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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Mar 24. 2021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야, 홀토마토 파스타 끝장내기

집밥요정 오소리의 요리하는 글쓰기 (9)

음식 맛에 진심인 것과 요리 실력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까다로운 입맛에 못 미치는 음식 솜씨와 냉장고의 사정으로 그럭저럭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게 소박한 목표일 때가 많다. 그나마도 시간이 촉박하거나 배가 고픈 날에는 요리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걸 빠뜨리는 등 이상한 걸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지난번의 짜디짜다 못해 쓴 파스타가 그랬고, 이번엔 또 다른 파스타를 만들다 실패와 안 실패의 경계에서 파스타의 생사가 오갔다. (또 파스타...가 실패할 뻔한 건 어련히 기분 탓이려나)

이번에 만든 파스타는 토마토홀을 사용한 간단한 파스타였다. 시간단축 및 설거지감 줄이기를 위한 원팬파스타를 만들려다 보니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토마토홀 원팬 파스타+@ 만들기>

재료: 파스타 면 100g(손으로 잡았을 때 파스타 뭉치가 500원 동전만하면 1인분, 곱빼기로 드실 분은 면 추가), 홀토마토 2캔, 버터 약간, 치킨스톡(액상 치킨스톡 기준으로 3-4티스푼 정도), 마늘 2쪽 분량의 다진 마늘, 다진 양파 1/2개, 오레가노 약간, 파마산 치즈가루 약간.

주의: 홀토마토 캔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0. 원팬 파스타를 만들 때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1) 처음부터 물을 적게 잡은 상태에서 파스타 면을 삶은 다음 소스를 만들거나, 2) 물을 넉넉하게 잡고 파스타 면을 삶은 뒤 불필요한 면수를 따라 버리거나, 3) 물을 넉넉하게 잡고 파스타 면을 삶은 뒤 면수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오늘의 레시피는 3번입니다.


1. 넉넉한 분량의 끓는 물에 파스타 면을 삶는다. 면을 냄비에 담을 때는 부채 펴듯이 촤라락- 면을 펼쳐서 넣어준다. 냄비가 얕을 경우 불이 너무 세면 냄비 바깥으로 삐져나간 면이 구워질 수 있으므로, 면이 조금씩 익는 대로 냄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면을 적절히 눌러준다.


2. 면을 삶는 과정에서 미리 간을 해 주는데, 소금 대신 치킨스톡으로 간을 하는 것이 포인트. 액상으로 된 치킨스톡을 넣고 녹여낸다. 알단테 기준보다 1-2분 덜 삶은 상태에서 원팬파스타로 쭉 가 보자.


3. 홀토마토 1캔을 따서 2번에 그대로 넣는다. 1캔으로 부족할 것이 분명하므로 1캔 더 넣고 토마토 덩어리를 적절히 으깬다.


4. 다진 마늘과 양파, 소량의 버터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다.


5. 완성된 파스타를 그릇에 담고 오레가노와 파마산 가루로 마무리한다.


6. 남은 소스는 2차 조리에 응용한다. 농도에 따라 그대로 토마토 스프처럼 먹거나, 생크림을 추가하여 로제소스를 만들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위의 내용은 레시피라고 따라할 만한 바람직한 내용이 아니다. 면수가 출렁이는 상태에서 자신있게 홀토마토 1캔을 때려넣고 나서야 상황 파악을 한 이후의 과정을 나열했을 따름이다.

그러하다, 나는 이날도 몹시 시장한 나머지 정신줄은 회사에 두고 온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한 캔의 토마토홀이 더 있었을 뿐이고, 아낌없이 이 녀석마저 투하할 수 있었다. 이래도 안 되면 안 되는 거다! 라는 비장함 그리고 눈대중으로 얼렁뚱땅 끓여낸 소스는 토마토의 상큼함, 버터가 주는 부드러움, 오레가노의 향긋함, 마늘과 양파가 주는 포근함이 어우러져 꽤 먹을 만한 파스타가 되어 있었다.


망한 요리도 내가 망했다고 선언하기 전까지는 망한 것이 아니다


빠뜨린 다른 재료를 조금씩 채워넣는 방법도 있고, 잘못해서 더 넣은 재료는 과감하게 덜어내 버릴 수도 있다. 최악이라고 생각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소한 것이 불러오는 변화다. 궤도에서 벗어난 것 같고, 위기에 빠졌을 때 붙잡아야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바로 그 한 발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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