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분만 시도 후 제왕절개 수술,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었던 현실.
산모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기다리는 것.
30분 정도 흘렀을까, 멀리서 아이 울음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잠시 후,
응애 하며 등장하는 신생아 한 명. 아니, 한 마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포유류의 새끼 같은 느낌.
눈 앞에 나타난 아이를 보자마자 초음파 사진 속 얼굴이 떠오른다.
맞다. 이 아이는 우리 아이가 확실하다!
반갑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태명을 불렀더니 울음을 그치면서 아빠가 어디있나 찾는 모양새다. 귀엽고 기특하다.
이 순간, 엄마와 셋이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골반이 좁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수술,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규칙적인 진통이 3분 간격으로 줄어든 새벽, 분만실로 찾아갔다. 자궁문이 7cm나 열려 있다며, 안 아팠냐고,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한다. 둘째는 그냥 일찍 오라는 말과 함께. 왠지 뿌듯하고 자연분만 성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 때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속골반이 넓지만 겉골반이 좁다' 고도했다.
다행히도 산모는 별로 아픈 내색이 없었는데, 무통주사를 맞고 나더니 더욱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분만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진통이 느껴질 때마다 적당한 타이밍에 힘을 줘야 하는데 그래프 기계의 수치만을 빌려 힘을 주다 보니 이게 맞는지 헷갈려했다. 잠시 무통을 끄고 다시 힘주기를 해봤지만, 여전히 원활하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서는 제왕절개 하자고 했다. '속골반이 좁아서 아이 머리가 나오기 어렵다'라고 한다. 처음에는 속골반이 크다고 하셨는데?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종적으로는 산모의 결정을 따르기로 하되, 짧게나마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산모는 자연분만을 하고 싶어 했다. 그럼에도, 본인이 자연분만을 할 수 없는 몸일지도 모른다는 자신감 하락, 의료진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무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컸다. 결국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 의사를 밝히는 순간, 이후 프로세스는 일사천리다. 기다렸다는 듯.
수술 중 있을 수 있는 의료 사고에 대한 이런 저런 동의서에 서명을 한다. 뭔가 찜찜한 기분이 누적된다. 하지만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너무나도 무력하지만 어쩔 수 없다.
분만에 있어, 산모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24시간 모자동실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선택과 의지가 중요하다.
다만, 병원과 의료진이 자연분만에 대한 많은 경험과 리더십으로 자연분만에 힘을 실어 주느냐, 제왕절개를 은근히 유도하느냐는 그 결과가 천지차이다. 우리나라의 높은 제왕절개 수술 비율(2021년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 58.7%, 한국모자보건학회지, 2023년 1월)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출산 문화가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24시간 모자동실을 이행하기로 결심한 당신, 반드시 24시간 모자동실 가능 병원으로 예약하자.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별 다섯 개)
24시간 모자동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병원이라면 자연분만에도 우호적일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펼쳐질 24시간 모자동실이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자연분만 경험이 많고 의지도 강력한 병원이어야 한다. 자연분만이 불가하여 제왕절개 수술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유는 모유수유 때문이다. 성공적인 모유수유를 위해서 출산 직후 엄마와의 교감, 젖 물리기가 중요한데, 제왕절개라 하더라도 이 골든 타임을 지키려는 노력을 함께 해 주는 병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feat. 하정훈 정유미 삐뽀삐뽀 유튜브 채널)
이것을 간과하고, 심지어 이것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는 병원이 아직도 많다. 신생아실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신생아를 케어할 수 있듯(지난 글 참조), 분만실 관점에서 효율적으로 분만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제왕절개 수술인 것도 한몫할 테다.
산모와 보호자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병원의 지위를 활용하여 이들에게 겁박을 하며 제왕절개를 권한다고 생각해 보자. 자연분만에 도전하려던 산모와 보호자라 하더라도 이들의 권위와 분위기에 압도당해 어쩔 수 없이 수술을 선택하게 된다.
24시간 모자동실을 위해서는 자연분만 경험이 많은, 자연분만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는 병원을 알아보자. 이것이 24시간 모자동실의 시작과 끝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 분만실에서부터 병원과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나의 불안함은 분만실에서부터 시작됐다.
'아, 이 병원은 24시간 모자동실에 협조적이지 않구나. 괜히 24시간 모자동실 가능한 병원 목록이 있는 게 아니구나.' 후회, 불안, 두려움, 자괴감 등 온갖 부정적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분만 시 아쉬웠던 점은, 자연분만 진행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과, 제왕절개로 이어지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술 과정에 보호자는 참여할 수 없었고, 출산 직후 산모는 수면 마취로 인해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직후 엄마와 교감을 충분히 나누지 못했다.
그 밖에 아쉬운 점이 한 트럭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다 잊혔다. 그 많던 부정적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아이와 함께할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그려보고 있더라. 건강하게 태어나 주어서 고맙다. 우리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견문이 짧아 감동을 더 잘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따름이다.
분만 방식을 논하던 것 마저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앞으로 이 생명을 어떻게 인간으로 키워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차올랐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병원에서의 4박 5일.
2~3시간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4박이 아니라 12박쯤은 되는 느낌이다. 시차 전환이 유럽 여행 저리 가라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아이를 정신없이 케어하다 보면 어느새 날이 밝아 있다. 잠깐 눈 붙였나 싶으면 식사가 들어온다. 체력이 고갈된다는 말을 이럴 때 쓰겠구나 싶다.
하지만 잠든 아이를 보면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 정말이다.
그보다도, 입원해 있는 동안 정말 정말 힘들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24시간 모자동실에 대한 병원의 태도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