싸며 입장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환한 빛에 둘러싸인 마이클의 표정은 더 할 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희주는 마이클의 얼굴 표정,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인터뷰 내용도 귀담아들으며 79점이라는 점수를 받은 그의 특징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렇다 할 특이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왔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심사를 받는 순간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던 희주와는 달리 시종일관 평온했다는 것, 그것 만이 유일한 차이점인 것 같았다. 희주는 재심사 일정이 잡히면 흥분을 가라 앉히고 평온한 상태로 심사에 임할 수 있도록 준비하리라 다짐했다. 희주는 곁눈질로 미즈키를 힐긋 바라보았다. 미즈키는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묘한 표정을 지은 채 마이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즈키! 저 노아예요. 다음 손님이 못 오게 되었어요!”
희주가 미즈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희주가 귀에 꽂고 있던 수신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극적으로 심폐소생술에 성공했어요! 다시 삶으로 갔습니다.”
“아! 그렇군요. 잘 됐네요!”
“네, 세번째 손님이 오기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쉬고 있어요.”
“고마워요, 노아.”
대답하는 미즈키의 목소리가 밝았다. 희주는 과연 극적으로 살아나 다시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잘 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는 그저 아무 의미 없이 흘려 보내기만 했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 곳에 와서 <댓플레이스> 입구까지 갔다가 심사에 탈락하고 나니 안으로 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더욱 강렬해졌다.
“희주씨, 시간이 좀 남네요. 저희도 잠깐 쉬도록 하죠. 뭐 궁금한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요.”
미즈키가 가면을 벗고 기지개를 쭉 켜면서 말했다. 사실 이 곳에 와서는 피로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냥 인간 세상에서 하던 행동이 습관처럼 가끔 튀어나오곤 했다.
“미즈키씨는 살아 있을 때 무슨 일을 했었어요?”
희주도 미즈키를 따라 가면을 벗으며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의외의 질문인데요? 저는 살아있을 때 로봇 디자이너였어요. 이래봬도 꽤 촉망받는 인재였죠. 아, 혹시 로봇스테이션이라는 회사 알아요?”
미즈키가 한 쪽 눈을 찡긋하며 대답했다. 로봇스테이션이라니. 그 곳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로봇 개발사이다. 모든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 세계 최고의 브레인들이 모여 있는 회사다.
“진짜 로봇스테이션 디자이너였어요? 완전 멋져요! 저희 집에도 구형이긴 하지만 로봇스테이션에서 만든 로봇이 하나 있거든요!”
희주가 미즈키의 손을 덥석 잡으며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집에 혼자 있을 리노가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쓰렸다. 지금쯤 리노는 보험회사에서 그녀의 신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고철 분리수거함에 버려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요? 이왕 시작한 거 자랑을 좀 하자면 제가 일을 좀 잘했어요. 여기저기에서 인터뷰도 많이 하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교육도 하고요. 회사, 집, 회사, 집, 이게 저의 일상이었는데 하나도 힘든 줄 몰랐어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성과도 났고요. 제가 디자인한 로봇이 출시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을 보는 일이 가장 보람 있었죠. 제가 손대는 제품마다 모두 대박이 났어요.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답니다. 정말 제 일에 푹 빠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미즈키가 신이 나서 자기 자랑을 늘어 놓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미즈키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죽었어요.”
“네?”
“과로사였어요. 미친 듯이 일만 하다가 책상 앞에서 여기, <댓플레이스> 입장 심사대로 직행했죠.”
“아니, 요즘 세상에 과로사라니요. 칩 신호가 안 왔어요?”
“물론 칩 신호는 왔죠. 스트레스 지수도 매우 나빴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여러 신호들이 있었는데 무시했어요. 일이 너무 바빠서 챙길 새가 없기도 했고 스스로 견딜 수 있다고 자만했었거든요. 병원 가는 것을 계속 미뤘어요.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요. 그러고 보면 제가 주변 사람들을 참 많이 괴롭게 한 것 같아요. 걱정도 많이 시키고, 동료들에게도 너무 성과만 생각하느라 밀어붙이기만 하고. 힘들다는 이야기했을 때 다그치지 말고 조금만 귀 기울여 줄 걸……. 이제 와서 후회되고 미안한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아…… 미즈키…….”
“그래도 저는 정말 삶을 열심히 살아왔었기 때문에 못 해본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어요. 그래서 <댓플레이스>에도 문제없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심사 점수가 42점이었어요. 희주씨도 그랬겠지만, 기준을 모르니 여간 답답한게 아니었죠. 그 이후로 한 동안 문지기로 일하다가 재심사를 봤는데 점수가 그대로였어요. 또 실패한거죠.”
희주가 미즈키를 만난 후 처음보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다음 심사 일정은 잡혔어요?”
“네, 아직 한참 남았어요. 두 달 후랍니다.”
“아직 좀 남았네요……. 이번에는 어떨 거 같아요?”
“글쎄요, 심사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어렴풋이 답을 찾은 것 같기도 해요.”
“그렇군요.”
희주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미즈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완벽한 삶을 살았을 것 같은 미즈키의 무엇이 그녀가 <댓플레이스>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을까? 희주는 시간이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했다.
-The image created by CHO JUYOUNG with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