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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찬 Feb 10. 2023

"오곡밥, 하루 9번이나 먹는다고?"

89. 산이 할머니네 이야기, 정월대보름

마곡동 어머니는 음식에 ‘진심’이었다. 평소 당신이 잡숫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수 요리하거나 사서 잡쉈다. 추석엔 송편, 설엔 만두, 동지엔 팥죽 등 때만 되면 절기 음식을 빠트리지 않았다. 손이 없다는 정월 말날(오일)이 되면 우리 음식 맛의 근본인 장을 꼭 손수 담그셨다. 예외가 하나 있었으니 정월대보름 음식이었다. 장가든 지 37년째지만 대보름날 마곡동 어머니에게서 오곡밥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

가만히 보니 아이는 소워 비는 게 아니라 장난치고 있다.

반면 홍은동 어머니는 제철 음식, 절기 음식을 제대로 챙긴 적이 별로 없다. 평생 손수 벌어서 먹고사는 데 치이다 보니 챙긴 겨를이 없었고, 그것이 습관 되어 살림살이가 안정된 뒤에도 절기건 명절이건 특별한 음식을 장만하지 않았다. 설날 떡국 정도가 고작이었다. 전이건 송편이건 잘한다는 상점에서 샀다. 어머니에게도 예외가 있으니 그것이 정월 대보름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날은 몰라도 대보름날만큼은 쌀, 조, 수수, 팥, 검은콩 등으로 지은 오곡밥은 기본이고, 시래기를 한 솥 삶고 고사리, 취, 가지 등 갖가지 묵나물을 물에 불려 삶아 무쳤다. 그리고 밥과 나물을 4남매 집에 돌렸다. 덕분에 아내는 땅콩이나 호두 등 부럼만 장만하면 대보름을 풍성하게 지낼 수 있었다.

대보름 다음날이었다. 어머니가 새벽에 두 번씩이나 아내에게 전화했다. 아침 먹을 때야 확인하고 전화했더니 다짜고짜 이러시더란다. “보연이 에미, 이제 어른 다 됐더라.” 

“예?” 

환갑이 지난 지 3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어른이라니? 긴장하고 있는데 뒤따르는 이야기에 아내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밝아졌다.

“오곡밥이랑 나물이랑 맛이 아주 좋더라.”

“아이구, 감사합니다. 어머니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아내는 실제 조마조마했다. 언젠가는 자신도 어머니에게 대보름 밥에 보답하리라 했는데 맛이 없으면 어떨까 싶어 마음을 조렸다. 특히 대보름날 집에서 아침 일찍 지은 오곡밥과 무친 나물을 들고 병원으로 면회 갔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에 가슴이 반쯤 무너졌다. 

홍은동 어머니에게 전달한 오곡밥과 나물

“그런 걸 뭐하러 가져왔대? 여기서도 다 나오는데.”

같은 말도 퉁명스럽게 하기 일쑤인 어머니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아내는 몹시 심드렁했다. ‘작년부터 준비해 마련한 건데~. 괜히 했나? 우리나 먹을걸.’ 그런 심정이 표정에 역력했다. 사실 아내는 지난해 마당 텃밭에서 키운 무에서 청을 도려내어 시래기를 만들고, 신통찮았던 가지 농사에서 거둔 것들을 먹지 않고 썰어 말렸고, 취도 사두었다. 1년 농사였는데~, 아내는 속상했던지, “어머니는 같은 말도 꼭 그렇게 하신대”라고 기어이 한마디 뱉었다.

그런 어머니였는데 대반전이었다. “맛이 좋길래 우리 방 노인네들이랑 몇 숟갈씩 나눠 먹었다. 다들 좋아하더라. 병원에서 준 것과 비교할 수 없었지.” 어머니는 며느리의 오곡밥에 어지간히 만족스러웠나 보다. 그 칭찬을 하려고 새벽부터 전화를 하셨던 것이다.

이튿날 아이 엄마가 사진을 톡방에 띄웠다. 주원네서도 조촐하게 보름 행사를 했나 보다, 아파트 사이로 뜬 보름달을 놀이터에서 보며 대보름 기원도 하고, 그네나 시소도 타며 놀고 있었다. 아이가 달을 향해 두 손 모으고 눈 감고 기도하는 사진도 있었다. 뭔 소원을 저렇게 진지하게 빌었을까?

엄마 

길동 할머니가 당번이었던 월, 화요일이 지나고 수요일 아이네로 갔다. 보름날 남겨둔 오곡밥과 나물을 챙겼다. 올해부터 학생이 되니, 아이도 세시풍속에 대해 알 것은 알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철이 든다는 게 철을 안다는 것이고 철을 안다는 것은 명절과 절기의 유래와 의미를 안다는 것이다. 설, 대보름, 한식, 단오, 유두, 추석, 동지 등은 전통 명절이고 입춘 우수 경칩 청명 등은 24절기다. 농경사회에서 절기는 농사를 짓는 데 반드시 알아야 할 기초지식이었고, 그것을 온몸으로 체득해야 자신은 물론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명절은 농사의 풍흉을 관장하는 천지신명께 감사의 예를 올리고 다산을 간구하며, 노동력의 원천인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날이다. 지금은 밥벌이의 중심이 제조업, 아니 금융서비스업으로 바뀐 고도 금융산업사회라고 하지만 천하지대본은 바뀌지 않았다. 농경 수산업 등 자연에서 취하는 1차 산업이 망가지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아빠의 기도

아이는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배고프다고 노래한다. 그 꿍꿍이를 잘 아는 할머니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걸 모르는 할아버지는 그저 뭔가 먹고 싶어하는 아이가 기특해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간식은 무엇이었는지 이것저것 캐묻는다. 할머니가 주차하기 위해 먼저 내리게 하자 아이는 이때다 싶은지 할아버지 손을 잡고 끈다. 평소라면 할아버지가 사정해도 손을 주지 않던 아이였으니 이상하다.

“할아버지 나랑 먼저 가자.” 

“할머니는 두고?”

“먼저 가자. 할머니 차 세우고 오시겠지.” 

“그래, 알았어.”

‘이게 웬 떡이야’ 할아버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늙어갈수록 세 살 아이에게라도 인정을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가 보다. 

“어디 가려고?”

“할아버지, 따라와."

바로 이 맛이야!

아이가 이끌고 가다가 선 곳은 상가 1층 오마뎅.

“피아노 가기 전에 간식 먹자.”

“그래? 할머니는 피아노 끝나고 보습학원 가기 전에 간식 먹는 것으로 알고 있던데.”

“그래도 되는데, 피아노 하기 전에 먹고, 피아노 끝난 뒤 또 먹으면 더 좋잖아. 먼저 먹는 건 할머니에게 숨기고.”

“그렇게 배고파?”

“응.”

아이는 컵떡볶이와 치즈어묵 하나씩 주문했다. 어른에게도 한 끼가 될 만한 양이었다. ‘저걸 먹고 또 1시간 뒤 더 먹겠다는 거야?’ 놀라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꼬마 손님이 떡 어묵 2개와 닭가슴살 어묵 2개를 시켜 먹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저 황홀한 먹성!


오뎅 국물도 훌훌 마시고.

보습학원에서 데리고 올 때였다. 

“대보름날 보내준 사진 봤더니 주원이가 두 손 모으고 눈 감고 기도하더라. 뭐라고 기도했어? 보름달 보고 기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거든.”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눈만 감고 있었어.”

“엥?”

엄마 아빠가 시키니까 그런 자세를 취했나 보다. 아무래도 아이에게 대보름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주원이만 했을 땐 정월 대보름은 설 만큼이나 중요하고 큰 명절이었어~.” 설이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개인과 집단 즉 가족은 물론 마을 전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명절이었지. 그때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농사는 혼자서 하기보다는 여럿이서 같이 할 게 많아. 모내기나 추수는 물론 농로나 수로 만드는 일 등을 어떻게 혼자 할 수 있겠니? 그런 농촌에서는 가족이 잘 살기 위해서도 마을이 잘 살아야 하고, 가족이 건강하기 위해서도 마을이 건강해야 했지. 마을의 안녕이 개개인의 안녕이고, 마을의 풍요가 개개인의 풍요로 이어졌던 거야. 

나는 행복한 소녀!

“주원이 쥐불놀이 알아?” 

“그럼. 선생님한테 들었어.”

그날 달집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들판 곳곳을 쏘다니며 쥐불놀이를 했어. 논이며 밭이며 덤불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쥐불이 피어올랐지. 그러면 덤불 속에 있던 병해충들이며 잡초 씨앗들이 모두 타버려 농사에 도움이 되는 거야. 못으로 여기저기 구멍 낸 통조림 깡통을 철사 줄로 묶은 뒤 깡통에 불씨와 나무토막을 넣고는 휘휘 돌리며 놀기도 했지. 대보름날 마을 논밭은 온통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불로 가득했어. 얼마나 멋있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불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은 설날 선물받은 새옷(설빔)을 태워 먹기 일쑤였지. 일년에 한 번 밖에 못 얻어 입는 그 아까운 새 옷을 말이야. 

그날 아이들은 하루에 밥을 아홉 끼나 먹어야 했지. 그것도 성이 다른 집, 그러니까 가족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 그냥 이웃집에 가서 말이야. 이웃과 함께 밥도 나누어 먹고, 술도 나누어 마시고 놀이도 이웃과 함께 하라는 것이었어. 설날 주원이는 집에서 윷놀이를 했잖아. 그런데 대보름날 윷놀이는 마을 사람들이 넓은 마당에 모여 함께 놀았지. 모나 윳이 나오면 꽹가리도 치고 북도 치면서 덩실덩실 춤도 추고. 

대보름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날이었지. 아침 일찍 당산에서 마을 어른들이 모여 동제를 치르는 것으로 마을의 대보름 행사를 시작하는 것이나, 보름달이 뜰 때 함께 마련한 달집을 마을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태우며 나와 너와 그리고 우리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대보름 행사가 마무리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지.

“아홉 번이나 밥을 먹었다고?”

“그래, 아홉 번.”

“난 아홉 개 먹을래. 쌀 아홉 톨!” 

오곡밥 한 숟가락에

장황한 설명 가운데 아이가 관심갖는 것은 하나, 오곡밥을 아홉 번 먹는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거라도 건진 게 어딘가. 대보름날 이웃집 돌아다니며 밥을 먹었다는 걸 아는 사람, 아니 어른이라도 지금 몇이나 될까. 

그날 저녁 집에서 가져온 오곡밥과 나물을 밥상에 풀어놓았다. 

“이게 오곡밥이야?” 

“맞아, 요건 찹쌀, 요기 쬐끄만 알갱이는 좁쌀, 빨간 건 팥 그리고 이건 콩. 그렇게 오곡이 들어갔다고 해서 오곡밥이지.” 오곡 속에는 건강에 필요한 영양분이 골고루 담겨 있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물론이고 비타민 무기질 등 성장과 신진대사에 필요한 영양소 말이야. 할아버지 설명이 길어지자 할머니가 말을 가로챈다.

“그럼 이건 뭐야.”

“그건 고사리나물. 저건 가지, 이건 무나물이고.”

고사리 나물 한 젓가락, 끝!

아이는 오곡밥과 나물을 두어 차례 먹고는 숟가락을 놓는다. 아까 먹었던 컵 떡볶이와 치즈 오뎅이 뱃속에 남아 있었나 보다. 할머니가 오곡밥을 김에 싸서 서너 번 더 먹이자 뒤로 물러나 앉는다. 

억지로 먹이면 탈 난다. 댓 숟갈이라도 먹은 게 어딘가. 이상하다며 입에 넣은 것도 뱉는 아이도 있다지 않은가? 대보름날 오곡밥 먹은 기억을 아이는 잊지 않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보다. 그러나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다 만다. 

“오곡밥을 먹는다는 건 보름달을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저 큰 보름달을 내 몸 안에 받아들이는 거지. 옛날 엄마는 보름달 먹는 꿈을 꾸면 달처럼 주원이처럼 탐스러운 아이를 갖는다고 믿었거든.”

산이네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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