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죤 버프

by 김본부

초등학교 때였다. 같은 학년에 키가 작고 늘 애들한테 두들겨 맞는 애가 있었다. 동네북처럼 하도 이놈 저놈한테 맞아서 누가 때렸는지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누군가 때렸다 하면 맞는 애는 늘 그 녀석이었다.

녀석이 맞고 다니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는 키가 작았다. 다른 아이들은 한 해에 많게는 10cm씩도 쑥쑥 컸는데 그는 몇 년이 지나도 늘 그 키 그대로였다. 반이 바뀔 때도 키 번호는 늘 1번을 놓치지 않았다.

또한 그는 마음씨는 착했지만 허세가 대단했다. 뭐 째깐한 녀석이 싸움은 어떻게 하는 거라는 둥 진짜로 남자다운 것은 어떤 거라는 둥 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가 하면, 좋아하는 여자애라도 생기면 가만히나 있지,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다가 놀림을 받았다. 그러면 그는 남자다운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조금 전까지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고 좋아하던 여자애한테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대뜸“오늘 학교 끝나고 동네 떡볶잇집으로 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나는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녀석 모르게 떡볶잇집에 찾아가 보았으나 학교가 끝나고 한참이 지날 때까지 그 여자아이는 물론 녀석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애들한테 맞는 결정적인 이유는 겁이 별로 없다는 거였다. 언젠가는 같은 학년 애들 중에서 싸움도 제일 잘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서도 가장 먼저 눈치챈, 소위 제일 잘나간다는 부류와 자신이 무척 두터운 친분을 자랑한다고 인터넷에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한동안 그들의 표적이 되어 온몸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신기한 게 있다면 그는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겁을 먹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 때리는 시늉을 하면 그는 그간의 노하우 덕분에 자연스럽게 팔로 머리를 방어하고 몸을 웅크리는 습관이 있었으나 그건 겁과는 다른 거였다. 단지 경험에 의해 터득한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행동을 반사적으로 취한 것뿐이었다.

이따금 누군가에게 맞게 될 상황, 이를테면 누군가가 단단히 화가 나서“너 따라와”라고 그에게 쏘아붙이는 상황을 만나면 그는 두려워하거나 초조해하기보다는 또 피곤하게 됐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따라 나갔다. 마치 싸움의 고수가 하룻강아지한테 선심을 쓰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맞는 쪽은 그였다.

그는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지만 어딘가 다치거나 입술에서 피가 난다거나 입고 있던 옷에 실내화 밑창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그는 두들겨 맞은 게 아니라 힘껏 때려주고 온 사람의 포즈로 몸을 툭툭 털며 자리에 앉곤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렇게 맞으면 안 아프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이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맨날 맞는데도 화나지 않느냐는 두 번째 질문에는“남자는 친구에게 맞아주고 밤에는 때린 친구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한다”고 응수했다. 근사한 대답이긴 했으나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 그가 그렇게 엄중한 얼굴로 말하는 게 나는 신기했다.

그는 어떤 얼룩이 옷에 남았더라도 다음 날이면 새것 같은 말끔한 옷을 입고 등교했다. 늘 그의 곁에 가면 피죤 냄새가 물씬 풍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정말로 사나이였다. 누가 얼마만큼 자신을 때렸더라도 다음 날 어머니나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유치한 짓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 또한 아들이 학교에서 맞고 돌아오는 걸 모를 리 없었을 테지만 학교에 찾아와서 항의를 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다만 그에게 매일 같이 향기로운 피죤 냄새를 불어넣어 줄 뿐이었다. 그 냄새는 곁에 있기만 한다면 누구나 맡을 수 있는 것이라서 심지어 그를 때리던 녀석들조차 피죤 냄새는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냄새는 그에게 일종의 방어막 버프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때리면 때릴수록 옷에 스며든 향기로운 냄새는 더욱 강하게 피어올랐을 테니까. 키가 작고 만만하게 보여도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피죤 방어막 버프 덕분에 그는 같은 학년 아이들에게 쥐어 터져도 주눅들지 않을 수 있었고, 떳떳하게 복도를 활보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여자애한테“떡볶잇집에서 보자”는 갑작스러운 선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그를 때린 아이들은 처음에는 작고 만만해 보이는 그가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눈꼴 시어 그를 괴롭혔겠지만 나중에는 맞아도 쫄지 않는 그의 당당함이 당황스럽고 열이 받아서 더욱 녀석을 두들겨 팼을 것이다. 바보들. 다 피죤 버프 때문인데. 그것도 모르고 녀석들은 괜히 되지도 않는 일에다가 공연히 힘만 뺀 꼴이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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