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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Oct 13. 2023

우리집 세대교체

100.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아이구, 아줌마구나. 안녕하셨슈?”

형제상회 아낙네가 아내와 반갑게 인사한다.

“벌써 일 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마곡동 어머니마저 오시지 않은 것을 확인한 아낙이 말끝을 흐린다.

대신 아이와 아이 엄마가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 어조가 다시 높아진다.

“아이가 있으니까 분위기가 환해졌어요. 밝고 좋네요.”

웬만하면 ‘할머니는요?’라고 물어볼 법도 한데, 주인장은 더 말이 없다.

산이 할배는 오해했다. 마곡동 어머니는 올 김장용 새우젓과 반찬용 어리굴젓 등을 전화로 주문했다. 아낙이 어머니 안부를 묻지 않은 것은 전화 주문 때 이미 인사를 나눴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것이다.

이제 우리 동행하는 거야. 방아간에서 약속.

“우리 어머니가 전화로 주문하신 거 잘 받았어요. 우리도 어리굴젓 한 통 받았죠.”

“예? 할머니가 주문하셨어요? 주문하시는 분이 너무 많아 누가 누군지 몰랐어요.”

아낙은 어머니가 안 오신 것을 보고 지레 뭔 일이 났구나, 넘겨짚었던 것이다. ‘전에는 시댁 어머니가, 이번엔 친정어머니가 힘들어지셨나 보다.’ 공연히 오지랖을 떨어 단골의 아픈 곳을 건드릴까 봐, 아예 말을 아꼈던 것이다.

“할머니는 건강하시죠? 전화로 주문할 때는 꼭 내가 누군지 말씀하셔야 해요. ‘안사돈 할머니 둘이서 꼭 붙어 다니던 사람이라우’라고.”

“모르셨구나. 어머니는 그냥저냥 해요.”

“학교 다니니?”

“예. 초등학교 1학년이요.”

주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갈치 박스 벽에 붙은 창개구리

머쓱해진 할배는 슬그머니 상점에서 빠져나와 건너편 생선 가게 앞을 어슬렁거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른 가게에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았던 할배였다. 어머니들 따라 추젓, 오젓, 육젓의 맛을 보며 귀동냥을 하거나, 아내를 따라 열두어 가지 반찬용 젓갈이 담겨있는 냉장고 앞을 오가며 참견하느라 다른 상점을 거들떠 볼 겨를이 없었다.

두 어머니는 이곳에 오면 오로지 새우젓에만 집중했다. 홍은동 어머니는 평소 입맛이 없으면 새우젓만을 반찬으로 식사를 하시곤 했다. 새우젓 한 종지에 고춧가루와 깨소금 그리고 종종 썬 파를 넣으면, 어머니 표 ‘짭짤이’ 반찬이 완성됐다. 그걸 어떻게 잡숫나 싶었지만, 요즘은 산이 할배도 가끔 순 새우젓을 밥상에 올린다. 물론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찌개나 구이 따위는 반드시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콩나물국밥도 새우젓 간을 해야 개운하고 감칠맛 난다.

아이는 청개구리에 쏙 빠졌다

마곡동 어머니는 냉동고에 새우젓이 떨어지면 불안해하셨다. 강화도에 가서라도 사 왔다. 새우젓을 양념으로만 쓰는데도 우리보다 두 배는 빨리 없어진다. 반찬이나 양념에 쓰는 것은 육젓을 쓴다. 오월 새우보다 유월 새우는 곱절은 크고 통통하다. 새우젓 값도 세 배 가까이 비싸다. 형제상회에서는 보관도 산패를 막기 위해 대형냉장고에 따로 한다.

두 분은 여행 가면 음식이나 방문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취향을 맞춰나가는 편이었다. 적잖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단 광천 새우젓에 관한 한 처음부터 두 분은 찰떡처럼 의기투합했다. 때문에 광천 젓갈 여행은, 간월암 낙조처럼 저물어가는 두 분의 말년을 아름답게 빛내는, 연중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두 분이 아니었으면, 사실 우리 부부가 광천까지 새우젓 사러 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아이가 강조할 때 쓰는 표현처럼 어쩌면 ‘1도 없었’을지 모른다.

두 분 덕에 엔젠가부터 우리도 덩달아 광천행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여름 무더위가 지나고 추석이 가까워지면 두 분은 뵐 때마다 어김없이 물었다. ‘올해는 광천에 언제 갈래?’ 그 채근이 귀찮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지난해 마곡동 어머니는 젓갈 냄새가 생각만 해도 진저리칠 정도로 습하고 더운 한여름에도 광천 가는 날 잡자고 성화하셨다. “새우젓은 일찍 사야 좋아. 그래야 좋은 거 사지.” 속이 뻔히 보이는, 귀여운 억지를 부리기도 하셨다.

집에서 떠날 땐 씩씩했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할배는 마음이 겉돈다. 공연히 남의 가게 앞을 오락가락한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멀쩡한 게를 뒤집어 보거나, 고무대야를 탈출한 놈들을 다시 넣어주기도 했다. 주인장 귀찮게 ‘이건 무슨 게죠?’ ‘힘이 엄청 좋네요’라고 묻거나 말걸기도 했다.

“돌게요.”

“아, 어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던 박하지구나. 게장 담그는 박하지.”

꽃게보다는 작지만, 대야 속에서만 뒤척거리는 꽃게와 달리 힘은 장사여서 여러 놈이 대야의 벽을 넘어 시장 바닥을 기고 있었다. 몸통 좌우에 날카로운 톱날이 없는 게 꽃게와 달랐다.

혼자 청승 떠는 게 눈치보였는지 할배는 아이를 찾았다.. 처음엔 할머니와 엄마를 쫓아다니며 참견하던 아이가 재미가 없었는지 가정용 카트에 앉아 있었다.

금새 잠 들었다.

마침 청개구리 한 마리가 폴짝폴짝 아물전 앞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다가왔을 땐 갈치가 담긴 스티로폼 박스에 붙어 있었다.

“와 개구리다. 시장에도 개구리가 있네. 어떻게 저렇게 붙어있어?”

아이가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춘다. 할배도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저건 청개구리야. 등에 무늬가 없고, 순전히 풀색이잖아. 개구리보다 훨씬 작고. 엄지손가락만 한 게 다 큰 놈이야.”

한참을 살피다가 청개구리가 박스 틈으로 사라졌다. 아이도 일어났다. 할배는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미로처럼 복잡한 젓갈 시장통을 돌아다녔다.     

마곡동 어머니는 진작에 말씀하셨다. 올해부터는 김장 각자 한다, 새우젓도 각자 산다, 광천까지는 못 가고 주문할 거다! 미구에 닥칠 거라 각오했던 일이었다. 그래도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런 변화는 없었다. 어머니는 추석 연휴 전에 일찌감치 전화로 새우젓과 어리굴젓 낙지젓 따위를 주문했고, 아이네와 우리에게 젓갈 한 병씩 주셨다.

심심한 소심이를 소떡소떡으로 달래려 헸지만 예전같지 않다.

둘이서라도 가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두 어머니가 길을 튼 추억의 광천행이니 가면 좋겠지만, 김장용 추젓도 남아 있고, 인왕시장에서 산 육젓도 있었다. 이 고민은 홍은동 어머니가 해결해줬다. 어머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올해는 광천에 가지 않니? 가면 육젓 조금만 사 오너라”라고 사실상 지시를 했다. 인왕시장에서 육젓을 사 간단한 양념을 해 드렸는데, 입맛에 맞지 않았나 보다.

마곡동 어머니가 불참을 선언한 뒤, 상당히 공들여 추진한 모사도 원만하게 해결됐다. 아이가 광천행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고민 끝은 물론 광천행의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처음 제안했을 때 아이는 한 방에 일축했다. 말도 안 하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말하기도 싫으니 두 번 다시 꺼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과 설득에 마음을 조금씩 돌리긴 했지만, ‘안 간다’에서 ‘간다’로 넘어가는 벽은 15층 아파트보다 높았다. 아이는 그 앞에 멈춰 있었다.

올해도 엄청 샀다. 이건 일차분이다.

아이 엄마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엄마가 거들자 아이는 뿌리부터 흔들렸다. 과연 아이는 엄마의 껌딱지였다. 할머니들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광천행을 아이 엄마도 한번 가고 싶었던지 적극 나섰다. “나도 갈 건데 주원인 안 갈래?” ‘좋아.’

문제는 아이의 마음이 흔쾌하지 않았다는 것. 아이는 엄마를 따라간다는 것 외에는 기대할 게 없었다. 그건 산이 할배의 잔머리가 해결했다.

“주원아, 거기 가면 맛 있는 게 두 가지 있거든. 하나는 회, 특히 요즘 살이 통통히 오른 전어회가 유명하고, 다른 하나는 홍성 쇠고기야. 주원이는 뭘 먹을래?” “두말하면 잔소리, 회.” “왕할머니들은 쇠고기도 잘 드셨는데.” “난 회야, 회.”

그래도 산이 할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한글날 연휴 아이의 일정이 너무나 빡빡했다. 토요일은 덧니를 빼느라 긴장하고 또 김포 봄이네 집에서 놀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했다. 일요일엔 이사한 이모네 집에서 쌍둥이 동생과 세 이모랑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얼마나 힘들까. “아이가 피곤해서 가기 싫다고 하면 둘만 가자”라고 산이 할머니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기우였다. 아이는 약속한 정시에 아파트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에게 충청남도 광천까지는 먼, 아니 지루한 거리였다. 공휴일 새벽이어서 차는 막히지 않았지만, 제 엄마는 차에 타고서 얼마지 않아 잠이 들었고, 할머니는 운전하느라 다른 데 신경 쓸 수 없었다. 조수석의 할아버지마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말수가 줄었다. 화성휴게소에서 소떡소떡으로 아이의 심심함을 조금 달래주려 했지만, 옛날 같지가 않았다. 휴게소를 출발하고 서해대교 구간에 들어서면서 아이는 드디어 칭얼댔다. 심심해!

아침은 광천의 자랑, 소불고기 백반

“소심아, 심심이랑 놀면 되지 뭐가 그리 심심해. 소심이 동생이 심심이잖아.”

아이는 학급에서 발표 시간에 빤히 저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고는 입이 막히고 눈이 캄캄해져 한마디도 못 하고 내려온 적이 있다. 그런 주원이를 할배는 소심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걸 여기다 끌어댔으니 웃기지도 않는 아재 개그였다.

“아냐, 이번엔 잘 했다고 선생님에게 칭찬도 받았어. ‘편지’를 주제로 했다는데 선생님이 깊이도 있고, 창조적이었다는 거야.”

심드렁한 아이를 엄마가 두둔했다.

“그래? 좋아. 주원아 아재 개그 할까? 고추장보다 더 매운 건?” “초고추장.” “초고추장보다 더 매운 건?” “태양초고추장.” 아재 개그는 답을 알면 하품만 나온다. 아이는 다 알고 있었다. “그러면 주원이가 내 봐.”

가만히 있던 아이가 입을 열었다. “모기에 물리면 어디가 아파?” “그걸 어떻게 알아. 모기에 물린 곳이 아프지.” “이건 아재 개그란 말이야..” “그래?” “목이 아픈 거 아냐?” 할매가 맞췄다. “다른 거 해봐.”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의 지명은?” “제주도? 제주도를 삼다도라고 하잖아.” “그건 교과서지 아재 개그가 아냐.” “모르겠는데.” “분당.” “왜?” “바람이 분당~.”

고북상회 아저씨와 작두콩 앞에서 기념사진.

이번엔 할머니가 퀴즈를 하나 냈다.

“할아버지가 취했는지 어떻게 알게.”

“난 알아.”

아이고, 할배가 아이 앞에서 주정을 부렸나 보다.

“할아버지는 주원네서 술주정한 적이 없는데.”

“할아버지는 취하면 꼭 그러잖아. ‘주원아, 노래해봐.’”

다들 배꼽을 잡았다. 꼭 맞는 말이었다.

“더 취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

“주원아, 노래하고 춤춰 봐! 그러잖아.”
 심심한 아이를 달래려다 어른들이 뒤집어졌다. 그러자 광천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두 분 어머니의 큰손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제법 샀다. 형제상회에서 산이네는 육젓 오젓 작은 것 한 통씩, 어리굴젓, 멸치 액젓 한 통, 멸치 남해안 것과 서해안 것 두 박스. 아이네는 길동 시댁에 드릴 육젓 한 통, 백 명란젓, 낙지젓, 어리굴젓, 조개젓 등. 주인장은 서비스라며 오징어젓을 한 통씩 그리고 아이에게는 광천김 한 박스를 선물했다. 기름집에서는 들기름과 참기름 각 1병씩을 샀고, 고북상회에서는 고추 열 근 사서 고춧가루로 빻고, 고구마 15㎏을 샀다. 노점에서는 예산국수 다섯 묶음, 도라지, 사과, 갈치 등을 챙겼다. 아이도 장에 가면 전통 과자를 사겠다며 용돈을 챙겨왔다는데 장터를 두 번이나 돌았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생애 첫 손수 장보기였는데….

수영성 누각에서 역사 공부.

돌아오면서였다. 보령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수영성 아래 칼국수 식당에서 키칼, 오키칼, 비오키칼 세 그릇을 먹고, 수영성 한 바퀴 돌았다. 칼국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먹는 아이여서, 전어회가 없어도 군소리 없었고, 장터에서의 서운함도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는 기억의 치부책에 그 사실을 꼭 기록을 해두었을 것이다. 서울에 가면 반드시 전어부터 한 접시 먹어야 한다.

돌아오는 길이다. 할배는 작정하고 아이 들으라고 중얼거렸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마곡동 왕할머니, 홍은동 왕할머니랑 등 넷이서 왔지. 홍은동 왕할머니는 요양병원에 있으면서도 한번 오셨어. 재작년부터는 마곡동 왕할머니만 오셨고. 앞으로 두 분은 못 오실 거 같아. 세월에 몸이 너무 닳고 닳은 거야. 올해는 대신 주원이와 엄마가 같이 와줘 다행이야. 일단 숫자는 같잖아.”

엄마와 수영성 남문에서

“그럼, 선수 교체네.”

“맞았어. 그런데 선수 교체는 같은데 운동경기에서의 선수 교체와는 달라. 경기에서는 나왔던 선수가 다시 뛸 수 있지만, 두 왕할머니는 그렇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는 교체하긴 했는데 세대교체를 한 거지. 세대교체.”

“지금까지는 산이 할머니가 운전해서 두 왕할머니를 모셨으니까, 앞으로 몇 년이 지나 할머니가 운전대를 놓으면 주원이 엄마가 열심히 운전 연습해서 할머니들을 모시고 와야 할 거야. 할아버지는 빼도 돼. 그때쯤엔 힘도 빠져 짐 나르지도 못할 테니까. 광천 여행은 여인 천하야, 젓갈은 주로 여자들이 쓰잖아. 주원이도 커서 운전도 하고, 아기도 생기면 엄마 모시고 다녀야 해. 알았지?”

“주원이가 유치원 때 노상 부르던 노래 있지? ‘역사는 흐른다’ 말이야. 역사는 흐르는데 그렇게 변하면서 흘러. 아이는 젊어지고, 젊은이는 장년이 되고, 장년은 노인이 되고.”

잠자코 있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난 변하지 않아. 엄마랑 이렇게 다닐 거야.”



우리 딸 최고!

할배의 일방적인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아이는 곧 잠이 들었다. 엄마도 자고, 아이도 자고. 노인데 둘만 눈을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해미 옆동네 고북의 신상정미소에서 10㎏짜리 향쌀 3포대와 찹쌀 현미 1포대를 샀다. 트렁크 짐을 새로 부리느라 부산을 떨었지만, 모녀는 깨지 않았다. 서해안 고속도로 종점인 일직을 지나 서울로 진입하는 금천쯤 와서야 일어났다. 무려 3시간 가까이 잤다.

“그래, 열심히 자둬라. 그래야 10년쯤 뒤엔 우리가 뒷자리로, 너희는 앞자리로, 좌석 교체를 하게 될 테니까.”

할배 개구리 등으로 청개구리 한 마리 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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