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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13. 2021

잘 지내지? 그 한마디에 담긴,

"언니, 잘 지내지? 여기는 칙칙한 겨울인데, 불현듯 따뜻한 봄날에 언니랑 산책했던 기억이 나서 언니가 그립지 뭐야."


몇 년 전 외국으로 이민을 간, 아끼고 무척 좋아하는 후배의 꽤 오랜만의 연락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안부 카톡에 이렇게나 울컥할 일인가. 흠흠. 조금 전부터 한파주의보라더니, 추운 날씨를 뚫고 먼 거리를 달려 집에 왔더니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마음을 조금 추스르고 카톡에 답했다.


"지영(가명)아!!!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나려고 하네"


이렇게 답을 보내는 동안 지영이도 카톡을 쓰고 있었는지 동시에 카톡이 도착했다.


"언니, 내가 그동안 많이 아팠어. 글쎄 암에 걸렸지 뭐야... 많이 힘든 시간 보내고, 지금은 남은 치료받고 있어"


덜컥.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후배는 현재 살고 있는 그 나라에서 수술을 한 번 받고도 암이 다시 재발을 해서, 얼마 전에 한국에 들어와서 재수술을 받고 들어갔고, 현재는 치료 중이라고 담담히 얘기했다. 그런 그와 달리 나는, 대화를 해 나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몇 년 전에, 유방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그 일주일, 그동안에 "혹시라도 암이면 어쩌지"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거의 잠을 제대로 못 잤었다. 결과는 다행히 악성종양이 아닌 양성종양이었고, 그래도 크기가 더 커지면 악성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주기적인 검진이 계속 필요했다.


고작 그랬던 나조차도 그 한 주동안에 엄청나게 공포스러웠던 걸 생각하면, 후배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조금 마음을 놓으려는 찰나 다시 재발이 되고, 빠른 시간 내에 수술받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와서 수술을 하고, 살고 있는 나라로 돌아가 치료를 받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보니 매 순간이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까 싶었다. 항상 씩씩하고 밝은 후배지만, 그래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치료 다 마치고 더 건강해지면 앞으로 하고픈 것 맘껏 하고, 내년 봄에는 더 행복해지자며 한참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대화를 마치고, 우리의 (오늘 전) 마지막 대화가 뭐였을까 찾아봤다.


올봄에 벚꽃 피었냐고 후배가 물어보며, 정동길이 자주 생각난다고. 거기 분위기 좋으니 데이트 많이 하라고, 가게 되면 본인 생각도 한 번 더 하고 사진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던 후배. 한국에 있을 때 직장이 그 근처여서 자주 걸었던 길이니 더 많이 생각날 터였다. 나도 흔쾌히 그러마 했는데, 무심하게도 그 이후에 사진 한 장 보낸 게 없었다. 나도 올봄에는 어딘가로 벚꽃구경 한 번 안 갔었다. 그저 길을 걷다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며, 봄이 왔구나, 봄이 가는구나, 그렇게 그냥 봄을 흘려보냈다.  

 

몇 년 전, 후배와 함께 걸었던 후암동 골목길


그리고 문득 생각이 났다. 대학  전공분야   과목에서 꽤나 저명한 교수님이 계셨는데,  해에 정년퇴임을 앞두고 계셨다. 그런데, 휴강을 너무 자주 하셨다, 그것도 당일에. 심지어 전공 필수 과목이었는데.   번은 그렇다고 치지만 여러  반복되었을 때는 우려와 짜증이 섞여 조교분께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예상치도 못한 “교수님 친구분이 돌아가셨대”. 답을 들은 우리는 조금 허탈했던 기억이었다. 많이 연로하셨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상황들이고 교수님께는 큰 일이었을텐데. 당시 20 초반이던 우리들은, 교수님이 친구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맞이할 심리적 타격감 같은  고려해보기 힘들었다. 그러기엔 우리 젊음이 무한한  같은 기분으로 휩싸였던 때였다.


물론 스무 살에 아빠를 잃었던 나는, 어떤 이의 죽음이란 게 이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주는 건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건 가족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무게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 느꼈던 아빠의 부재로 인한 내 심적 고통은, 훗날 조금은 더 어른이 된 내가 해석해보면 훨씬 큰 무게였다. 당시에는 어려서 그게 그 정도로 깊이 폐부를 찌르고 있는 줄도 잘 몰랐던 것 같다. 뭣도 모른 채로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다,라고만 생각했던 어린 나였다.


후배의 암 투병 이야기를 듣고, 그 교수님의 그 당시 마음을 철없고 어렸던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잠을 자고 나면 좀 괜찮아지려나 했던 마음이, 여전히 너무 무겁고,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모두 건강히 잘 지내자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 그리고 평소에 건강관리 잘 하자 이런 다짐밖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아려온다.


건강하자, 건강해야지 하면서도 순간순간 건강을 과신하며 살아온 것 같다. 스무 살 그 시절, 우리의 젊음을 과신했던 것처럼. 그럼에도 다시 한번 결심하고 기도한다. 건강하게 살자고, 앞으로 맞이할 봄들은 더 격하게 맞이해보자고, 나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건강하게 이 생을 지켜가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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