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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O May 07. 2022

내가 하는 일

두번째 편지_우리가 이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모처럼 쉬는 날입니다. 

 

겨울의 회색빛을 벗고, 자연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습니다. 완연한 봄 날씨입니다.

그렇다고 달력의 빨간 날이 소방관에게 무슨 큰 의미인가 싶기도 합니다.
소방관에게 쉬는 날이란, 밤샘 근무 뒤 일이 없는 다음 날, 빛이 새지 않는 암막 커튼을 쳐두고 종일 잠에 취하는 날이니까요.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아빠가, 남편이 집에 있는 휴일이 귀합니다.

이런 날에는 어디든 다녀와야 하루가 아깝지 않을 테지요. 그렇게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우르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집을 나섭니다. 목적지야 아내가 챙길 일입니다. 낮 근무와 밤 근무 번갈아 가며 한 달을 일하는 소방관들은 주말이나 휴일에 쉬는 날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평일 비번이 있는 날도 있으니 따지고 보면 매한가지 아니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답니다.      


가끔 사람의 의식이라는 것이 무섭습니다.

푸근한 햇볕을 쬐면서, 맑디맑은 공기를 들이쉬면서 걷는 휴일의 편안함을 깨고 죽은 자의 형상을 떠올립니다. 문득문득 이러니 떨쳐내도 이내 다시 나타납니다.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제가 근무하는 부산 소방특수구조단 낙동강 수상구조대는 요즘 일련의 사건들로 쉽지 않은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강물에 스스로 몸을 던져 실종된 사람만 다섯이 넘습니다. 더러는 떠올랐고, 더러는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한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40여일이 지났고, 얼마나 더 찾아야 할지 막연하기만 합니다.    

  

“팀장님! ROV 라인이 물속 철근 더미에 완전히 꼬여서 풀어지지 않습니다!”     


죽은 자를 찾기 위해 투입했던 수중 탐색 로봇(ROV : Remotely Operated Vehicle)의
연결 라인이 물속에서 엉킨 것입니다.

구조대원 막내가 직접 물속으로 들어간 지 5분 만에 올라와 사색이 된 얼굴로 소리쳤습니다. 낙동강 끝 쪽의 바다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이 큰 백파와 함께 우리가 타고 있는 구조 보트를 자꾸만 수색지점 반대편으로 멀리 밀어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팀장인 저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구조대원을 물속으로 밀어 넣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사람이었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장비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온몸은 젖어있었고, 심적 부담으로 극도로 민감해져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았어도 금방 찾으리라 믿었습니다.
지금 겪는 심신의 피로쯤은 우리가 찾으려는 누군가의 형상을 보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지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생각은 보기 좋게 어긋났고, 그 무엇도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새벽녘에 다리 난간을 넘어 스스럼없이 자기의 몸을 차디찬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오후 늦게야 그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의 요청으로 우리는 낙동강 유역에서 가장 험하다는 구포대교 강바닥을 수색했습니다. 이미 골든 타임은 훨씬 넘은 지 오래, 구조에서 수색과 인양의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실 매우 어려웠습니다. 지금의 구포다리를 만들면서 예전에 있던 다리를 그대로 강 아래로 주저앉혔는데, 그때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이 징그럽게 엉키며 15m 물속에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불규칙하게 휘어지며 엉킨 철든 더미에 자칫 걸리거나 갇히기라도 한다면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말이죠. 거기에 탁하디탁한 강물은 손을 눈앞에 바짝 가져가야 겨우 보일 만큼의 시야만 허락했습니다. 7년을 넘게 일한 저도 가장 두려워하는 곳이었던 이유였지요. 그렇다 한 듯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도 죽은 자의 가족은 눈물조차 마른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화를 겁니다.     


 

“오늘이면 떠올라야 하지 않나요?”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겨우겨우 끄집어내 설명하지만 이조차 죄스럽습니다.

살려서 건지지 못한 죄책감은 이미 무색한 지 오래, 죽은 육신이라도 찾아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나니 속만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작년 이맘때쯤도 그랬습니다.     
 

생때같은 20대의 젊은 여자가 3월의 어느 밤에 구포다리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고인을 수습하는 구조대원_작가 제공

28일 만에 수백 미터 아래 강가에 떠올랐습니다.

한 달 가까이 저와 동료들은 차가운 강물 속을 헤아릴 수 없이 들락거렸습니다. 


수억을 호가하는 값비싼 장비도 제값을 다하기 위해 매일같이 혹독하게도 다루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 멀리 강가에는 두 손 모아 딸아이의 몸이 보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곳에서 우리 쪽을 바라보며 기도했습니다. 


어쩌다가 그곳을 지나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멀리 있어도 볼 수 있었고,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간절함은 강 한복판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제발 우리 딸아이를 찾아주세요”     

핏기 없는 얼굴로 낮게 읊조리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구조대원의 업이라고만 하기엔, 우리 일은 매우 복잡한 상황을 만들기도 합니다. 사선에 놓인 구조 대상자를 끄집어내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육체노동이자, 일면식도 없지만 ‘기필코 살리겠다’라는 피상적인 간절함으로 이어지는 극단의 정신노동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불 속이나, 깨지고 부서진 교통사고 현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차가운 물 속, 무너지는 건물 더미 속…. 누구나 피하고자 하는, 위험이라는 본능이 극명히 발현되는 불안정한 곳으로 우리는 주저 없이 발을 들입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우리를 ‘영웅’이라 부릅니다. 고개를 끄덕이기엔 민망하고 고개를 휘젓기에도 그저 부끄럽기만 합니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우리는 그런 존재조차도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하려는 누군가와 피와 살이 다르지 않기에 그런 마음이 더 큰 것 같기도 합니다. 인간이라면 겪는 두려움의 감정 역시 같기에 그렇습니다.


‘영웅’이 아닌, 가족이고 친구입니다.
언제고 어디서고 주변을 둘러보면 존재하는 사람들, 소방관은, 구조대원은 그냥 그런 사람들입니다.


제가 일하는 현장에서의 위험과 두려움을 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이 차가운 물 속에 스스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본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은 육신을 찾아 그들 앞에 놓는다면 눈물과 비통이 순간 극에 달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비록 살아있지 못한 육신이라도 다시 가족의 품에 돌아갔을 때 저와 동료들은 일말의 죄스러움을 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가족도 슬픔을 억누르며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해주었습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15년간 현장에서 수없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린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 죄책감이 곧, 저 열 길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를 반드시 건져내야 한다는 동기가 됩니다. 지난날 현장에서의 어설픔을 조금이나마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절대, 절대로 지금 눈앞의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맑은 하늘 아래 혼자서 골똘히 상념에 빠져 있자면 아내가 볼멘소리로 말합니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그렇습니다. 불현듯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제나저제나 떠오를 것 같은 물속의 사람들입니다. 내일 출근하면 우리가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곳을 가보겠노라는 생각도 함께 말입니다. 간절함이라고 해도 좋고,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다만 저는 그저 ‘인지상정’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간절한 속내를 손톱만큼이라도 짐작한다면 한순간도 소홀히 하기 힘든 제 일입니다.

      

오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맑고, 푸르고 또 아름답습니다. 속 시끄러운 뉴스야 내 곁의 일이 아닌 듯 여기면 그만이고, 미친 듯 기승이던 전염병도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니 세상은 그렇게 평범하게 돌아갑니다. 다만 또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죽음, 슬픔, 간절함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저는, 하루는 푸른 세상을 향해 다른 하루는 어두운 세상을 향해 들락거립니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간직한 채 말입니다. 평범함과 간절함이 하루씩 반복되는 제 삶, 때론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때론 누군가를 집어삼킨 채 뱉어내지 않는 물속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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