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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달 엿새 Oct 09. 2020

취업준비생의 하루

住, 食, 日課

의식주란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옷과 음식과 집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학생 신분을 벗으니 비로소 알게 된 하나는 이 기본이라는 의식주가 뒷받침되어야 일과를 보낼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리고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물며 집에만 있어도 유지비가 들어간다. 아직 돈을 벌지 못하는 취업준비생들의 일과는 최소한의 거주 공간과 음식으로 하루를 보낼 것이다. 衣(옷)는 그나마 같은 옷을 돌려 입으면 되기에 住(거주)와 食(끼니)보다는 신경을 덜 썼던 것 같다. 이렇게 미래를 위한 하루를 보낸다.



住 살 주


대학 졸업 후 살던 집은 노량진에 있는 다세대 주택이었다. 흔히 빌라라고 일컫는 구조로 방 두 개에 거실 겸 주방이 딸렸다. 보증금 500에 월세 60이었고 수도와 가스요금은 별도였다. 혼자서는 부담이 커서 타향살이 동지이자 대학 동기와 함께 반씩 나눠 살기로 했다. 집주인과 처음 만났다.


집주인 : “무슨 일을 해요?”

나 : “올해 대학 졸업하고 지금은 취업을 준비합니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해요”


집주인은 내게 대뜸 직업을 물었다. 아마도 월세 지급능력을 가늠해 본 것이리라. 내 대답이 끝나자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잠깐의 어색함 끝에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이 오갔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사회에서는 내 직업을 가장 먼저 물어본다는 것과 거주 비용은 꽤 크다는 것을.



2018년 6월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서울에서 혼자 사는 청년가구 중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 불리는 곳에서 사는 주거빈곤 가구의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28일 통계청의 'KOSTAT 통계플러스' 여름호에 실린 '지난 20년 우리가 사는 집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슈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1인 20∼34세 청년가구 중 주거빈곤가구의 비율은 2005년 34.0%, 2010년 36.3%, 2015년 37.2%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주거빈곤가구는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지하(반지하)·옥상(옥탑)거주 가구, 비닐하우스·고시원 등 주택 이외 기타 거처 거주 가구를 말한다.

전국 전체 청년 가구 중 주거빈곤상태에 있는 가구는 17.6%인 45만 가구다. 서울 청년 가구 중 주거빈곤상태에 있는 가구는 29.6%에 달한다. 지하와 옥상, 고시원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출처 : 서울 1인 청년가구 37% '지옥고'서 산다…"주거빈곤 역주행" (연합뉴스, 2018.6.28.)


더 큰 문제는 '지옥고'에서 숨을 쉬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2012년 국토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1인가구 청년의 69.9%는 소득의 30% 이상, 22.9%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한다고 발표했다. 즉, 주거비용 부담이 크므로 돈을 번다해도 삶의 질을 높이기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어쩔수없이 의식주에 들어가는 최소 비용을 제외한 채 나머지는 포기 한다. 연애도 사치니까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 내 집 마련 포기, 미래 포기... 이렇게 N포 세대가 된다. 이들이 N포 중년이 되지 않도록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



나는 대학 시절 개강을 앞두고 기숙사 합격 소식을 들을 때 가장 기뻤다. 그래도 적은 비용으로 숙식이 해결되니까 장학금 만큼이나 효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기숙사에 떨어지면 당장 고시원을 알아봐야 했다. 신식 건물이라고 자랑해도 한 평 남짓 공간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이 숨 가쁜 공간도 창문이 달려있거나 화장실이 붙으면 몇만 원씩 값이 올랐다. 내 짐을 맡기고 잠만 자면 되는 공간이라며 스스로 위안을 하며 학기마다 이삿짐을 싸고 풀었다. 가끔 뉴스에서 고시원 화재 소식을 듣는 날에는 비상 탈출 시나리오를 그리며 잠이 들었다. 갑갑함과 불안함이 정신없이 뒤섞이는 밤이었다.



이렇게 5년을 보내다가 처음으로 주거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다. 집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예산만 맞다면 나머지는 억지로 맞추면 될 일이었다. 한 평에 비해 3배 정도는 넓어진 나만의 방도 있었고 주방에서 요리도 할 수 있었다. 비록, 낡은 주택이라 비와 벌레에 취약할지라도 말이다. 그곳에서 매일 여의도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食 먹을 식


어느 퇴근길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여의도 방향을 쳐다봤다. 수산시장 방향으로 1호선 전철이 달렸고 그 너머로 63빌딩이 보였다. 시선을 당겨 바로 앞을 바라봤다. 저녁 6시가 넘어 어둑해진 시간에 식사하러 나온 청년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다. 많은 이들이 63을 배경으로 노량진의 저녁을 밝혔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 1147명을 상대로 식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취준생 83.1%가 하루 한끼 이상 굶고 있었다.

특히 하루에 1끼만 먹는다는 응답도 16.6%로 적지 않았다. 하루에 한끼만 먹는다는 응답은 6개월~1년 미만(19.4%)과 1년 이상(19.5%) 취업준비를 해온 취준생에게서 특히 많았다.

취준생들이 삼시세끼를 모두 챙기지 않는 이유로는 '세끼를 다 먹으면 식비부담이 크다'(42.3%)며 '경제적 부담'을 첫손으로 꼽았다.

출처 : 취준생 83% "하루 한끼 이상 굶어요"…한끼 평균 4906원 (중앙일보 2017.6.8.)


그들은 분명 저마다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본인의 목표를 위해 오늘도 걷는다는 점이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골목 한쪽에서 종이컵에 담긴 3,000원 짜리 컵밥을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쓱쓱 비벼 끼니를 해결했다. 조금 더 걸으니 맥도날드가 나왔다. 역시 그 안에는 젊은이들로 가득찼다. 한손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요약 노트에 눈을 떼지 않는 이도 있었다. 온종일 공부에 매진하다 맞이하는 잠깐의 여유였을 텐데 그 시간도 아까운 모양이었나 보다. 근처 편의점에서는 젊은이들이 각자 서서 도시락이나 삼각김밥을 먹고 있었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서 최상의 저녁을 골라 (아마도 그나마 행복, 아니면 지긋지긋한 메뉴였을) 망중한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와 비슷한 심정일 것 같았다. 대학 때는 저렴하고 다채로운(?) 메뉴가 제공되는 학생 식당을 단골로 찾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돈 만원으로 하루 끼니를 마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인턴 회사에서 점심 제공이 된다는 것이 큰 복지라는 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나 역시 노량진의 길거리 음식을 즐기며 돈도 아끼고 귀찮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기도 해서 삼시세끼는 점차 옛 이야기가 되어 갔다. 간단한 한 끼도 편하게 먹기 어려운 날이었다. 오로지 오늘을 살기 위해! 기능을 위한 배고픔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日課 일과


취업준비생의 일과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

(1997) 인문계열 90학번 졸업생은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 도서관 고정석에 자리를 잡고 입사시험을 준비한다. 점심 식사 후에는 취업정보실 게시판에서 본인이 지원할 만한 직종이 있는지 확인하며 한숨을 내쉰다.
출처 : [취업준비생의 하루] 도서관 출근으로 하루 시작 (한국대학신문 1997.9.29)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486 

(2009) 정보관리학과 4학년생은 타 대학에서 진행하는 채용 설명회에 참석했다. 평소 취업지원팀이나 인터넷 취업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 정보를 얻어 취업설명회에 가능한 많이 참석하려고 노력중이다. 또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후에는 도서관 멀티미디어실에서 입사 원서를 작성했다. 자기소개서의 경우 각 기업체가 요구하는 양식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 따로 준비해야한다.
출처 : 본교 4학년 취업준비생의 하루 (동대신문 2009.8.24.)
http://www.dgu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82

(2015) 졸업유예생 A씨는 오전 6~7시에 기상해 영어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9시에 신문과 취업사이트, 취업 카페의 정보를 확인한다. 10시부터 강남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토익 강의를 듣고 2시까지 학원 스터디와 과제를 진행한다. 오후에는 학교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취업스터디에 참여한다. 내용은 주로 기업분석이나 직무관련 조사, 자소서 평가 등이다. 오후 10시까지 학원 과제를 마무리하고 체력관리를 위해 한 시간 정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자정쯤 귀가한다.
출처 : [한국인의 삶] (3) ‘하루 19시간’ 오직 취업준비.. 취준생의 하루 (파이낸셜뉴스 2015.1.5.)
https://www.fnnews.com/news/201501051716289130

(2020) 취업준비생 김 모씨는 매주 토요일 오후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이용해  스터디에 참석한다. 다른 취준생들과 마케팅 직무와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각자가 준비한 시사 뉴스를 공유한다. 코로나 확산으로`랜선 스터디`체계를 가동하는 것이다.
출처 : 취업면접도 스터디도…취준생 `화상 세대`(매일경제 2020.9.14.)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20/09/948241/

 

나의 취준생 시절 일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사 내용과 비슷한 공부를 하면서 인턴 신분이었기에 매일 공공기관으로 향했다. 취업 준비에도 돈이 들어가기에 월급이 몹시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교재, 강의 비용, 자격증 시험 비용 등은 물론 월세와 각종 공과금, 핸드폰 요금, 교통비, 학자금 대출 이자 비용으로 50만 원 정도가 고정비로 나갔다. 



매달 10일에 월급으로 100만원이 입금되면 금세 반토막으로 변한 통장 잔고를 바라봤다. 청약 통장을 만들어 2만 원씩 넣었다. 이 통장으로 집이 생길 거라는 은행 직원의 말처럼 ‘언젠가는 내 집이 생기겠지. 그때는 돈도 펑펑 쓸 수 있을거야’라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티클 모아 태산'이 실현되리라 믿었다. 10만원씩 열달을 모으니 100만원이 쌓였다. 서울 빌라 전세도 1억으로 부족하다는데 어느 세월에 전세로 옮길지 답답했다. 별 수가 없었다. 취업에 성공하면 나아지리라는 기대로 내 뇌구조는 오로지 취업 성공 뿐이었다.


AM 7:30

집을 나섰다.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좁은 도로를 내려가면 노량진역에 도착했다. 9호선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역에 내렸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오늘의 경제 라디오를 들으며 어떤 현안을 파악할지, 오늘 집중해서 공부할 내용은 무엇일지 생각하다 보면 내 자리에 도착했다.


AM 8:00

아무도 없는 사무실. 회의실 탁자에 도착한 신문을 펼치며 생각해볼 이슈를 빠르게 훑었다. 헤드라인을 위주로 체크해놓고 짬 날 때 기사 분석을 할 계획이었다. 9시가 되면 각자 자리에서 업무를 진행했다. 나는 부서원의 전화를 대신 받고 잔업이 필요한 일에 투입되었다. 이를테면 중요한 회의에 필요한 잡무나 서류 복사 같은 일이었다.


PM 12:00

구내식당에서 빠르게 점심을 먹고 사내 도서관으로 향했다. 함께 입사 준비를 하던 인턴 동기와 전날 작성한 논술 시험지를 바꿔 보며 어땠는지 감상을 나누고 전공 시험 범위와 시사 이슈 중에서 직접 고른 개념과 주제를 건넸다. 서로에게 모의고사 문제를 제출한 셈이다. 각자 공부한 내용을 동료와 말로 나누면서 면접도 연습한 시간이었다.


PM 1:00

오후도 오전과 비슷한 일과를 보내며 짬이 날 때 신문 기사나 라디오를 다시 들으며 시사 이슈를 정리했다. 가끔 내가 근무한 기관의 업무에 궁금증이 생기면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께 질문을 하고 의견을 들어보았다.


PM 7:00

퇴근 후 집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2시간은 전공 시험 과목에 할애했다. 경영학 교재와 재무관리 책을 살펴보며 개념을 복습하고 점심시간에 만난 동기가 건네준 키워드를 직접 작성했다. 이후 1시간은 시사 논술 주제를 두고 시간을 맞춰 B4용지 2쪽에 맞춰 논술을 연습했다. 이후 시중 인·적성 문제집으로 언어, 수리, 자료 해석 영역을 위주로 문제를 풀고 해설을 째려봤다. 역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자꾸 보니까 유형이 익숙해졌다. 영어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도전한 기관은 1차 면접 때 영어 스피킹 시험이 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문법과 독해 위주로 배운 영어는 말하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럴 때는 별수가 없었다. 오픽 책을 펼쳐 답변 문장을 읽고 또 외웠다. 그렇게 자정을 넘기며 공부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는 도전하는 분야와 비슷한 곳을 골라 입사 원서를 썼고, 필기시험이 있는 날이면 시험을 치러 다녔다. 가끔 면접 일정이 생기면 면접 대비 속성 스터디도 참여했다. 어쨌든, 내가 지원한 분야와 비슷한 곳이라면 필기든 면접이든 모두 다 경험이 되리라 판단했기에 주말도 오로지 취업 준비로 가득 찼다.




그해 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전국 방방곡곡이 물난리가 났는데 내가 살던 집도 비를 피할 수가 없었다. 분명 1층이고, 위층에 주인이 사는데 신기하게도 천장에 빗물이 고였다. 막대로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빗물이 쏟아져 내 방에 가득 찰 것 같았다. 며칠 후 아랫집에서 연기가 올라와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번개탄을 피워 벌레를 쫓기 위함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불을 목격해 간담을 쓸어내렸다. 그것도 잠시. 비가 연거푸 내리고 연기가 피어올라도 내게는 10월에 있을 공공기관 필기시험이 가장 중요했다. 취뽀를 위한 나의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여름이 지나고 9월이 되니 공채 공고가 올라오면서 필기시험 일정이 확정되었다. 내가 도전한 기관의 필기시험 날짜는 취준생들 사이에서 A매치 데이라고 불렸다. A매치 데이란 주요 금융공기업들이 같은 날 필기시험을 보는 날을 뜻하는데, 이는 곧 해당 기관 지원자들에게 운명의 날이었다. 시험 날짜가 확정되니 시간이 더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 전공과목과 시사 이슈를 정리한 노트를 계속 반복하면서 예상 문제를 놓고 논술 답안지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적고 보완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필기 시험 날을 맞이 하는데...




다음 이야기 : 운명의 날,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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