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SRT 수서역 자리는 원래 비닐하우스 밭이었다. 저녁이 되면 가로등 빛도 채 닿지 않아 소리와 감각에만 의존해 길을 걸어야 했던 그곳에 내 친구가 살았다. 우리는 중학생이었고, 학교가 끝나고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나는 그의 집으로 갔다. 비닐하우스였다.
각목으로 뼈대를 만들고 비닐로 앞뒤를 두른 문짝을 열면 시멘트로 된 현관이 나타났다. 현관 바닥이 쭉 이어져서 끝에 다다랐을 즈음엔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수채 구멍이 있었다. 수도꼭지 끝에 주둥이 잘린 고무 호스가 달려 있었고, 옆에는 살얼음이 낀 고무 대야가 놓여 있었다. 현관이자 부엌인 공간 옆으로는 시멘트로 된 작은 이랑이 있었다. 장판이 깔린 방과의 경계선이었다.
텔레비전에서조차 본 적 없었던 허름한 구조로 된 집을 목격했지만 그를 동정했던 기억은 없다. 불행한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는 늘 밝게 웃었기 때문에 연민이 끼어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이제 집에 혼자 지내게 되었다는 말을 할 때도 그는 자유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웃었고, 오랜만에 본 엄마가10만 원도 넘는 운동화를 사주었다며 내게 운동화 좌우면을 차례대로 보여줄 때도 얼굴에는 자신만만한 웃음이 떠 있었다. 원피스 카드 게임을 할 때 내가 야금야금 따먹은 카드를 한 방에 싹쓸이하면서 여유만만한 승부사의 웃음을 보여주는 것도 그는 잊지 않았다.
내가 그의 웃음을 신뢰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지 모른다. 감추고 싶은 것을 감추기 위해 일관된 웃음을 짓지 않았다는 것. 그 웃음은 매번 종류가 달랐다는 것. 그래서 나는 입김이 눈에 보일 정도로 추운 그의 비닐하우스가 그토록 아늑했는지 모르겠다.
그림을 잘 그려서 원피스 카드에 나온 루피를 곧잘 따라 그리곤 했던 그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배우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뒤로는 소식이 닿지 않는다. 그 녀석이 살던 곳으로 지금은 SRT가 지나간다. 그도 이렇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또한 때론 능글맞고 얄밉게 웃었던 그를 SRT를 보며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비닐하우스에 혼자 살던, 총천연색 웃음을 원피스 카드처럼 잔뜩 가지고 있던 그 녀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