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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17. 2020

운명의 날, 그 이후

목표가 있는 삶이란

드디어 운명의 날! 기다리던 필기시험 날이 되었다. 시월 중순의 쌀쌀한 가을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채비하고 요약 노트를 반복해서 읽으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그간의 필기시험과 달랐다. 공공기관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로 달려온 몇 개월의 시간, 입사를 위한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지 확인하는 날이었다. 내 자리에 앉아 심호흡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동안 준비했던 필기시험을 마음껏 펼치고 싶었다. 목표를 향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에 기다리던 날이었다. 공공기관 취업을 준비하면서 인생 최초로 목표가 생겼다. 그 시간을 통해 목표가 있는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목표가 정해지니 길이 보였다. 공공기관 입사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길을 매일 걷게 되었다. 그 첫 번째 관문인 필기시험은 시험 유형을 미리 확인해 그에 맞게끔 실질적인 방법으로 매일 공부를 시작했다. 시험 범위는 많았지만 목표가 확실하니 덜 버거웠다.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하고 접근하니 그간의 시험공부와는 달랐다. 목표가 나를 이끌기에 입사 준비 자체를 두렵지 않게 만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았다. 준비해온 대로 전공 약술과 논술 문제로 이루어졌다. 빠르게 문제를 파악하고 지식과 창의를 섞어 답안지를 채웠다. 예상과 크게 다른 문제는 없어서 괜찮았다는 마음이 샘솟으면서도 한, 두 문제는 정답이 불확실해서 이 문제 때문에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등 복합적인 생각이 섞였다. 직무적성 시험(NCS와 유사) 역시 준비한 유형으로 문제가 나와서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험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커다란 산을 하나 넘은 것 같은 후련함이 마음을 지배했다.

- 10.16.(일) 기다리던 필기시험 날



목표가 확실하니 멀리 보는 안목이 생겼다. 필기시험을 마치니 합격 일지 불합격 일지 잠깐 불안함이 솟구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렇게 잡념에 사로잡힐 여유가 없었다. 내 걱정과는 별개로 결과는 주어질 것이고 그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전략이 필요했다. 면접까지는 약 3주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그 안에 기관의 주요 현안과 시사 논술 주제를 기본으로 발표와 토론 면접에 집중해 보았다. 이미 필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면접도 함께 준비했기에 여러 자료도 챙겨놓았고 익숙한 주제가 많아서 면접 준비가 생소하지 않았다. 다만, 말로 표현하는 연습에 주력하면서 면접의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애썼다. 면접을 준비하는 와중 필기시험 결과 발표일이 되었다. 채용 홈페이지에 접속해 빠르게 인적사항을 입력했다. 드디어 발표 시간. 후들후들 떨리는 손가락이 엔터키에 위치했다.



딸~깍




필기 전형 합격을 축하합니다. 1차 면접 일정을 안내합니다.




몇 개월 공부가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몹시 기뻤다. 필기시험 결과를 두고 인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필기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채용 설명회에서 강조한 필기의 중요성이 다시 떠올랐다. 모두가 합격할 수 없는 채용. 누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채용. 합격한 자는 그다음 단계로, 탈락한 자에게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냉정한 현실이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인생처럼 어떤 누구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취업의 세계. 그 세계를 채우는 불확실성은 취준생의 애를 타들어 가게 하는 요인이 된다.



목표가 있는 삶은 나 자신을 믿게 한다. 목표가 뚜렷하니 흔들림이 적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이 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내 스펙이 초라한데 공공기관 취업이 가능할까?'  과거 스스로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감은 도전 자체를 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목표가 확실하니 나를 믿게 되었다. 나의 관심과 특기를 조합해 세운 목표이기에 내가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에 대한 확신은 훗날 어려움이 닥쳤을 때 더욱 빛을 발휘한다.



1차 면접 날이 되었다. 면접 유형도 미리 준비했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에게는 과연 어떤 주제가 나올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3분 스피치와 토론 면접 주제가 정해졌다. 시사 논술을 쓰면서 맞닥뜨려본 주제였다. ‘1 금융권 대출 규제로 인한 파급 효과’로 기억난다.

내 생각을 정리해서 3분 스피치로 먼저 발표하고 규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로 나눠 토론 면접에 임했다. 빠르게 눈치 게임을 하면서 발언 기회를 얻었다. 특별한 예시를 들어 얘기하고 상대의 얘기에도 경청한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가장 부담되었던 면접이 끝나고 영어 스피킹 시험을 보았다. 매일 책으로 외웠던 내용을 돌려막으며 그런대로 무난하게 마친 느낌이었다.

- 11.11.(금) 썩 괜찮았던 1차 면접 날



지난 1년간 면접만 가면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면접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우쳤다. 필기시험을 준비하는 것처럼 면접도 임기응변만으로 통과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여러 기업의 면접에 참여하면서 조금씩 나 자신을 알게 되고 면접의 기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어느덧 1차 면접 발표일이었다. 심장이 뛰어서 미칠 것 같았지만 최종 면접을 준비한다면서 자료를 훑어보았다. 발표 시간이 되었다. 인적사항 입력을 재빨리 입력하고 키보드가 부서져라 엔터키를 두드렸다.



탁!!!




1차 면접 합격을 축하합니다. 최종 면접 일정을 안내합니다.





마지막 하나의 관문만 남았다. 마음은 벌써 최종 합격한 것처럼 들떴지만 애써 차분하게 마지막 면접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종 면접은 인성 면접으로 보다 근엄한 분위기에서 가치관을 묻고 질문 범위가 넓게 들어온다는 정보를 들었다. 예의를 갖추되 적극적으로 기회를 살리라는 팀, 부장님의 조언을 듣고 내게 주어진 마지막 면접에 참여하기 위해 대기실로 갔다. 최종 면접의 압박은 실로 엄청났다. 지금껏 단계에서 모두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압박도 크지만, 임원진으로 구성된 면접관들의 근엄함은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생겼다.



7명이 한 조가 되어 30분간 면접이 진행되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간단하게 하고 공통 질문 몇 가지가 오갔다. 마지막 질문.

이사장 :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은 누군가요? 순서 없이 편안하게 대답해주세요.
나 : (연예인?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누구라고 말해야 하지?)

그사이 어떤 지원자가 바로 손을 들었다. 본인은 가수 누구를 좋아한다면서 한류를 선도하고 세련된 음악이 마음에 든다며 막힘 없이 답변했다. 이어서 다른 지원자들이 우후죽순 대답을 이어갔다. 눈치 게임 끝. 나는 마지막 발언자가 되었다. 자신 있게 대답했다고 위안해보았지만 반응은 별로 달갑지가 않았다. 갈수록 아쉬움만 남은 마지막 면접이었다.
 
- 11.24.(목) 아쉬움이 남은 최종 면접 날



최종 발표를 앞두니 어느덧 11월 말이었다. 반년 간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온 시간이었다. 최종 합격 여부에 따라 인턴이 아닌 신입사원이 되느냐, 아니면 여전히 취준생이냐가 확정되었다. 무엇보다 이 지긋지긋한 1년 8개월 동안의 구직 생활을 어서 청산하고 싶었다. 최종 결과 발표 날이었다. 혹시나 떨어져도 나를 다독일 것이라고 수백 번 다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합격할 것이라는 긍정의 주문을 외웠다. 여느 때처럼 오후 3시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기계처럼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엔터 치는 습관이 있었는데, 발표 시간이 아닌데 벌써 화면이 바뀌었다.




안타깝게도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합격을 축하한다며 다음 전형을 안내하던 페이지와는 달리, 최종 면접 전형에서 내가 떨어졌다는 말을 우울하게 써놨다. 순간 믿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떨어지는 결과였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필기에서 떨어졌으면 좋았을 것을. 필기에서 떨어지나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나 결과는 매한가지인데 왜 그렇게 나를 희망 고문으로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인지. 온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감정을 감출 수가 없어서 건물 밖으로 뛰어나왔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그간 삼켰던 울음을 펑펑 쏟으며 내 노력의 결과가 또다시 거절받았다는 이유로 온 마음에 멍이 들어 버렸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순간을 맞이했다. 목표를 손에 넣지 못하는 순간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출근도 안 하고 원서도 안 썼다.




다음 이야기 : 최종 면접에서 떨어져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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