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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모자동실, 시작합니다.

첫 아이를 마흔에 낳은 철부지 초보아빠의 24시간 모자동실 생생 후기!

24시간 모자동실을 고민 중인 당신,

무엇이 걱정인가? 우리 아이는 우리가 책임지자.

대신, 마음 단단히 먹자.


엄빠 모두 아이를 좋아한다면.

우리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는 첫걸음을 도와주고 싶다면.

갓 태어난 아이를 신생아실에서 20인 1실 기숙사 생활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

뱃속 세상 너머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낯선 소음에 아이가 스트레스받게 하고 싶지 않다면.

3주 24시간, 형광등 불빛에 노출되어 밤낮 없는 바깥세상으로 오해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


24시간 모자동실이 답이다.


혹시라도 24시간 모자동실을 못한 채 퇴원했는가?

아이가 태어난 지 3주가 다 돼서야 진짜 육아를 시작하려 하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많이 안아주고 많이 놀아주자.


갓 태어난 아이와 처음부터 함께한 24시간 모자동실 이야기. 지금 시작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


눈 주변에 털이 많은 반려견을 본 적 있는가? 반려견 미용이 일반화된 요즘, 눈 주변 털을 깔끔하게 정리한 반려견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갑자기 웬 개 얘기냐고?


우리 인간은 동물을 케어할 때 사람 관점에서 케어하는 경우가 많다. 개는 청각과 후각이 발달했기 때문에 시각적 불편함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사람이 보기에' 답답하다는 이유로 눈 주변 털을 정리하는 것이다. 개 입장에서는 털이 시야를 가려 불편한 것보다, 털을 통해 직사광선, 자외선을 차단하여 눈을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음에도 말이다. 털이 많은 강아지의 털을 싹 다 밀어 놓고, 피부 보호를 위해 다시 옷을 입히는 상황도 비슷하게 볼 수 있겠다.


연애할 때도 비슷하다. 왜 있지 않은가, 상대방이 좋아할 줄 알고 준비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오히려 싫어한다거나, 남자가 밤늦게 불쑥 찾아오는 상황을 여자는 극혐 한다거나, 여자의 세심한 배려가 남자에게는 그다지 배려로 느껴지지 않는다거나 하는 경우 말이다.


인간은 '본인의 관점'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다. 이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알고'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어른이 아이를 케어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른 관점이 아닌 아이 관점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뭘까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 말 못 하고 몸 못 가눈다고 해서 인지 능력도 없을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태어난 지 5분도 안된, 눈도 못 뜨는 아이에게 태명을 불러주던 순간. 울음을 그치고 눈을 떠서 아빠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더라. 형광등에 눈이 부셔 바로 다시 눈을 감고 울긴 했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믿고 있다. 아빠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고.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매일 저녁 11시 전후로 태담을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아빠 목소리를 기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태어난 직후 들려오는 아빠 목소리. 익숙하지 않았을까?




신생아실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신생아를 엄빠와 분리하여 일괄 관리하는 방식은 "신생아실" 입장에서 편리하다.


신생아실은 서비스 공급자다. 신생아 케어 전문가들이 프로페셔널하게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달랜다. 단지, 그 방법이 너무 대규모 프로세스에 최적화되어 있을 뿐이다.


신생아를 한 방에 모아 두면, 먹고 자고 싸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여러 아이를 동시에 케어하기 때문이다. [분유 - 트림 - 잠 - 깸 - 기저귀] - [분유...] 무한 반복이다. 마치 아이가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것 같다. 이 시스템, 아이에겐 어떨까? 엄빠만 해도 식성이 달라 뭐 먹을지 맨날 싸우는데 말이다(?).


신생아실 관점에서, 모든 신생아가 엄빠와 함께 병실에 흩어져 있다고 상상해 보자. 모유 수유, 젖병 분유, 기저귀 갈기, 우는 아이 달래기. 생각만 해도 빡세다. 회사로 치자면 신입사원 온보딩 교육 없이 첫 출근날 전국 각지에 파견된 상태? (아무래도 비유가 이상하긴 하다.)


신생아에게 필요한 비품, 소모품, 전문인력 모두 각 병실에 실시간으로 흩어져서 엄빠를 지원해야 할 것이다.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비용도 많이 들것이다. 우리나라에 24시간 모자동실을 적극 지원하는 병원/조리원이 많지 않은 이유다. 출산 관련 산업은 관습처럼 대규모 프로세스에 최적화되어 발달해 왔다. 이렇게 굳어졌다.




신생아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신생아의 세상 경험 99%는 엄마 뱃속이다. 자나 깨나 들려오는 엄마 심장 소리, 엄마 소화기관 소음(...), 가끔 멀찍이 들려오는 아빠 목소리. 약 9개월 간 인생을 통틀어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환경이 바로 엄마 뱃속이다.


아이 입장에서의 뱃속 삶은 어땠을까? 대부분의 시간을 자면서 보낸다. 가끔 깨서 숨쉬기 연습도 좀 하고, 그러다가 딸꾹질도 한다. 꼼지락 대다가 모로반사가 오면 팔다리를 허우적대기도 한다. 24시간 모자동실하며 아이를 살펴보니, 태동이 보인다. 아이 움직임만 보더라도 우리 아이임이 실감 난다. '아~ 그때 그 발차기 태동이 바로 이 모로반사였구나~'


태어난 직후의 신생아도 마찬가지다. 정말 잘 잔다. 자기 위해 태어난 건가 싶을 정도로 잠만 잔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잠만 자다가 가끔씩 깨서 힘차게 울어 젖히는데, 체감상 잠 16 깸 8 정도다. 울 때마다 기저귀 갈고 밥 주면 그게 24시간 모자동실의 전부다.(feat. 하정훈 정유미 삐뽀삐뽀 유튜브 채널)


뱃속 삶을 벗어 난 아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진짜 세상 속에도 엄마 아빠가 함께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은가?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도, 깨어 있을 때도, 엄마 아빠 목소리를 들려주고, 엄마 아빠 품에서 스킨십해주고, 엄마 아빠 심장 소리를 들려주자. 아이에게  최고로 익숙한 환경을 제공해 주자.


갓 태어난 아이가 울면 정말 멘붕이다. 해줄 수 있는 게 얼마 없다 보니 미안함만 한가득이다. 기저귀 하나를 갈더라도 너무 어렵다. 괜히 아이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운다. 그럼 더욱더 미안해진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그러나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게 아닌 이상, 아무리 서럽게 울더라도 놀라지 말자. (입술을 떨며 울어 젖히는 아이를 보면 아무리 강심장 엄빠라도 놀랄 수 밖에는 없긴 하다.)


아이가 세상에 적응하는 시기, 엄빠가 아이에게 적응하는 시기, 서로가 서로를 온보딩하는 시기. 아마도 인간이라는 포유류에게 자연이 내려준 선물 같은 시간이 아닐까. 이 소중한 선물, 문 밖에 3주 동안 방치하지 말자. 얼른 받아 열어 보고 요리조리 살펴보자. 우리 아이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조금씩 서로 알아가자.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아이는 28 일령차 신생아다. 잘 먹고, 잘 싸고(정말), 잘 잔다. 퇴원 후 3주 만에 육아 전쟁을 시작하는 엄빠들에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https://brunch.co.kr/@c90fb2fc9908426/49


24시간 모자동실의 중요성은 정유미 선생님과 같은 전문가 분들에게 맡기겠다. 당신이 24시간 모자동실을 이행하기로 했다면, 반드시 24시간 모자동실을 적극 지원하는 병원을 예약하자. 동네 산부인과에서 24시간 모자동실 가능하다고 하길래, 덜컥 그냥 그 산부인과에서 분만을 해 버렸다.


이것이 잘못된 시작이었다.





택시와 함께 폭우를 뚫고 분만실에 찾아간 새벽.


'저희 24시간 모자동실 예정입니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저희 병원은 24시간 모자동실 안 되는 것으로 안다.'더라.


이게 무슨 소리?


'분만 상담 시 가능하다고 안내해 주셔서 그렇게 알고 있다'라고 재차 이야기했고,

'분만 후 신생아실 상담 시 조율해 보자'는 말로 분만실에서는 일단락 됐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그 대가는 너무 컸다.

산모와 아이의 건강에 대한 걱정만으로도 힘든 이 타이밍에,

병원과 의견을 대립하며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통스러웠던,

(24시간 모자동실에 비협조적인) 병원에서의 분만 이야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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