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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졌던 아이와 다시 만나기까지, 험난한 여정!

아이는 출생 직후 신생아실에 내려가고, 엄마는 수면마취로 잠만 자고.

아이가 병실로 올라왔다.

엄마가 아이와 만나는 첫 순간.

반가움. 미안함. 감동. 고마움. 행복함. 희망참. 감사함. 다짐 ......


만감이 교차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의 의미. 이제 알겠다.


그나저나,

아빠는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가?


도움 인력들에 대한 서운함, 속상함, 더 나아가 적개심.

엄마에 대한 미안함, 아이에 대한 걱정.

잘한 선택일까에 대한 두려움, 막막함.

그야말로 만감이다.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난 떠는 이상한 엄빠 취급을 받을지언정,

우리는 우리 아이와 함께 있어야겠다.


병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에 시작하게 된 24시간 모자동실! (이라 쓰고 부자동실이라 읽는다)




아이가 태어난 후 시작된 병원과의 전쟁(?)


세상에 나온 아이는 아빠와 짧은 면회 후 신생아실로 내려간다. 작은 케이스에 담겨 복도로 이동한다. '계속 같이 있고 싶은데' 하는 생각과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속상하다.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다. 아빠는 울먹이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아이와 헤어진다. 이제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기다리는 것뿐.


신생아실 담당자가 올라왔다.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해 준다. 역시나. 24시간 모자동실 언급이 없다. 어물쩍 넘어가려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예감이 좋지 않다. "아이 면회는 하루 두 번, 언제든지 보고 싶을 때 신생아실에 전화하면 TV로 화면 송출해 드려요~" 이 대목에서 24시간 모자동실에 대한 결심이 강해졌다. (전투력 +1)


'아니, 우리 아이인데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다니?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과 함께, 3박 4일 동안 아이를 볼 수 없다는 상상만으로도 또 눈물이 났다. 울음을 삼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저희 24시간 모자동실 하려고 하는데요~" 그 순간 짜증 섞인 담당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안 그래도 이야기 들었는데, 저희는 24시간 모자동실을 권장하지 않아요"

"코로나로 인해 한 번 신생아실에서 나간 아이는 다시 되돌아올 수 없어요"

"병실 담당 간호사는 아이를 봐주지 않기 때문에 신생아 관련 질문이 불가해요"


만약 당신의 분만 병원이 24시간 모자동실을 적극 지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앞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모든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 아이를 케어하기만 해도 힘들고 벅찬 이 시기, 엄빠를 도와주겠다며 병실을 방문한 도움 인력들은 하나같이 모자동실을 적극 만류한다. 모자동실에 대한 우리의 의사를 끝없이 어필해야 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너무나도 이상하다!

우리가 우리 아이와 함께 있겠다는데,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지 못할 망정, 방해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왜 그렇게 우리 아이를 못 떼어 놓아 안달일까?


이것이 바로 24시간 모자동실을 적극 지원하는 병원에 가야 하는 이유다.




4시간 만에 엄빠 품에 안기다


엄마는 수면 마취 상태로 수술 침대에 실려 나왔다. 왜 또 아빠는 눈물이 나는 건지. '고생했어. 많이 아프겠다. 얼른 일어나서 우리 아이 만나러 가자~!' 좁디좁은 회복실이라는 곳에서 엄마를 지켜보는 시간이 참으로 초조하다. 잠깐 정신이 드는 듯하다가도 다시 잠들기를 반복한다. "애기 봤어? 진짜 작지~" 방금 전에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두 시간 후, 우리는 병실로 이동했다. 엄마는 아직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서서히 정신이 들 무렵. 아빠 폰으로 촬영한 면회 영상과 사진을 보며 아이를 그리워한다. 아빠는 또 눈물 글썽. 엄마가 TV 면회를 신청하잔다. 오, 좋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신생아실에 전화를 걸어 면회를 요청했다. 기계적인 대답과 함께 신경 쓰이는 한 마디. "5분 내로 카메라 앞에 옮겨 드릴게요. 아이 첫날이라 좀 울 수 있어요~" 아이가 왜 우는지 걱정하는 엄빠들의 과거 컴플레인에 대한 사전 방어 멘트였으리라.


잠시 후 TV 화면에 나타난 아이. 아빠는 또 눈물이 난다.

울지도 않고 똘망똘망 눈도 보인다. 혼자서 딸꾹질도 하고 잘 노는 모습. 화면은 잠시 후 꺼졌다. 그렇게 아이를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났을까? 신생아실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 올려 드릴게요~!



투명한 플라스틱 바구니가 알루미늄 카트에 실려 덜덜거리며 병실로 들어온다. 엄마가 아이와 만나는 첫 순간. 또 눈물이 쏟아진다.


수유를 위해 아픈 몸을 일으켜 앉는 엄마가 안쓰럽다. 고맙다. 대견하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이가 엄마 가슴을 열심히 찾아 먹는 모습이 기특하다.


처음부터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이제부터 쭉 함께하자~!





처음의 겁박(?)과는 다르게, 신생아실에서 도와주는 것이 의외로 많았다. 참 다행이었다.

먼저, 새벽 6시 신생아실로 아이를 내려보내면 목욕을 시켜준다. 그리고 하루에 2~3번 정도 케어 전문가들이 병실로 올라와서 저마다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 기저귀 가는 법, 속싸개 하는 법,  젖병 물리는 법, 트림하는 법, 모유수유 하는 법 등. 생각해 보면 괜히 겁준 것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은,

24시간 모자동실에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의 태도였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이해가 안 됐지만, 생각할수록 마냥 그들만을 탓할 수가 없겠더라.

이 병원의 시스템. 아니, 그냥 이렇게 오랫동안 굳어온 우리나라의 산부인과 업무 체계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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