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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오소리 Nov 13. 2023

Interesting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커리어 에세이 (5) 이토록 다른 아와 어

어느 조직이건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 행정 절차가 잘 진행되는 조직이 좋은 조직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협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이 바닥IT업계에서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일하다 보면 얼마나 그 결과물이 산으로 가는지를 실감하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서로 되묻고 되묻고 되묻다가 지쳐서 '고객사에 문의하라'는 결론이 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은 당연지사. 물론 애초부터 상대방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항상 시작점부터 영 좋지 않은 에러가 발생하는데 이 상황만큼은 영영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invisionapp.com/inside-design/6-design-dev-memes/



하지만 그나마 이런 경우는 양호한 편이다. 더 큰 문제는 아래 그림처럼 서로 책임회피를 하거나 상대의 업무를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끊임없는 잡음이다. 각자 자기 일만 잘 하면 되지 않냐고? 자기 일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일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다가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출처: programmerhumor.io)


현재 해외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이 필요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팀내 어느 디자이너의 업무태도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일이 있었는데, 그 결과는 상상초월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업무 특성상 해외 디자이너의 필요 역량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다못해 어떤 내용이 어느 페이지에 있는지 찾을 수라도 있어야 할 만큼) 막대한 분량의 UX 시나리오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팀내 인원이 변경되면 신규인원의 학습시간으로 인한 불가피한 버퍼가 발생하는 등 조직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현지 PM은 해당 디자이너를 냉큼 빼다 다른 프로젝트로 보내버리고는 우리에게 인원 변경이 있을 거라며, UX는 잘 몰라도 한국말 잘 하는 친구가 대신 들어올 거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는 것이었다......


뚜껑이 열린 우리 팀 멤버들은 PM과 팀 리더를 미팅에 소환했다. 우리가 빡친 포인트는 크게 3가지였다.

1. 우리가 언제 태도 문제가 있는 친구를 내보내라고 했는가? 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지! 왜 팀 멤버 교체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멋대로 하면 너희랑은 일 못 한다.

2. PM으로서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알기는 아는가? UX 경력자가 와도 업무 방식과 문서 공부에 시간이 한참 걸릴 판인데, 아무리 업무에 외국어(한글)가 많이 쓰인다고 해도 UX를 모르는 사람을 UX디자이너라고 뽑아 놓으면 우리가 다 가르치라는 것인가?

3. 이런 사고는 니네가 치고, 고객사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하라고? 너는 대체 하는 일이 뭐냐?


미팅에서 우리가 위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자, 듣고 있던 PM이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Interesting..."


본인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는 이 상황이 재밌다고? 유체이탈 화법으로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는 그 한 마디에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다시는 미팅 하다가 interesting 같은 소리를 하지 못 하도록 이 놈은 내가 반드시 조진다- 는 전투종족의 분노가 몰려오면서 회사생활 10년만에 샤우팅 랩을 시전하고 말았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마어마하게 팩폭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날 분노가 터진 나를 바라보던 동료들의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수습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나마 이 대참사를 수습했던 것은, PM이 모든 상황을 정리한 다음 고객사에 인원변경 보고를 한 메일에 해당 건에 관한 쟁점을 정리해서 본인+고객사+우리의 매니저까지 모두가 이 상황을 인지하도록 전달한 것이었다. 결국 이런 식의 강력한 컴플레인을 몇 차례 호되게 받은 이후부터, PM은 더이상 일방 통보하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일하지 않게 되었고, 우리는 고객사로부터 책임감 있게 팀 관리를 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계속 마음에 안 들었던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갔다. 우리 애들보고 Resource라고 하지 말라고.


P.S. For your understanding, I had to use the term “resource” which indicates a member.
However, I think this is very inappropriate expression; this sounds like you’re dealing with members as if they are parts of machine which can be ‘easily replaced anytime’.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만약 Interesting이라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렇게 호되게 두드려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가장 중요한 생존 소프트 스킬이다. 아와 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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