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우파 사랑'의 경제학 .. 이탈리아 정부의 스타링크 논란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론 머스크와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의 우정이 이탈리아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둘이 워낙 친하기는 하지만) 핑크빛 로맨스가 아니라 '스페이스 X의 이탈리아 정부 사업 진출'과 관련된 논란입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머스크의 스페이스 X의 스타 링크에 15억 달러(우리 돈 약 2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주고 '이탈리아 군대, 대사관, 첩보기관'같은 비밀스러운 기관들이 미국의 위성 통신망을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배경에는 머스크와 멜로니의 친분관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생긴 겁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관계를 'Power Friendship'이라고 불렀는데, 머스크의 우파 사랑이 미국, 영국, 독일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그만큼 이야기꺼리도 늘어나는 모양새입니다.
I.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멜로니 총리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멜로니 총리에 대해 "자신의 출신 정당인 '이탈리아 형제당'의 네오-파시스트 전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새로운 정치적 브랜드(a novel political brand)를 구축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멜로니 총리의 매우 보수적인 성향은 미국의 MAGA 공화당원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라고도 설명했습니다.
이런 멜로니 총리가 일론 머스크 CEO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두 명 모두 '반지의 제왕'을 좋아해서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이 둘에게 '반지의 제왕'은 단순히 판타지 문학을 넘어 정치적, 철학적 견해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둘다 자신을 옹호하거나 상대를 비난할 때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캐릭터나 사건을 인용합니다.)
서로에 대해 대놓고 긍정적인 평가도 내립니다.
머스크는 "외모보다 내면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멜로니 총리를 칭찬했고, 멜로니 총리는 머스크를 "천재"라 부르며 "그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건 부당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연인 관계는 아닙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머스크와 멜로니의 관계는 지난해 가을 머스크가 뉴욕의 애틀랜틱 카운슬 시상식에서 멜로니 총리를 소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바로 위의 '내면의 아름다움'과 '천재' 언급을 주고 받았고, 그 이후 둘은 "친구 관계 이상이 아니냐"라는 소문을 부인해야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둘이 함께 저녁을 먹는 사진에 대해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멜로니 총리와는 어떤 로맨틱한 관계도 없습니다"라고 공식 부인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의 관계가 다시 논란에 서게 됐습니다.
'이탈리아 정부와 스페이스 X'가 2조원이 걸린 사업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재벌 일론 머스크와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power friendship이 한 나라를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라고 해석했습니다.
II. 스페이스 X의 이탈리아 진출
논란이 된 건, 이탈리아 정부가 주요 정부 기관의 암호화 통신을 머스크의 스페이스X를 통해 주고 받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멜로니 총리 정부가 스페이스 X와 협상하고 있는 대상 가운데에는 '이탈리아 군부대, 해외 대사관, 그리고 기타 이탈리아 첩보 기관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탈리아 야당은 "미국 마라라고 리조트까지 가서 트럼프 대통령 만나고, 머스크 만난 대가로 이런 요구를 들어주는 것 아니냐"라며 반발했습니다.
야당 지도자 엘리 슐라인은 "미국 억만장자의 위성을 가져오는 데 이탈리아 돈 15억 유로를 써야 한다면, 그 대가는 너무 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III. 스페이스 X를 꺼리는 이유
멜로니 총리도 완강합니다.
멜로니 총리는 "스페이스X 계약에 대해 개인적으로 머스크와 이야기한 적이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진행 중인 논의는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친분이나 정치적 이념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스페이스 X의 이탈리아 정부 진출이 논란이 되고 있는 건 단순히 2조원이 들어간다는 규모 때문 만은 아닙니다.
국가적 안보가 관련된 계약을 민간 회사, 그것도 다른 나라의 회사와 진행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습니다.
멜로니 총리는 이에 대해 "최선은 아니지만, 전 지구적 소통을 위한 안전한 기술을 제안받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두 번째는 일단 정부와 일을 하려고 들어온 스페이스 X가 소비자 인터넷 서비스까지 제공하게 되고, 결국 이탈리아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스타링크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럽에서는 스페이스 X에 대한 경계심이 높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유럽 통신기업 보다폰 CEO였던 비토리오 콜라오의 말을 인용해 "유럽과 머스크의 경쟁자들이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엄청난 권력 집중에 직면할 것"이라며 "스페이스 X가 10,000~12,000개의 위성을 보유하게 될 것이며, 다른 회사들은 겨우 수백 개를 보유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게임은 사실상 끝난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내부에서는 다른 생각도 있습니다.
부총리인 마테오 살비니는 외려 계약을 확장해서 스페이스 X를 이탈리아가 먼저 받아들여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SpaceX와의 잠재적 계약은 이탈리아 전역의 연결성과 현대화를 보장하며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라며서 총리 편을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스페이스 X와의 계약이 유럽의 경쟁적 통신 위성 구축 노력, 즉 아직 몇 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협력 프로젝트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하지만 멜로니 총리는 "유럽의 움직임이 충분히 빠르지 않으며, 스페이스X가 이탈리아의 필요를 더 빨리 충족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보다 못한 이탈리아 대통령 마타렐라 대통령까지 이례적으로 머스크를 겨냥한 것처럼 보이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머스크와 멜로니 유착'은 당분간 이탈리아 정가를 시끄럽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성명 내용입니다.
"동맹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그 누구라도, 이탈리아의 주권을 존중해야 할 것이며, 해법이나 처방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서는 안됩니다"
PS. '머스크의 우파 사랑'
세계 최고의 부자이며, 정말 화성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혁신가 머스크가 굳이 왜 자꾸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걸까요?
그것도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남의 나라 정치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원래 민주당원이었다" "이래저래해서 우파 지지자가 됐다"는 식의 정치적 해석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그가 몇 차례 언급을 하기는 했지만, 어떤 것이 진짜 속내인지는 알 수 없겠죠.
다만 이번 '이탈리아 파문'에서 눈에 띄는 건 머스크의 우파 사랑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입니다.
미국에 이어 영국, 독일의 우파를 지지할 때 크게 2가지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의견1. 결국 규제를 줄이고 싶어하는 우파와의 연대가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의견2. 아니다. 적을 많이 만들어 외려 매출에 방해가 될 것이다.
일단 의견 1번은 이번 이탈리아 케이스의 경우에 가깝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탈리아의 경우, 머스크의 정치 개입이 그의 사업상 이익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렇다고 의견 2번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닙니다.
지난해 테슬라의 유럽 시장 판매량은 28만 2천700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13.7% 감소했습니다.
유럽의 순수전기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1.4% 감소하기는 했지만, 테슬라의 후퇴가 유독 눈에 띄기는 합니다.
BMW, 폭스바겐, 볼보가 성과가 좋았고, 비야디 같은 중국 기업도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해졌고, 보조금이 줄어든 효과 때문이라는 게 정확한 분석이겠지만, 외신들의 평가 마지막에는 늘 '머스크의 정치적 입장 등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악화'라는 언급이 따라 붙습니다.
늘 큰 그림을 그리고 세상을 놀래 켜왔던 일론 머스크, 그의 우파 사랑은 또 어떤 경제적 파장을 만들어낼까요?
'머스크의 기행(奇行)'에 놀라기를 수년 째 반복해온 테슬라 주주들은 이제 적당히 무뎌진 듯 하고, '머스크의 청천벽력 같은 한마디'에 급등락하던 테슬라의 주가도 이제는 다른 경제적 통계 속에서 움직이는 평범한 경우가 더 많아진 듯 합니다. 다행입니다.
물론 좋든 싫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머스크의 통찰력과 비전'은 늘 주가에 반영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